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권의 대권구도가 급변하고 있다. 7.30재보궐선거가 야권의 정치지형에 거대한 변화를 촉발시킨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 등 이슈 호재 속에서도 재보궐선거에서 11대 4라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고, 이에 따른 파장으로 당내 거물급 대선주자 상당수가 줄줄이 2선 후퇴 또는 정계은퇴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재보선을 이끈 당 수뇌부가 김한길-안철수라는 ‘중도’ 성향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후폭풍은 고스란히 당내 중도세력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안철수 전 공동대표다. 손 전 고문은 재보선에 직접 선수로 나섰다가 정치신인에게 패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안철수 전 대표는 재보선 참패 책임으로 새정치의 깃발을 내리고 2선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중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이들이 빠진 야권의 대권구도는 결국, 친노 vs 박원순 구도로 편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7.30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야당에서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을 받은 인물은 단연 안철수 전 공동대표다. 손학규 상임고문이 뼈아프게 패배하며 정계은퇴까지 선언해버린 상황이지만, 손 고문은 ‘아름다운 은퇴’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그런 이유에서 일각에서는 손 고문이 이대로 정계를 은퇴해서는 안 된다며 박영선 비대위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손 고문을 다시 모셔오기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즉, 손 고문은 지금 죽은 듯 하지만 언제 부활할지 모를 휴화산인 셈이다.
그런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적 타격이 심각한 수준이다. 모호하기만 했던 ‘새정치’를 실현하겠다며 통합신당을 창당한 이후 ‘구태정치’ 비판만 받다가 불과 4개월여 만에 당대표 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말이 자진사퇴였지, 사실상 끌어내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안철수 재기 가능할까?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는 ‘안철수 청산’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다. 당내 강경파 의원들 사이에서 안철수 지우기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안 전 대표 또한 당의 자산이라며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는 것.
그동안 反안철수 목소리를 높여왔던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김한길과 안철수의 불안한 나눠먹기 동거체제를 일소해야 한다”며 “김-안 체제가 종식된 만큼 이제 고질적인 지분정치를 버리고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의원은 “당의 모든 망가진 조직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차근차근 로드맵을 짜야 한다”면서 “합당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고려해 당을 이 지경으로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처벌까지는 주장하지 않겠지만, 그 얼룩은 말끔하게 청소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사실상 ‘안철수 지우기’ 주장을 펼쳤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당장 당명부터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며 안철수로 대변되는 ‘새정치 실패’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에 대해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지만, 당내 反안철수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런 가운데, 안철수 전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를 두고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실상 안 전 대표에 대해 국민들은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 5~6일 전국 성인남녀 1,116명을 대상으로 ‘안철수 전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과반 이상인 52.0%가 ‘정치 활동을 접어야 한다’고 답했다.
‘휴식 후 활동 모색’이라는 응답은 23.5%, ‘적극적 활동 계속’ 응답은 17.9%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6%였다. 정당 지지성향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정치 활동을 접어야 한다’는 응답이 무려 74.7%나 됐다. ‘휴식 후 활동 모색’ 응답이 14.1%였고, ‘적극적 활동 계속’ 응답은 7.1%에 불과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에서는 ‘적극적 활동 계속’ 응답이 37.8%였으며, ‘휴식 후 활동 모색’ 응답이 36.8%, ‘정치 활동 접어야’ 응답은 18.1%로 조사됐다.
무당층에서는 ‘정치 활동 접어야 한다’는 응답이 35.6%였으며, ‘휴식 후 활동 모색’ 응답은 27.6%, ‘적극적 활동 계속’ 응답은 25.0%였다. 지역별로는 ‘정치 활동 접어야 한다’는 의견이 충청권(64.2%)과 경남권(62.0%)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도 60대 이상(65.6%)와 50대(61.5%)에서 높았다. ‘휴식 후 활동 모색’ 의견은 서울권(27.3%)과 전라권(27.0%), 30대(30.1%), 40대(26.1%)였다. ‘적극적 활동 계속’ 의견은 전라권(29.5%)과 서울권(19.1%), 20대(19.1%), 20대(28.8%), 30대(24.1%) 등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와 관련해 모노리서치 이민호 이사는 “재보궐선거 부진으로 정치 입문 후 최대 위기를 맞은 안철수 전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의견은 여야 지지층이 확실히 갈라졌다”며 “전반적으로 악화된 조건 속에서 안 전 대표의 입지가 상당히 축소됐지만, 기존 핵심 지지층들의 지지 이탈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조사는 RDD방식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 유권자에 기반한 비례할당 후 무작위 방식으로 표본을 추출, 유권자 구성비에 기초한 가중치기법을 적용해 실시됐다. 응답률은 5.6%였고,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2.93%p였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로 정치권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안철수 전 대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정치를 해보겠다는 그의 꿈이 불과 3년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인지, 먼 미래를 향하는 과정 속에 잠시 휴식기가 찾아온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손학규, 가장 아쉬운 낙선자
안철수 전 대표가 이처럼 2선으로 물러서게 된 가운데,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정계를 은퇴해 정치권에 적잖은 충격을 남겼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넘어온 손 고문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동안 항상 적자 논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당의 위기 때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구원투수로 나서 꺼져가던 당을 살려내기 일쑤였다.
그는 이번 7.30재보선에서도 당의 요청을 받고 기꺼이 사지인 보수 텃밭 수원에 출마했지만, 정치 신인에게 패배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길로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손 고문은 지난달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이라며 “이번 7.30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정계은퇴 선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손 고문은 그러면서 “저 자신의 정치력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정치의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어, “1993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분에 넘치는 국민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다”면서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시베리아 땅으로 나선 이래 민주당과 함께 한 저의 정치역정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보람 있는 여정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새정치국민회의(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고백한다”고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다.
손 고문은 그러나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라며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철학이다.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책임정치의 자세에서 그렇고 민주당과 한국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고 강조했다.
손 전 고문은 이렇게 정치를 떠났지만, 국민들은 크게 아쉬워했다. 지난 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7.30재보궐선거 낙선자 중 가장 아쉬운 인물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꼽히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 손학규 전 고문은 13%로 가장 아쉬운 인물 1위에 올랐고, 야권연대를 이뤄 선거에 나섰던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 11%,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 2.3%,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1.5%, 서갑원 전 의원 0.3%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당 안팎에서는 손 고문의 귀환을 기대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안철수 진자리 뜨는 김무성
한편, 7.30재보궐선거 직후인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7.30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대승을 이끈 김무성 대표가 여야를 아울러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 것. 이 조사에서 김무성 대표는 16.1%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김무성 대표에 이어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15.8%를 얻었으며, 3위는 13.7%를 얻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었다. 4위는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으로 10.6%를 얻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재보선 참패 책임을 지고 4개월여 만에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9.0%로 5위로 추락함과 동시에 한 자릿수 지지를 얻는 굴욕적 상황이 됐다. 이어서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6.3%를 얻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 5.5%, 안희정 충남지사 4.1%,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8%를 얻었다. 그동안 상위권을 야권 인사들이 모조리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발표됐던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15.5%) > 박원순(15.2%) > 김무성(13.4%) > 안철수 (10.7%) > 정몽준(10.3%) > 김문수(7.1%) > 남경필(4.7%) > 안희정(3.6%) > 손학규(2.8%) 등의 순이었다. 이 여론조사는 전화면접 및 ARS방식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를 병행해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1%p다.
같은 여론조사기관에서 11일 발표한 8월 첫째 주 주간집계 결과에서도 김무성 대표는 16.2%로 1위를 차지했다. 김 대표의 뒤를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 15.4%,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 15.3%,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 9.3%,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 8.6%, 김문수 전 경기지사 7.2%, 남경필 경기지사 4.2%, 안희정 충남지사 3.9%,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1.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김무성 대표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전 대표의 추락이 눈에 띄는 조사 결과다.
여권의 차기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김무성 대표는 17.9%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와는 격차가 커 김문수 전 지사가 10.3%를 얻었고, 정몽준 전 의원 8.7%, 남경필 경기지사 5.6%, 오세훈 전 서울시장 5.5%, 홍준표 경남지사 5.5%, 원희룡 제주지사 4.1%, 유정복 인천시장 1.3%를 기록했다.
야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선 문재인 의원 19.8%, 박원순 서울시장 16.2%, 안철수 전 대표 10.6%, 김부겸 전 의원 7.2%, 안희정 지사 5.5%, 박영선 비대위원장 4.1%, 정동영 고문 2.9%, 정세균 고문 2.4%였다. 이 조사는 4~8일 닷새 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유선전화 임의번호걸기(RDD) 전화면접(CATI) 및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으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