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안전? 공포에 빠진 당인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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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 폭발 굉음소리 빈번한데도, “별일 아냐”

지난 19일 오후 4시 32분께 서울 마포구 당인동에 위치한 당인리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에서 ‘펑’하는 굉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으며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소방당국 및 경찰 200여명이 대거 긴급 출동해 사고 수습에 나서는 등 당인리발전소 인근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상황이 돼버렸다. 세월호 참사로 각종 안전문제에 예민해져 있는 인근 주민들은 또 다시 공포에 휩싸였고, 불안감에 떨며 무슨 사고였는지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발전소도, 관할인 마포구청도, 서울시도, 누구도 주민 불안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측은 없었다. 주민들은 누구도 안전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유사 사고가 또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만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당인동에 위치한 서울화력발전소 내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인근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었다. 사진 / 전수영 기자

서울 마포구 당인동에 위치한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발전소)는 80여 년 전 마포구가 서울의 변두리 지역이었을 때 설립된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수명이 다 된 노후한 발전소로 이미 폐기됐어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가동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박홍섭 현 마포구청장도 민선 5기 지방선거 당시 당인리발전소 이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 있다. 하지만, 박 청장은 당초 구민에게 약속한 내용과는 정반대로 서울화력발전소 부지 지하에 발전소 건설을 인가해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인근 지역주민들은 박 청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나기까지 했었다.

안전한 서울시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한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당인리발전소 인근의 한 거주민은 “안전 불감증에 빠진 박원순 시장의 무책임한 행보가 1천만 서울시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박원순 시장은 발전소 지하건설 인가를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거듭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안전성을 따지는 지역주민들에게 ‘우리의 업무가 아니다’라며 회피성 발언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에 지하화력 발전소를 세우는 일이 어찌 서울시의 업무가 아니겠냐”고 맹성토하기도 했다.

◆“정상적 상황 아니다” 면서도…
문제는 이처럼 서울화력발전소 시설이 노후 돼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관계기관에서는 누구 하나 안전관리 대책에 대해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전소에서 굉음의 폭발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일이 발생했어도 주민들은 무슨 상황인지조차 모른 채 불안에 떨며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지난 19일 발생한 당인리발전소 변압기 폭발 사고 현장에 소방관들이 진입하고 있다. 사진 / 전수영 기자
실제로, 최근에만 하더라도 사고로 추정되는 상황이 몇 차례 더 있었다. 6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13일 새벽 5시 30분께, 서울화력발전소 내 도시가스 배관이 과부하로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다. 또, 이보다 앞선 같은 해 6월 1일 밤에도 이번 폭발과 같은 변압기 폭발 사고가 발생했었다.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한 상황에서 변압기가 폭발하자 당인리 인근 지역은 이번처럼 또 아수라장이 됐었다. 당시에도 소방차 20여 대가 출동해 화제를 진압했었다.

그런데 이처럼 빈번하게 사고가 나고 있는데도, 관계기관들은 하나같이 이번과 같은 사고는 없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일, 서울화력발전소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 통화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에 “몇 번의 사고가 뭐가 있었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면서 “발전소 운영 중에 스팀이나 이런 것들 분출하는 것이 물론 아주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사고라고 볼 수는 없다”며 “그게 사고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이어, “발전소는 어떤 위험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이를테면 보호장치가 작동하게 된다”며 “위험 신호가 있을 때 고압의 증기를 배출시켜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작동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간간히 폭발 굉음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고압에 스팀이 작동하다보니 소리가 굉장히 크다”며 “그런데 그걸 사고라고는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로 정의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계자 스스로 말했듯,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왜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총체적이고 투명한 안전관리 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인근 주민들은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불안에 떨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관계자는 ‘사고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거듭 위험성에 대한 지적을 하자 “좋다. 그렇다 하고 어떤 말씀을 하고 싶은 거냐? 저희 입장에서 사고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 문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겠다고 천명한 상황인데도, 여전히 뭐가 문제냐는 식의 태도다.

이번 폭발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원인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변압기 폭발이라고 오해들 하시는데 변압기에 달려 있는 계기용 변성기라는 게 파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파손될 때 소리가 폭발소리처럼 났다. 그러나 변압기가 폭발한 건 아니다”며 “변성기 안에 오일이 있는데 그게 과열 파손되면서 온도가 높아 오일에 불이 붙은 것이다. 기름에 불이 붙으니 검은 연기가 많이 났다”고 밝혔다.

기름에 불이 붙었다는 얘기에 기자가 ‘굉장히 위험했겠다’고 묻자, 그 역시 “위험했다”고 답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서울화력발전소 직원은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 지난 19일 오후 서울화력발전소에서 변압기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당국 및 경찰 관계자 200여명이 긴급 출동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사진 / 전수영 기자
◆주민들 불안에 떨어도 쉬쉬
그런데 이 관계자는 덧붙여 이런 말을 했다. “위험했지만, 저희가 초동조치를 잘해서...”라며 “그런데 위험하다는 게 저희 입장에서 위험하다는 것은 설비 훼손되는 데 대한 위험이고, 외부 파급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역시 인근 주민들이 굉장히 불안에 떨었을 것 같다는 데에는 인정했다. 그래서 혹시 ‘보도자료나 해명자료 등 사고와 관련된 입장을 낸 것이 있냐’고 물어봤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따로 준비는 본사에서 하고 있었는데, 시기적으로 이런 것들 때문에 본사에서 해명자료는 안 내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기적’이라는 말이 세월호를 의미하는지 묻자, “세월호와는 관계없다”며 “어차피 해명자료 내기 전에 워낙에 많은 기사들이 나가고 그래서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꼭 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이라며 말을 줄였다. 그는 덧붙여 “(본사에서) 보도자료나 해명자료가 나간다고 된다기보다, 추후에 다른 방법으로 해야 될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이 관계자가 ‘본사’로 지칭하는 한국중부발전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사고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낼 계획이 있냐고 묻자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다. 주민들 불안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말했다. 서울화력발전 측 관계자 말과 본사 관계자의 말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중부발전 관계자에게도 ‘서울화력발전소에서 잘잘한 사고 아닌 사고들이 빈번한 것 같다’고 질문하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인데요.”라는 답이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분명 이번과 유사한 변압기 관련 사고가 발생해 아수라장이 됐었는데도 처음이라는 대답뿐이었다.

◆말로만 안전관리 하라는 마포구청
서울화력발전소 관할인 서울 마포구청은 사고 당일인 19일 오후 ‘당인리발전소 내 변압기 화재, 진화 완료’라는 보도자료를 긴급히 배포했다.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구청이 발 빠르게 대응하는 듯 했지만, 실상 내용에 알맹이는 없었다.

보도자료에는 “발전소내 변압기 상부 애자부분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발생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최근 세월호와 관련 안전사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을 반영하듯 소방차 비롯한 인력 200여 명이 긴급출동했다” 등 사고 개요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그리고 “따라서 본 화재로 인한 어떠한 전기 공급 중단은 없었으며, 인명피해도 없었고, 재산피해도 미미한 수준”이라고 우려할 만한 사고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문제는 마포구청 또한 본질적 문제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민들의 불안에 그 어떤 안전대책도,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날 마포구청 관계자는 <시사포커스> 기자와 통화에서 ‘관할 구청 차원에서 총체적인 안전점검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안전점검에 대해 구두상으로는 발전소 쪽에 얼마든지 많이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서울화력발전소 사고도 말로만 강조한 안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볼 수 있는 셈이었다.

특히, 그동안 서울화력발전소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다는 지적에도 구청 관계자는 “제가 파악하기로 변압기 쪽에서 화재가 난 것은 그동안 없었다”고 단언했다. 불과 지난해에도 유사 사고가 변압기에서 발생했었음에도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울화력발전은 물론이고, 중부발전, 마포구청 모두 “사고는 없었다”는 똑같은 말이었다.

구청 관계자는 그러면서 “(사고가) 빈번했다고 하니 말씀드린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 우리도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발전소에 구두로) 종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화력발전소 안전성 문제에 대해 서울시 측은 한국전력이나 중부발전이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서울화력발전소 안전 문제에 대해서 확인은 하고 있지만, (서울시에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한전이나 중부발전 이쪽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화력발전소 지하화에 따른 안전성 대책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는 지적에 “서울시와 마포구청, 중부발전이 함께 주민대책협의회를 구성해 1차 회의를 했었다”며 “서울시는 지하화에 따른 안전성 검증 용역을 하고, 마포구청이 주관이 돼 준공할 때까지 주민대책위에서 계속 안전대책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덧붙여 “(서울시는) 협의하고 원만히 조율하는 역할이지 실질적, 주무적으로 안전관리대책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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