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남성 학대, 빨간불 켜졌다
여성의 남성 학대, 빨간불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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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받는 남자들 인터뷰

지난 20일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통계가 발표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만7141여건에 달하는 가정폭력 건수 중 아내 학대가 가장 많았다. 여기까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는 칠곡·울산 계모 사건의 잔향이 남아 있어 아동이거나 아니면 고령화 시대이니 노인층일 거라고 예상하는 독자가 많았을 것이다.

결과는 여지없이 예상을 깨뜨렸다. 우리나라 가정폭력 피해자 2위는 남편이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돌발적인 현상은 아니다. 이미 2007년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매 맞는 남편’ 신고가 노인과 아동 학대를 추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편 학대 사건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 신고를 기피하듯 매 맞는 남자들도 여성 가해자에게 당한 학대 경험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왔던 사정도 한몫해 남성 학대가 주목을 못 받은 것 뿐이다. 이제 남성 학대는 숨겨져서는 안 된다. 성별과 상관없이 학대는 학대이며 인간의 자존감과 신뢰감을 파괴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 2012년 2월 지하철 4호선에서 일어난 일명 '선빵녀' 사건은 여성의 남성 폭행에 대한 불안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 로24

 ‣ 폭행과 학대의 차이

선빵녀는 2012년 2월에 온라인을 통해 유명해진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다. 지하철 4호선에서 선빵녀가 객석에 앉아 있는데 신체 건장한 한 사내가 통로를 지나다가 그녀의 다리를 건드렸다. 왜 건드려 미안해 하면서 두 남녀는 시비가 붙어 서로 욕설을 주고받다가 급기야 여자가 선빵으로 남자를 때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선빵녀 사건.

지금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동영상을 보면 선빵녀는 분명 남자에게 폭행을 행사했다. 이런 폭행이 학대와 결정적인 다른 점은 가해 시간의 지속성이다. 학대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서 피해자를 괴롭힌다.

얼마 전에 잉꼬 부부로 소문난 서정희-서세원 부부의 파경 소식이 전해졌다. 15일 LA중앙일보에 따르면 서정희씨는 32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 서씨의 폭력 문제를 숨겼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서씨는 “왜 참았느냐고 엄마이기 때문”이라며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 말했다.

이러던 그녀도 서세원씨가 쓰러져 있는 자신의 한 다리를 붙잡고 엘리베이터 안까지 질질 끌고 갔던 봉변을 당하고서는 참기가 힘들었다. 현재 미국에서 신앙생활에 몰두하고 있는 그녀는 “좋은 아내이고 싶었고,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컸다”며 학대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밝혔다.

▲ 잉꼬부부로 소문났던 서씨 부부의 파경 이면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학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 MBC

 학대는 혈연이나 애정 관계로 맺어진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다. 한쪽이 학대를 감수하기 시작하면 학대가 관계 속으로 스며든다. 이전의 배려와 관심은 사라지고 ‘괴롭혀 조종하려는’ 여성 가해자의 욕구가 관계를 지배하게 된다.

여성의 남성 학대는 주로 정서적·정신적·신체적 형태를 띤다. 이 중에서 남성에 대한 감정적 학대, 곧 여성 가해자가 남성 피해자의 마음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수단이 욕설과 조롱을 구사하는 폭언이다.

‣ ‘그녀의 폭언에 살의를 느꼈다’

지인을 통해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된 D씨(33)의 상대는 연상의 J씨였다. 중학교 동창의 소개로 만나 관계가 급속도로 깊어져 만난 지 2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29살이었던 D씨는 네 살 연상인 그녀와 결혼하자고 했으나 그녀가 동거부터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두 사람 관계는 언제부터 나빠졌나?
“동거 시작하고 한 달도 안 됐을 거다”

-무슨 일이 있었나?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성격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난리법석을 떨었다. 내가 구한 방이라서 나가달라고 했다. 나가더니 그날 새벽에 들어왔다. 할수없이 당분간 여기 있으라고 했다. 지옥 동거가 시작됐다”

-어떻게 됐나?
“집에 들어오면 밑도 끝도 없는 욕이었다. 뭐 이런 식이었다. 도망만 가는 인생, 제발 상식껏 행동해. 제 잘난 맛에 도취해서 살지.”

다음은 D씨가 나중을 대비해 몰래 녹음한 내용 사본이다.

[늘 생각 없는 행동으로 잘못만 저지르지. 왜 날 동거에 끌어들여. 병신새끼…역겨워 역겨워 너만 보면 역겨워. 넌 너가 죽을 때까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를 거야. 구제불능 말종이야. 난 너가 참 싫어 싫어 죽겠어 죽겠단 말야. 니가 인간이면 내가 왜 이러는지 생각을 해보란 말야.]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없다. 있다고 해도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욕할 때는 그렇게 잘 떠들다가 진지하게 말을 할라면 쓸데없는 소리만 했다”

[병신아 그리 살지 말길 바래요. 니가 최소 인간이면 미안한 맘을 가져 봐. 거지 같이 외로워 보여서 같이 살아줄라 그랬는데 배신을 때려. 넌 사람 대접을 해줄 수가 없어. 그러니 내 진심 욕이나 처먹고, 빈대 같은 새끼 내 사랑의 피를 빨아먹어 이제 배가 부르니까 혼자 있고 싶다고, 흥, 철딱서니 없는 자식, 난 널 한 번도 남자로 느낀 적이 없어. 좋은 척 해주기도 신물 났어]

-변심해서 화가 난 것 같은데…
“변심한 건 맞다. 그녀는 오히려 (그 결정이) 빨라서 괜찮다고 했고 내 집에 살면서 다른 남자도 사귀는 것 같았다. 난 모른 척했다.”

[넌 날 죽일 거야. 그래야 네 죄가 씻겨질 테니까. 네 개뿔 자존심을 정당화하고 싶겠지. 그러나 세상 사람들한테 다 물어 봐라. 너와 동거해준 날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할지. 넌 네 죄를 몰라. 넌 내 모든 걸 앗아갔어, 난 망가졌어. 제발 미안하게 생각해라. 이 병신 거지 새끼야. 뻔뻔하고 이기적인 새끼. 제발 상식적으로 세상을 살아 봐. 후안무치한 놈. 정신 나간 미친 놈. 헤어지자고 협박을 해. 미친 새끼 동거해줬으면 고맙다고 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나한테 나가라고, 내가 언제 여기 있겠다고 그랬니. 내 삶을 황폐화시키고 상처로 피나게 하고, 역겨운 네 이기심 신물 나. 다 도망갔어. 너 때문에 나 좋다던 남자들 다 도망갔어. 책임져. 이기적인 게으른 돼지 버러지 새끼야.]

-지금도 연락 오나?
“한 달에 한 번 몰아서 온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나?
“처음에 그런 생각 때문에 녹음도 했는데…그냥 더는 그런 욕 듣기 싫어서 지금도 자존심이 아파 가끔은 찾아가 죽이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런 폭언을 했는지 알고 싶다. 그냥 참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참아보고 싶다. 그 여자가 불쌍하다. 나도 불쌍하다. 세상 재미없다. 어떻든 내 떨어진 자존심은 걸레처럼 돼버렸다.”

-J씨는 어떻게 지내나?
“연애하면서 잘 산다 하더라.”

D씨는 현재 직장도 그만 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야구 얘기를 하러 나오는 게 외출의 전부라고 한다.

‣ 의처증 아내, 남편에게 칼을 휘두르다

여성 가해자는 남자를 괴롭힐 때 폭언을 애용하지만 가끔은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남자가 근육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아내가 던진 재떨이에 맞아 코뼈가 부러진 권투선수가 있으며, 야구방망이에 맞아 무릎 뼈가 부러진 유도 선수도 있다. 다음 인터뷰는 28일 신림동에 있는 대포집에서 이뤄졌다. 상대는 K(39)씨로 현재는 대리운전을 뛴다.

-어떤 여자였나?
“아직도 모르겠다”

-처음에도 몰랐나?
“몰랐다. 알았어도…노총각이었다. 중매로 만나 아파트에서 살림을 차렸다. 석 달은 아무 일 없이 남들 하는 만큼은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 친구가 오던 날부터 달라졌다. 늦여름이었다. 오랜만에 제일 친한 친구가 놀러온다고 맛있는 음식 좀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날은 회사에서 일찍 돌아왔다. 그런데 와 보니까 아내가 엄청 취해 있어서 몸도 못 가눌 정도였다. 침실에 눕히고 그래도 약속한 시간이 다 돼가 불고기를 만들고 있었다.”

-아내는 뭐하고 있었나?
“자고 있었다. 친구가 와서 잔다고 하고 가볍게 술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많이 웃었다. 얘기가 되는 여자였다. 그때 갑자기 문을 열고 아내가 팬티 바람으로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내 무릎 위에 엉금엉금 기어 나오더니 거실에서 똥을 질질 흘리며 화장실 쪽으로 갔다.

-………?
“한참 후에 깨끗이 씻고 나오더니 옷을 갈아입고 내 옆에 앉아서 셋이 술을 마셨다. 아내 친구는 레이싱 걸이었다. 자동차 경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아내는 혼자 술만 마셨다. 새벽 2시쯤인가 아내가 갑자기 물었다. 무슨 얘기를 나눴어요? 그래 내가 차 얘기하고 있잖아 하니까 아니 아까 나 잘 때 무슨 얘기를 나눴어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 왜 그래 젤 친한 친구 앞에서 이러니까 앞에 있던 친구가 잠시 아내를 바라보더니 자기 남자 친구한테 전화를 하더라.

30분 후에 스포츠카를 몰고 애인이 왔다. 가기 전에 친구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변한 게 없구나 그러면서 내게 명함 한 장을 남겨주고 갔다. 사단은 그날부터 시작됐다. 이 여자가 갑자기 나이프를 들더니 내 앞에서 저 년과 무슨 얘기를 나눴어 하면서 칼을 휘둘렀다. 그때 막다가 엄지손톱에 금이 갔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집을 나왔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들어가니까 아내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다.”

▲ ‘남자는 14.6초마다 아내나 여자 친구한테 심하게 맞는다’ ⓒ opt4

-어떻게 됐나?
“무서워졌다. 집에 와서 누가 날 보고 있다 싶어 고개를 돌리면 아내가 묘한 눈길로 웃음을 짓는 듯 마는 듯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은 일어나 보니 거실 중앙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들어오니까 내 앞에 머리카락 몇 올을 내밀며 이거 누구 거에요 하길래 당신 거잖아 하니까 내 머리카락 색깔 하곤 달라 어느 년야 하면서 악을 썼다. 이러면 이혼이야 하니까 시무룩해지더니 얌전해졌다. 언제는 놀러가자고 하더니 자기가 운전한다고 했다. 놔뒀더니 그날만 사람을 셋 칠 뻔했다.

나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아내는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짐을 싸고 나와 결혼 안 한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 지냈다. 아내는 심심하면 회사로 찾아와서 난리 법석을 피웠다. 여직원 얼굴을 보고 이년이야 저년이야 내 남편이랑 붙어먹어 좋아 하면서 개망신을 줬다. 그런 날 집에 가면 젖은 머리를 하고 술을 먹고 있었다. 매일 낮밤 없이 들들들 볶았다. 툭 하면 생리대를 사오라 했다. 발에 매니큐어를 칠해 달라고 했다. 머리만 빼고 온 몸에 털을 없애달라고 했다. 화를 내면 미안하다며 같이 죽지 않겠느냐고 했다. 같이 누워 있는 것도 불안했다. 밥도 불안해 먹기 싫었다.”

-왜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나?
“창피했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아내가 저런가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핸드폰 전화를 바꿨다. 가족들한테도 싹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도 남자가 아내한테 맞고 당한다는 이런 소리는 안 나온다.”
 

-결국 이혼했나?

그러고 말 것도 없었다. 1년을 날 괴롭히다가 갑자기 자살했으니까. 장례식은 그쪽에서 치렀다. 집에 가 보니 내 물건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제주도 신혼여행 때 호텔에서 기념으로 가져온 면도기 하나 남아 있더라.”

-재혼할 생각은 없나?
“가끔 아내 악몽을 꾼다. (지금) 힘들지만 (그건 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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