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시에 위치한 한 대형 유치원에서 여교사 4명이 한 달 반 동안 다섯 살배기 16명을 학대해온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범행을 저지른 교사들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때리거나 제 때 밥을 주지 않는 식으로 아이들을 괴롭혔다.
한 교사는 아이 2명이 다퉜다는 이유로 서로 때리게 했던 모습이 CCTV를 통해 확인됐다. 싸움을 한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교육적 의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힘없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다는 심술 같은 것마저 느껴진다. 이들은 어른이자 선생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을 저항을 못하는 무인격의 존재처럼 다뤘다.
가만 놔두면 살인에까지 이르게 되는 모든 아동 학대는 아이들을 미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무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이는 우리의 미래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미래를 만든다. 따라서 아이를 학대한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학대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초저출산 국가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학대하는 사회가 희망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동 학대는 희망을 파괴하는 사회의 자학적 범죄로 인식하고 그 실태를 직시해 예방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 어딘가에 내버려진 아이들
학대 하면 고문부터 머리에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때리고 괴롭히는 그런 고문 말이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아동의 경우 돌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무서운 학대에 해당한다.
포천 고무통 시신 발견 현장에서 여덟 살 된 아이가 난지도를 방불케 하는 집구석에서 굶주린 채 발견됐다고 했다. 더러운 환경 속에 아동을 방치하는 것은 분명히 아동 학대에 해당하고 때론 끔찍한 살인으로 끝맺는 수가 있다.
지난 4월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몇 년째 살던 초중고생 남매 4명이 보호기관 등에 인계된 사건이 있었다. 여러 매체에 따르면 ‘아이들끼리 있어서 불안하다, 상황을 확인해 달라’는 주민 신고가 들어와 인천 계양경찰서 경찰관 2명이 출동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10평 크기의 방과 거실에는 사람의 배설물이 묻은 이불과 기저귀, 도저히 한눈에 뭔지 파악이 안 되는 것들이 아무데나 쌓여 썩고 있었고 방바닥에는 죽은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방치돼 있었다. 부엌은 음식 쓰레기와 닦지 않은 그릇과 함께 더러운 빨래와 화장실에 쓰고 난 휴지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요양병원 간호조무사로 밤에 일하는 어머니 김모(39)씨는 “너무 바빠서 집안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왜 남의 일에 대해 간섭하느냐”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집 큰아들은 어머니는 잘 치우는 성격이 아니라 그동안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 집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렀지만 비위생적인 집안을 바꾸려고 했던 것 같진 않다. 장남은 불결한 환경에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남매 4명이 병원에서 조사를 받은 결과 한 명은 지적 장애가 의심됐고, 두 명은 발육 상태가 부진했고 한 명은 만성 변비로 복수가 들어찬 상태였다.
이들 남매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최악의 경우 아이들은 쓰레기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처럼 취급 받는 가슴 미어지게 하는 사건도 발생한다. 지난 4월 대구 동부경찰서는 28개월 된 아들의 코와 입을 막아 살해한 다음 시신을 쓰레기장에 유기한 정모(22)씨를 붙잡았다. 정씨는 바로 밖을 나가봐야 하는데 어린 아들이 원하는 대로 잠들지 않고 보챈다는 이유로 때리다가 급기야 입과 코를 막아 죽였다.
정씨가 급히 나가봐야 했던 볼일은 게임인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정씨는 아들의 시신을 한 날 남짓 집 안에 내버려두고 있다가 쓰레기 봉투에 담아 쓰레기장에 버렸다. 이 사건은 게임중독이란 관점에서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정씨는 아들을 살해하기 전부터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가끔씩 들어와 물과 음식물을 주는 게 교육의 전부였다.

‣ 칠곡 계모 학대 살인
칠곡 계모 사건은 범죄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다. 이 사건 안에 대한민국의 병리적 현상이 집약되어 있다. 어떻게 대한민국은 희망이 사라지게 되었는가라는 시각에서 이 사건은 재음미해 보자.
지난해 8월 경북 칠곡에서 친언니 C(12)양이 여동생(8) J양을 발로 차 숨지게 한 사건이 알려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동 학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아동 범죄 사건이었다. 세상은 경악했다. 그러나 어떻게 친언니가 자기 동생을 때려 숨지게 할 수 있지 하는 세간의 의구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의붓어머니가 의붓딸인 J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동생 J양을 죽였다고 진술했던 친언니 C양이 판사에게 한 비공개 증언에서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 계모가 누워 있는 동생의 배를 수차례 밟았고, 밤에 주먹으로 배를 15차례 가량 때렸다”고 말하면서 아동학대가 비극적 살인으로 끝나고 마는 역겹고 추악한 만행의 과정이 드러났다.
계모 임모씨(36)가 두 의붓딸에게 가한 학대는 잔혹동화를 연상케 한다. 청양고추 먹기를 강요하고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리거나 벌을 세우고 굶기는 것은 차라리 인간적인 학대에 속했다. J양에게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게 했다. 아버지 김모씨(38)도 덩달아 친딸을 자주 때렸다. J양은 부검에서 팔이 비틀려 부러져 있었다.
임씨는 저만 살겠다고 “너도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인형 때문에 발로 차서 동생을 숨지게 했다”고 허위진술을 강제해 자신의 죄를 C양에게 뒤집어 씌웠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씨가 J양이 임씨의 발에 짓밟혀 장파열로 죽어가는 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에 담아 C양에게 보여주고 협박했다.
C양이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 “아줌마(임씨)가 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세탁기가 고장 나자 아빠한테 내가 바로 차서 고장 냈다고 말했다. 판사님 사형시켜 주세요. 전 그 아줌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임씨와 김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과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그러다 지난 5월 하순경 대구지검은 임씨와 김씨에게 아동학대와 강요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임씨가 이들 자매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 행위 이외에도 해괴하다 싶을 정도의 학대를 받아온 사실이 확인됐다.
임씨는 C양이 배설물이 묻은 휴지를 먹게 했다. 또 옷을 모두 벗긴 뒤 찍은 사진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어린 마음을 협박하는 비열한 수법도 서슴치 않았다.
‣ 그밖의 사례들과 예방
이밖에도 아동 학대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울산에 살던 오모씨(당시 30)는 지난 2008년 2월 집 앞 슈퍼마켓에 게임을 하러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실종신고를 했으나 이는 속임수였다.
오씨는 의붓아들 우모군(당시 6)이 밥을 먹다가 구토를 하는 것을 보고 발로 때려 숨지게 했다. 우군의 시신을 종이상자에 넣은 오씨는 시신을 종이박스에 담아 콜밴을 타고 경주까지 가서 버려진 드럼통에 휘발유를 뿌리고 시신에 불을 질렀다.
2013년 10월 24일 중국동포 박모(당시 40)씨는 초등2년생인 의붓딸을 1시간에 걸쳐 때렸다. 갈비뼈 16개가 부러진 아이는 사망했다. 박씨도 아동을 학대하다가 숨지게 한 여느 범죄자와 같은 패턴을 따랐다. 박씨는 “딸이 목욕탕 욕조에 빠져 숨을 쉬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관은 딸의 양 옆구리에서 심한 멍을 보고 시신 부검을 하게 됐다. 소녀는 다발성 늑골 골절로 죽었다.
이 살인은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박씨가 2011년부터 3년 동안 꾸준히 학대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발로 차서 허벅지를 부러뜨렸고 손발에 2도 화상을 입혔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9명의 아동이 학대로 숨졌다.1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19일 국회 입법조사처에게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6월까지 모두 9명의 아동이 학대를 받아 죽었고 이 가운데 1세 미만 영아가 4명이었다. 피해자 중 5명은 신체적 학대나 정서적 학대, 방임 등 두 가지 이상의 학대가 가해지는 ‘중복 학대’로 사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의원이 ‘2013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인해 총 56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접수한 집계 결과에 불과하다. 법망을 피해 자행된 학대로 숨진 아동은 이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 아동의 학대유형은 기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방임’(12건, 54.5%)과 ‘신체학대’(7건, 31.8%), 신체·정서·성학대와 방임이 두 가지 이상 복합된 ‘중복학대’(3건, 13.6%) 등으로 조사됐다.

아동 학대 범죄의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 현상만은 아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전국의 아동상담소가 2013년도에 대응한 아동학대의 건수는 작년 대비 10.6% 증가한 7만 3,765건으로 사상 최다를 경신했다. 일본은 23년 동안 아동 학대 범죄가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분노의 출구를 약자인 아이에게 향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재근 의원은 “해를 거듭할수록 학대로 인해 고통 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고, 학대받은 아동 중 많은 수가 나중에 학대하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며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협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자스민 의원은 “아동학대는 대부분 부모에 의해 가정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과 신고가 중요하다”면서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해 아동보호 전문 시설 확충과 함께 정부의 더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여성가족부는 8월 8일부터 매월 8일을 보라데이(가정폭력 예방의 날)로 정하고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보라”는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자 조기발견을 위해 주변을 둘러 ‘보라’는 의미에서 쉽고 간결한 의미를 담아 캠페인 명칭으로 정해졌다.
여가부 김재련 권익증진국장은 “인식개선 캠페인과 예방교육을 통해 국민모두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및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과 함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수원지방법원은 25일 오후 법원 제3별관 4층 대회의실에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특별세미나를 연다. 이는 9월28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이런 개혁적인 노력과 함께 아동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북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아이를 자기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인식 속에서 본인의 화를 아이에게 풀면서 부모에 의한 학대가 일어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