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재벌에 대해 좋지 못한 인상이 깊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벌인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는 기업에게 갖은 혜택을 제공했다. 원자재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인재를 키워 미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당장 국내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폐해가 잇따랐다.
하지만 정부는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생각했다.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반응은 점점 적대시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기업들이 바뀌었다. 그동안 벌어들였던 이익을 사회와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온정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업들이 따뜻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중소기업=하청 ‘NO’…동반성장 이룬다
그동안 경제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중소기업 스스로 한 분야에서 실력을 키웠지만 혼자만으로는 실적을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조금이라도 이익이 나는 분야라면 대기업이 뛰어들어 일감을 독식했던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비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관행도 차츰 사그라지며 오히려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키워 우수협력사로 육성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을 대기업들이 깨우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동안 움켜쥐고 있었던 일감을 중소기업을 위해 과감히 개방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4월 6000억 원 규모의 일자리를 중소기업에 개방키로 결정했다. 물류 분야 4800억 원, 광고 분야 1200억 원 규모였다.
현대차는 우선 2013년 물류 분야 발주 예상 금액의 45%에 해당하는 4800억 원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 입찰을 통해 물류 회사를 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완성차와 부품을 실어 날랐다.
일감몰아주기라는 지적을 받았던 만큼 현대차로서는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이룰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 광고를 도맡아 했던 이노션의 일감을 나눠 다른 광고회사가 수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중소 광고제작사인 크리에이티브가 제작한 TV광고를 방영했다. 크리에이티브는 직원 수 12명으로 2012년 광고 취급액이 238억 원에 불과한 중소업체였지만 경쟁입찰을 통해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를 제치고 광고 물량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현대차의 ‘통 큰’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차가 서막을 열자 LG는 4000억 원, 롯데는 3500억 원 규모의 일감을 중소기업에 개방했다.
LG는 시스템통합(SI)·광고·건설 등 3개 분야에서 계열사 간 거래를 줄이고 이를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 입찰을 실시해 중소기업의 성장에 보조를 맞췄다.
특히 그간 대기업들의 독주 분야였던 SI 분야의 일감을 개방함으로써 실력을 갖춘 SI 기업에 단비와 같은 소식을 전했다.
롯데그룹도 물류·SI·광고·건설 등 4개 분야 3500억 원 규모의 일감을 나누기로 했다. 부문별로는 물류 150억 원, SI 500억 원, 광고 400억 원, 건설 1050억 원 등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도 금융 계열사를 시작으로 광고 분야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외부에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기업 중 광고비를 가장 많이 쓰는 삼성이 광고를 개방한다고 선언하면서 광고업계는 크게 반색하며 향후 광고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많은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들과 상생협약을 맺고 협력사 직원 교육을 비롯해 프로그램 공유, 금융 지원을 통해 우수협력사들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있다. 또한 일부 우수협력사에게 포상 등을 실시해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지역·분야 가리지 않는 전 방위 활동
일감개방과 아울러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은 지역민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체감을 일궈 나가고 있다.
울산이 본사인 현대중공업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지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0년부터 임직원 대부분이 참여해 급여 끝전을 모아 기금을 조성했다. 현대중공업은 이 기금으로 매년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심장병재단,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원한 금액은 2억여 원에 달한다.
지난해 7월에는 울산지역 32개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 복지시설 종사자와 이용자 등 440명을 초청해 연극을 관람하며 문화·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한국타이어는 대전·충남 지역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타이어 동그라미봉사단은 4월 대전시 동구의 지역장애인가정을 방문해 생필품과 연탄을 지원했다. 봉사단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릴레이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공헌 의지를 다지고 있다.
같은 달 12일에는 대전역 동광장에서 직원 50여 명이 지역의 독거어르신 600여 명에게 손수 만든 자장면을 대접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에 앞서 3월에는 문기선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전·현직 대의원들이 대전 대덕구를 방문, 독거어르신 가정에 도배와 보일러 및 장판을 교체하며 훈훈한 정을 나눴다.
국내 대표적인 타이어 제조기업인 한국타이어는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전국 사회복지기관의 편안한 이동을 돕기 위해 40개 기관에 기아자동차 경차 ‘모닝’을 1대씩 기증했다.
이 자리에서 서승화 부회장은 “앞으로도 사회 소외계층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범적인 기업문화 정착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판단력과 주의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들의 빗길 교통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비 오는 날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투명우산을 나줘주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해마다 진행되고 있는 이 행사를 통해 현대모비스는 총 50만 개의 투명우산을 초등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이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9월 ‘에쓰오일 순직소방관 유자녀 장학금 전달식’을 열고 109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3억 원을 전달했다.
에쓰오일의 2006년 소방방재청과 협약을 맺고 위험한 순간에도 타인의 안전을 위해 용감하게 현장에 뛰어드는 소방관들을 돕기 위해 소방영웅지킴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순직 소방관 유자녀 장학금 ▲최고영웅 소방관 시상식 ▲순직 소방관 유가족 위로금 ▲부상 소방관 격려금 ▲소방관 부부 힐링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에쓰오일은 ‘올해의 시민영웅’을 선정해 상금을 시상하고 있으며, 푸드뱅크 차량에 유류비를 지원하고 있다. 발당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1억 원을 지원하며 발달장애 청소년에게 희망을 전달했고, 빙상 국가대표선수들에게 지원을 약속해 빙상 스포츠 강국으로 가는 길에 일조했다.
‘행복동행’으로 잘 알려진 SK는 계열사별로 특화된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SK 임직원들은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소액기부캠페인을 벌여 1억2000만 원 모금했고, 회사는 같은 금액을 기부했다. SK는 이 모금액으로 개별 학생, 지역아동센터 또는 공부방 학생 등에게 ‘행복 도시락’을 제공했다.
지금까지 행복 도시락을 먹은 학생은 1만300여 명이며, 도시락 수만도 32만여 개에 달한다.
SK텔레콤은 보유한 기술을 이용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지난해 SK텔레콤은 인천 신기시장과 업무협약을 맺고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전통시장으로 돌리기 위한 작업을 벌였다.
우선 OK 캐시백과 연계해 멤버십 제도를 만들고, 소상공인 경영관리 솔루션인 ‘마이샵’을 도입해 신용카드 결제 및 체계적인 고객관리 기반을 마련했다. 가입고객은 구매금액의 1%를 OK 캐시백으로 적립할 수 있고 신기시장뿐만 아니라 전국의 5만여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업무협약 100여 일 만에 멤버십은 2000명을 돌파했다. 40대 이하 가입자가 54.8%에 달할 뿐만 아니라 사용금액 기준으로는 73.5%를 점유해 젊은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첨단 ICT가 전통시장 활성화에 한몫을 한 것이다.

사회공헌활동도 글로벌 시대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제 국내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 언어, 피부색은 더 이상 장벽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아프리카 모잠비크 마톨라시의 빈민가에 도서관을 세우고, 마을 우물을 설치하는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5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도서관을 통해 빈민가 아이들은 꿈을 키워 나갈 수 있게 됐으며, 식수 문제로 고생하던 이들에게 2개월간의 공사 끝에 우물을 설치해 주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했다.
이에 앞서 2012년에는 인도 델리의 빈민가 밀집지역에 위치한 공립학교에 IT센터를 신설하고 교육시설 개선에도 힘을 더했다.
초중고생 6000여 명이 다니는 사르보다야 공립학교는 컴퓨터 교육시설이 전혀 없고, 과학실도 낡아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이 학교에 PC 50대와 각종 인터넷 장비를 보유한 IT센터를 신축하고, 과학실도 리모델링한 뒤 각종 실험도구를 기증했다.
또한 인도설계센터 직원 등 30여 명이 학교를 방문해 학교 벽면에 벽화를 그리고 학용품을 나눠주며 직접적인 봉사활동도 펼쳤다.
대한민국 태극기를 새기고 세계 곳곳에 취항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글로벌 사회공헌활동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2년부터 중국 내 자사 지점이 위치한 곳의 중소학교를 지원하는 활동으로 매년 7개 학교와 자매결연했다. 지난해 말까지 2년간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내 14개 소학교에 컴퓨터 535대, 도서 1만1500권 등의 학습 교재를 지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제 사회공헌활동은 기업이 필요에 의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닌 당연한 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며 “기업의 여건이 달라 사회공헌활동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달하자는 취지는 모두 같을 것이다. 기업이 잘못한 점에는 호된 꾸지람이 있어야겠지만 잘하는 일에는 박수를 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