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메디앙스, 평판관리회사 동원해 블로거 통제?
보령메디앙스, 평판관리회사 동원해 블로거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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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 블라인드 처리 요청…사실 드러나자 곧바로 복구

국회의원이 발표한 자료 게재했지만 ‘게시 중단’

보령메디앙스, 업무상 착오였다면 발뺌 급급

평판관리회사, 팩트 여부 상관없이 무조건 이의

기업들은 자사에 불리한 언론보도가 나오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 고객들의 비판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자칫 불매운동까지 이어지면서 그 파장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그동안 쌓아왔던 브랜드 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도 있다.

그간 기업들은 홍보실을 통해 언론 대응을 해왔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평판관리’ 업체를 통해 자사에 불리한 내용의 글을 게재한 블로거의 포스팅을 포털을 통해 블라인드 처리하기도 한다.

소문만 무성했던 ‘블로거 재갈 물리기’가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회사생활 2년차인 A 씨는 인터넷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신상털기’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학생 때 각종 게시판에 진보적인 글을 올린 것이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해서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는 보수적인 성향이어서 자칫 자신이 써놓은 글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취업준비생 B 씨는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한 것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회원제인 곳에 게재한 글은 거의 다 삭제했지만 비회원으로 글을 쓴 곳은 비밀번호를 무엇으로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누군가 글을 써놓은 장본인이 자신임을 밝혀낼 경우 취업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성향은 다르지만 이른바 ‘소싯적’ 게재한 글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똑같다.
이런 이들에게 한줄기 햇빛처럼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평판관리’ 회사다.

▲ 포털사이트에서 ‘평판관리’로 검색했을 때 결과 페이지. 최근 들어 평판관리가 취업이나 이직 등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서부터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다만, 일부 평판관리 회사들은 법률의 미비점을 악용 무차별적으로 블로거들의 게시글에 대한 게시중단 요청을 하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네이버 캡쳐

불리한 인터넷 기록 모두 지운다

포털사이트에서 ‘평판관리’를 검색해보면 많은 사이트들이 검색된다. 이 중 많은 평판관리회사들은 대부분 기업 및 사람에 대한 평판을 조회하는 곳들이다. 기업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 해당 분야에서 어떤 평판을 듣고 있는지를 조사해 주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얘기가 있듯이 인력을 채용하기에 앞서 해당 후보자들에 대한 평판을 통해 필터링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른 평판관리회사들은 허위 및 비방 게시물을 삭제하고, 동영상 유포를 차단하는 일을 대행하는 곳이다. 앞서 언급한 A, B 씨가 모두 원하는 곳이다.
이들은 개인은 물론 기업들과 관련된 악성 게시물을 삭제해주고 지속적으로 기업의 평판을 관리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미니홈피, SNS에 게재된 글 중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게시글 중 퍼져나간 것들을 찾아내 흔적을 지운다.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게시물 또한 더 이상 남지 않도록 해준다. 개인들에게는 필요한 서비스임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고민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평판관리회사는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 순간의 실수, 악의 없는 거짓말로 인한 폐해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평판관리전문가는 2013년 7월 정부가 새로운 직업을 발굴해 육성하기로 한 국내 신종 직업 중의 하나다. 이들은 온라인상의 개인평판을 관리해 주며, 인터넷에 떠도는 나빠진 평판을 복구하고 관리하는 일을 수행하는 작업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평판관리회사들은 이를 악용 의뢰인 또는 기업에 유리한 기록은 남게 하고, 불리한 기록은 삭제해 과거를 ‘세탁’한다고 볼 수 있다.

▲ 보령메디앙스의 의뢰를 받은 S사가 포털사이트를 통해 게시중단을 요청한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의 게시글. 2009년 당시 식약청이 과대광고라고 지적한 6개 업체의 8개 어린이치약 제품이 기재돼 있을 뿐이다. ⓒ발칵한 용여솨 블로그

보령메디앙스, 블로거 글 지우려다 들통

지난 18일 10년 가까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이 5년 전에 게재한 글이 갑자기 블라인드 처리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블로거가 게재했던 원문을 확인한 결과 이는 지난 2009년 식약청(현 식약처)이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애주 전 의원에게 제출한 ‘식약청 어린이치약 특별 감시’ 결과 중 어린이치약 제조업체 6곳과 이들이 생산한 8개 제품을 정리한 표다.

제조업체는 LG생활건강, 보령메디앙스, 한국콜마, (주)국보싸이언스, (주)성원제약, 신화약품 등이다.

이들 업체들은 자사 어린이치약에 ‘삼켜도 안전하다’고 표시 및 광고를 했지만 식약청은 이런 표시가 소비자들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양치질을 하면서 치약을 삼킬 경우 치약 중에 함유된 불소를 과다하게 섭취, 불소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당국에서 조사한 결과를 국회의원이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포털사이트는 기업명과 제품을 정리해 놓은 표를 게재한 블로거에게 ‘고객님께서 작성하신 게시물이 게시중단(임시조치) 되어 안내 말씀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왔다.

포털사이트는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어서 게시중단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요청자는 보령메디앙스였다.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는 게시 중단된 글의 내용을 살펴봤지만 명예훼손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포털사이트 측에 이의를 제기, 포털사이트로부터 게시중단 해제 통보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는 보령메디앙스가 포털사이트에 해당 글에 대한 게시중단을 요청한 것이 아닌 평판관리 업체인 S사가 개입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시사포커스>가 보령메디앙스 측에 첫 번째로 확인했을 때 보령메디앙스 관계자는 “포털사이트에 게시중단 요청을 했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후 이어진 통화에서 이 관계자는 “업무에 착오가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게시중단 요청을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령메디앙스 측은 S사의 존재를 일절 밝히지 않았다.

<시사포커스>는 포털사이트에 직접 게시중단 요청을 했던 S사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S사는 전문적인 평판관리 업체로 개인과 기업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왜곡된 내용의 게시글을 삭제 처리해 주는 곳이다.

보령메디앙스 업무를 담당했던 S사 관계자는 <시사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2항에 의거해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했다. 우리의 요구가 적법하지 않았다면 포털사이트 측에서 해당 블로거의 게시글을 게시 중단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우리의 업무는 우리와 계약을 맺은 기업에 마이너스가 되는 글을 삭제시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이 팩트(fact)이든 아니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의뢰한 곳에 피해를 입힌다고 판단되면 게시중단을 요청하고 있다”며 “그런데 갑자기 보령메디앙스에서 연락이 와 게시중단 요청했던 것을 모두 취소하라고 말하더라. 나는 최선을 다해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보령메디앙스 측에서는 기자가 연락해 물어보더라도 아무것도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토대로 다시 한번 보령메디앙스 측에 연락해 대행사를 통해 게시중단 요청을 했느냐고 묻자 회사 관계자는 이를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행사에 얘기해 게시중단 요청을 했던 모든 게시글에 대해 복원 요청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시사포커스>는 보령메디앙스 관계자에게 S사로부터 사전에 블로거가 게시한 글에 대해 게시중단 요청을 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지 못했느냐, 평판관리를 대행해주는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관계자는 “게시중단 요청 철회를 요청했다”고만 하며 딴소리로 일관했다.

▲ 보령메디앙스가 2009년 식약청의 판매업무정지 조치에 따라 게시한 팝업 공지글. 이 글에는 “모든 소비자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보령메디앙스

선의의 피해 블로거 구제방법 없어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는 정부 자료를 국회의원이 발표한 내용 중 표만을 가져와 이용한 것을 두고 보령메디앙스가 게시중단을 요청한 것, 포털사이트가 무조건 게시중단 요청을 수용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는 “내 글이 문제가 된다면 문제점을 발표했던 국회의원과 이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도 보령메디앙스가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해당 글이 문제가 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요청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게시중단을 해버리는 포털사이트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포털에서 보낸 메일을 확인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30일 후에 그냥 삭제됐을 것 아니냐. 나처럼 글이 게시 중단됐지만 포털에서 온 메일을 확인하지 못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블로거들도 상당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발칵한 용여솨’는 현재 자신의 글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론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는 메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포털사이트와 보령메디앙스를 상대로 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발칵한 용여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법적 소송 외에는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에 확인 결과, 포털은 블로거가 게시한 글에 대해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해당 글을 게시중단 처리한다. 문제가 될 경우 피해자와 게시자가 법적 다툼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게시자의 글이 문제가 없다면 포털에 이의를 제기하고,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기업이 직접 포털에 제기하든, 대행사를 통해 제기하든 기업에 불리한 내용의 포스팅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으로 게시중단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분쟁이 많다. 현재로서는 이를 규제하는 법안이 없다”고 전제한 뒤 “이 때문에 방통위는 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를 둘 계획이다. 위원회가 생기게 되면 명예훼손과 관련해 일어나는 분쟁을 다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조정 기간은 짧아지게 될 것이고, 효력은 강화될 것이다. 현재 법제처에서 법안을 심사 중이다”고 설명했다.

보령메디앙스의 블로그 글 게시중단 요청으로 인해 불거진 문제가 향후에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소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블로거들에게 사과나 피해보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보령메디앙스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지만 어떤 식으로 사과를 할 것인지, 블로거들과는 어떻게 연락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블로거 ‘발칵한 용여솨’는 “기업들이 자신이 잘못한 것까지도 덮으려고 하는 행태에 어의가 없다. 블로거들도 여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개인이다 보니 기업에서 조직적으로 블로거들의 입을 막으려 하면 대응하기 힘들다. 이것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직접 나서지 않고 대행사를 통해 블로거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기업의 도리가 아니지 않나 생각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방통위 관계자는 평판관리회사의 존재와 이 회사들이 기업의 의뢰를 받고 기업에 부정적인 글을 게시한 블로거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게시중단 요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해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보겠다고 밝혔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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