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꽉 막혀 있는 세월호 정국을 바라보면서 문득 ‘개헌’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야당에서는 특별법 합의가 진통을 겪자, ‘대통령 책임론’을 꺼내들며 온통 박근혜 대통령에게 활시위를 겨누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난 것도, 사고 대처가 잘못된 것도,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모두 다 대통령 책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만큼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성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대통령 책임이라고 몰아붙이기엔 조금 과한 느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헌’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는 이유는, 대통령이 가진 제왕적 권력에 대한 분산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에 이처럼 권력이 집중돼 있지 않았거나 각 부처와 총리 등 내치를 담당하는 관료들의 책임소지가 분명한 권력분점형 국가였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책임론도 이처럼 거세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역대 대통령들 또한 이런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가진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권력분점형 개헌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무산되기 일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제한적 개헌’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권들에서는 왜 대통령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춘 개헌을 추진하려 했었던 것일까? 숨겨진 정치적 의도들은 다를 수 있겠지만, 표면적인 대의명분은 대부분 일치한다. 우선,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내치와 외치 모두를 맡게 되면서 권한이 너무 비대해진 문제가 있다. 이른바 ‘제왕적 권력’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대통령이 되면 국가의 모든 권력을 틀어쥐게 되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권력이 집중되는 만큼 대통령은 우리 사회 온갖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최종 책임자가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 큰 만큼, 책임의 부담은 한 없이 더 크다는 의미다. 아울러 권력 주변은 대통령이 직접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부패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말 레임덕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러나 대통령 권위가 흔들리게 되는 자체가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이 국정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더 크다. 집권초기에는 전 정권으로부터 국정업무를 인수받고 국가와 사회 전반의 문제를 파악해 대안을 마련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임기 말 찾아오는 레임덕까지 여기에 더한다면 대통령 임기 5년 중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3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라는 것이 뿌리를 내리고 실효성 여부를 제대로 평가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3년 남짓한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전 정권이 추진한 정책들을 승계하는 풍토 역시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10차 개헌을 통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국민적 재신임 장치를 마련해두고, 8년 임기를 보장해줘야 대통령이 포퓰리즘에 매달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과도 내각에서 만들어진 기형적 ‘대통령-총리제도’ 또한 ‘대통령-부통령’ 제도로 다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책임 총리제’를 한다고 하지만, 총리 지명권이 대통령에게 있고 현재와 같은 행정부 구조라면 제대로 된 총리의 역할을 언제까지라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대통령과 부통령이 러닝메이트를 이뤄 국민적 선택을 받는 형태가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대통령과 부통령의 역할은 명확히 나눠져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고, 부통령이 내치를 담당하는 형태의 완전한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 아울러 부통령은 그야말로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를 이룬 것이지, 대통령의 종속 변수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야만 대통령 권력에 대한 상호 보완과 견제가 가능할 것이며, 현재의 대통령 권력 집중에 따른 폐해들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나 크다. 하지만, 그 상처는 지금 제대로 아물지도 못하고 더 큰 상처로 덧나고 있는 모습이다. 큰 틀에서 서로가 양보하고 합의해 이제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 정국을 가라앉히고 정치권은 서둘러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개헌은 또 다시 각 정파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당은 경제 살리기부터라는 핑계로 개헌 논의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혹시라도 조금 추진 시기가 늦어지게 되더라도 야당 역시 정국 전환용이라는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 개헌 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질질 끌어온 개헌, 이번 정권에서는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