
‘총성 없는 전쟁’으로 일컬어질 만큼 경쟁이 심한 자동차 시장에서 리콜은 당장의 매출의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는 곧바로 시장점유율 하락과 직결돼, 리콜을 실시하는 업체는 반드시 향후 막대한 돈을 들여 이를 만회하기 위한 마케팅을 펼치게 된다.
작은 결함부터 운전자 및 탑승자의 생명에도 영향을 줄 만큼 치명적인 결함까지, 자동차 업계는 리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리콜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자세도 제각각이어서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9일 현대자동차 투싼과 한국지엠 크루즈에 대해 리콜을 조치했다.
2011년 1월 1일부터 2013년 12월 26일 사이에 생산된 투싼(12만2561대)의 경우 경음기 커버가 적절하게 정착되지 않아 경음기 커버가 이탈할 수 있으며, 에어백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됐다.
한국지엠 크루즈의 경우 지난해 10월 15일부터 11월 13일까지 생산된 574대에서 우측 동력전달축의 재질 결함으로 인해 급격한 가속 또는 제동 시 충격으로 동력전달축이 파손돼 동력이 전달되지 않을 위험성이 발견됐다.
현대차·한국지엠 모두 탑승자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차종 가리지 않고 발견되는 결함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국내외에서 발생한 업체들의 리콜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현대차는 국내에서와 같은 경음기 커버 결함으로 미국 등서 투싼 14만 대에 대한 리콜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의 GM은 엔진이 가열되면 헤드라이트 조향 각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코르벳과 눈이나 얼음으로 인해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캐딜락, 쉐보레 말리부, 폰티액, 새턴, GMC 트럭 등 299만 대에 대해 리콜을 결정했다. GM은 리콜 비용으로 2억 달러를 써야할 상황에 처했다.
뿐만 아니라 연료 계기판 소프트웨어 결함 가능성이 있는 SUV 차량 5만1640대에 대한 리콜을 단행했다. 이를 포함 올 들어 GM이 리콜한 차량 대수는 무려 1000만 대에 달한다. GM의 명성이 끝 모를 추락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기아자동차도 리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국소비자원은 기아차의 대표적인 SUV인 쏘렌토R 차량의 앞 유리가 과열된 열선으로 인해 파손된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주장이 사실임을 밝혀냈다. 앞 유리 열선부에 결로현상 등으로 인해 수분이 유입되면 실런트와 열선의 화학적 작용으로 열선 표면이 손상되는데 이렇게 손상된 열선을 작동시키면 과열이 발생해 앞 유리가 파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아차는 2009년 4월 3일부터 2012년 11월 15일까지 생산된 쏘렌토R 차량 12만7438대 중 열선 과열로 인해 앞 유리가 파손된 경우 리콜키로 했다.
또한 기아차는 영국에서 판매된 스포티지와 쏘울 7000여 대에서 안전벨트의 프리텐셔너(pre-tensioner) 부품에서 결함이 발견돼 이에 대한 리콜을 진행키로 했다. 프리텐셔너는 사고 위험 시 안전벨트를 당겨 운전자가 앞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미국의 포드와 크라이슬러도 탑승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에어백 장치에서 결함이 발견돼 브랜드에 치명타를 입었다.
2013~2014년 생산된 포드의 SUV ‘이스케이프’와 하이브리드 차량인 ‘C-맥스’ 총 69만2500대에서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차량 전복사고 때 에어백이 늦게 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이스케이프의 경우 외부 손잡이가 제대로 잠기지 않을 수 있어 69만2700대에 대해 리콜을 결정했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2010~2014년 생산한 ‘닷지 그랜드 캐러밴’과 ‘크라이슬러 타운 앤드 컨트리’ 차량에서 운전석 창문 스위치가 습기에 노출되면 합선이 일어나거나 과열되는 현상이 발견됐다. 리콜 대상 차량은 총 78만여 대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미국과 함께 높은 시장점유율을 점유하고 있는 일본 자동차 업계도 곳곳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혼다의 미니밴 ‘오딧세이’는 올해만 두 번째의 리콜 대상이 됐다. 앞서 연료 펌프 결함으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어 3월에 88만6815대를 리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측면 에어백 작동 부품이 조립 과정에서 손상됐을 가능성으로 인해 충돌 시 에어백 작동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미국 시장에서 2014년형 오딧세이 2만4889대를 리콜하기로 했다.
이른바 ‘명차’도 리콜 대열에 합류했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북미에서 각각 28만4000대, 15만6000대의 차량에 대한 리콜 조치를 받았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생산된 벤츠 C300, C350, C63 AMG 모델의 경우 차량 후미등 전구 연결부에 부식이 발생해 정지하거나 점멸 시 후미등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BMW의 경우 차량 볼트 결함 결함으로 엔진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리콜을 결정했다.
이 밖에 르노삼성자동차는 SM5 점화코일 배선과 엔진 배선 커넥터의 접촉 불량으로 시동이 꺼지거나 RPM이 불안해지는 현상에 대해 리콜할 것을 밝혔으며, 일본 토요타는 렉서스 등 26만 대에 브레이크 작동장치 내 전자부품 불량으로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 리콜에 돌입했다.

현대차, 리콜은 한 박자 늦게
국산·수입 차량을 막론하고 하루가 멀다 않고 터지는 리콜 소식에 소비자들은 어떤 차량을 구매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 산 자동차가 리콜 대상임이 확인되면 실망감은 커지기 마련.
환불 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무상 수리를 받고 자동차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회사 측에서 선제적으로 자발적 리콜을 시행할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회사가 문제점을 쉬쉬한다면 탑승자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교통당국은 GM이 점화장치 및 에어백 결함을 수년 전부터 인지하면서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35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자동차 관련 벌금 중 최대 액수다.
이처럼 결함 사실을 숨기는 것도 문제지만 리콜에 대한 늑장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글로벌 명차 반열에 오른 현대·기아차의 경우 그동안 해외에서와 국내의 리콜 시기 차이로 인해 ‘역차별’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발생한 이른바 ‘수(水)타페’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 싼타페에서 물이 새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불만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물이 새는 것은 맞지만 자동차 기능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자 현대차는 무상 수리 기간을 연장하며 성난 싼타페 이용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일부 아반떼, 싼타페, 베라크루즈 등의 일부 모델에 브레이크 스위치 접촉 결함이 발견돼 현대차는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미 국내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됐지만 현대차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결국 자기 돈 들여 차를 수리한 이들만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정 회장의 ‘품질 경영’ 완성될까
정 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품질’을 강조하며 외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 경쟁을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야심작이다. 외국의 명차와 비교해도 좋다는 자부심이 녹아 있다.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를 출시하며 “현대차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탄생한 신형 제네시스가 드디어 고객들 앞에 선보인다”며 “세계적인 프리미엄 명차들과 당당히 경쟁할 신형 제네시스가 기대 이상의 만족을 넘어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신형 제네시스는 출시 이후 가파른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이은 리콜로 인해 정 회장의 품질경영은 큰 타격을 입었다. 더욱이 원화 강세로 인해 외국에서 수입차가 몰려들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전망돼 현대차로서는 악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해외에서는 리콜했을 결함을 국내에서는 무상 수리로 그치며 신뢰를 잃는다면 현대자동차는 ‘바깥 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40대 자영업자인 심재원 씨는 “업무상 자동차를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동차 리콜 사태가 터지게 되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든다. 지난해까지 싼타페를 탔었는데 혹시 물이 새서 운행 중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들었다”며 “자동차가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가 발생되면 회사에서는 이를 즉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지명도 있는 수입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는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