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특례법, 이대로 괜찮은가?
아동학대 특례법,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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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예산 구멍 숭숭…‘속 빈 강정’ 되나

▲ 부산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 피해 아동 사진 ⓒ뉴시스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이 이달 29일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관련 인프라가 미흡한 것이 드러남은 물론, 예산 역시 부족한데다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폭탄돌리기’하려는 모습까지 내비치고 있어 특례법이‘허울 뿐인 법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 다가오는데…준비 ‘허술’
부족한 인프라…인력도 시설도 없어 ‘불안불안’
예산도 부족…지방자치단체에 폭탄 돌리는 정부

‘울산 계모 학대 사건’, ‘칠곡 계모 학대 사건’, ‘소금밥 학대 사건’,‘ 세자매 학대방치 사건’, ‘세종청사 만1세 원아 폭행사건’, ‘부산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 등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처럼 아동 폭행 범죄 수위가 높아지자 범국민적인 분노에 부딪힌 아동학대 대책특위와 복지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그동안 미뤄왔던 ‘아동학대범죄특례법’을 지난해 12월31일 전격 통과시켜 올 1월 28일 공포, 오는 9월24일 시행키로 했다.

특례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동학대를 범죄행위로 인식해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고, 학대아동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세부적으로 보면 네 가지로 나뉜다. ▲신고의무 확대 및 강화 ▲가중처벌 ▲친권상실 ▲피해아동보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신고의무 확대 및 강화는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되거나 의심되는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게끔 하는 조항이다.

또한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신고하도록 하여 신고의무자의 범위가 확대된다. 신고의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도 300만원에서 500만원 이하로 상향된다.

예를 들어,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돌보던 중 아이의 몸에 멍이 든 것을 발견하여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종전에는 아이돌보미에게 신고의무가 없었으나, 아동학대 특례법이 시행되면 아이돌보미가 이를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담해야 한다.

가중처벌은 아동학대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아동학대치사죄를 저지를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최고 무기징역), 아동학대로 아동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등 아동학대중상해죄를 저지를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여‘형법’상의 동일한 범죄보다 가중처벌되는 조항이다.

친권상실은 아동학대중상해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상습 아동학대행위자가 친권자인 경우 친권이 상실될 수 있는 조항, 피해아동보호는 아동학대 현장출동 시 학대행위자에 대해서 친권 제한과 같은 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여 피해아동을 신속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되는 조항이다.

▲ 특별법을 통과시켜놓고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정부의 모습에 전문가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익준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이 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Pixabay

◆부족한 인프라, 전문가들 “불안”

특히 이 특례법에 따르면, 학대 신고가 접수됐을 때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과 경찰이 함께 현장에 출동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다. 이를 위해 전국 시군구마다 지역별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두도록 했는데, 전국 시군구 232곳 가운데 법에서 정한 아동보호기관이 있는 곳은 51곳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례법에서 정한 보호기관 숫자가 부족한 건 물론, 학대 피해 아동이 임시거주할 수 있는 쉼터 역시 전국적으로 36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프라 부족은 국내 아동보호전문기관 47곳 상담원들의 업무량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이 결과에 따르면 상담원 한 명당 무려 58건에 달하는 아동학대 사례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상담원의 경우 한 명당 연간 10명 내외에 불과한 점을 미루어보면 1인당 걸리는 업무 부하가 5배 이상인 것이다.

또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가 종결될 때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231.5일이다. 현장 조사(3.5일)와 사후 관리(90일)까지 포함하면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할 때 인프라 부족은 더 심각한 상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2013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지난 2009년 9309건에서 2012년 1만943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인 2013년도에 신고 된 아동학대 건수만 총 1만3076건으로 하루 평균 35.8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그 심각성이 도를 넘고 있다.

특히 어린이집 등 시설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사례는 전체 건수의 8.7%에 해당하는 591건으로, 이 중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의한 학대가 36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보육교직원에 의한 학대가 202건, 기타복지시설 종사자에 의한 학대는 27건으로 나타났다.

인프라의 부족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머물 장소를 찾지 못한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간 아이들이 다시 학대받아 신고 되는 건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태의 심각성이 보다 더 잘 나타난다.

지난달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목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한테 건네받은 자료를 보면, 아동 재학대는 2010년 1262건에서 2011년 1,318건, 2012년 1,510건, 2013년 1840건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전체 아동 학대 신고 건수(1만3076건) 가운데 ‘재학대’ 유형은 14%에 이른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례법이 지닌 아동보호 등 사후 조치는 유명무실화되고 가해자 처벌 강화만 작동할 처지에 놓였다며 우려하고 있다. 부족한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0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에서 신고 의무자 교육을 위해 요청한 125억원이 기획재정부와 예산협의과정에서 전액 삭감됐고 내년도 예산안 예비협의에서 보건복지부가 아동보호 예산 436억원을 증액 요청한 것도 전액 삭감되면서 확보된 예산은 0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것 만큼 아동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정부의 지원이 중요하다”며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의 한 관계자는“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아동학대 처벌 수위가 낮은 편이다. 아동학대의 특징이 가족 내에 은폐돼 누군가 밖에서 신고를 해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며“특히 특례법을 시행하려면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데 예산이 없어 법이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아동복지법은 문제없나

특례법만으로는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아동보호는 복지부 관할인 ‘아동복지법’이 주력이고, 경찰수사와 처벌 등 법무부 관할 법인 만큼 아동보호와 관련한 예산에 대한 지원법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례법에서 포함하고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역할 확대를 위해 필요한 지원도 아동복지법에 근거해서 움직인다.

▲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관련 인프라는 물론 예산 역시 확보하지 못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처벌 강화만 남는 반쪽짜리 법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뉴시스

이런 점을 감안해 아동복지법도 특례법 통과에 맞춰 함께 개정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이 의결된 이후 9월 2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따르면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행복하고 안전하게 양육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경찰관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피해아동을 보호시설이나 의료기관에 인도 및 아동 인수를 거부할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됨으로 정당한 사유없이 인수 거부하지 못하게 된다.

또 학대 피해아동의 원활한 취학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주소지 이외의 지역에서 취학이 허용되는 한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하여 상담·교육 및 심리적 치료를 받을 것을 권고할 수 있게 된다.

또 아동학대관련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자는 집행종료·유예·면제된 날부터 10년 동안 아동관련기관인 어린이집·유치원·초중고교·아동복지시설 등에 취업할 수 없도록 했다. 아울러 아동관련기관이 직원 채용시 아동학대관련범죄 전력을 확인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아동학대관련 범죄전력자를 해임하지 않을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했다.

특히 개정법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1개 이상 두도록 했다. 이 시설을 1개 늘리고 그에 맞는 인력을 투입하는데 약 7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재원이 늘어나야 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 내용은 빠져있었다. 지난 2005년 아동학대 관련 사업이 지방이양 사업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지방자치단체들이 해당 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중앙정부에서 내려온 복지사업을 시행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복지 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시·도,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10~50%씩 일정 비율을 분담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사업 중 지방비 부담이 1000억원 이상인 사업이 11개에 이른다.

현재 정부는 생계급여 등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79%를 국고로 지원하고, 보육·양육수당의 절반가량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다. 기초연금의 지방비 부담률은 전체 액수의 23%이다. 안전행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2014년 지방자치단체 통합재정개요’에 따르면 지자체의 자체 세입은 전년대비 12조 원 감소했지만 사회복지비중은 전년도(35조 원)보다 14.6% 증가한 40조 1000억 원에 육박한다.

특히 부하가 걸리는 부분은 기초연금이다. 현 정권 임기 동안 기초연금을 전체 노인의 70%에 지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40조5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기초연금은 올해만 1조8000억원에 달하고, 내년에는 2조6000억원, 2017년까지 이번 정권 임기 내에 총 10조1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비 부담도 그에 따라 크게 늘어나 올해 서울시와 구청들은 3014억원, 인천시와 구청들은 3271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노령연금이 시행되던 작년과 비교해 올해부터 4년간 5조7000억원이 더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즉 들어오는 돈은 적어졌는데, 나가야 할 돈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기초연금 지급을 거부하겠다는 내용의‘복지 디폴트’(지급불능) 선언을 천명하고 나서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립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아동, 표 없다고 무시 말아야”

특별법을 통과시켜놓고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정부의 모습에 전문가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익준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 인식도 문제지만 아동 정책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아동복지가 실현될 수 있다”며“아동이 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대 국회 하반기 복지위원장인 김춘진 의원은 아동복지 재원 중앙환원 공청회에서“아동복지 사업은 더이상 지자체 사업으로 넘길 수 없다”며“이제는 국가가 아동복지에 책임을 가지고 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한편, 2013년 ‘OECD 국가와 한국의 아동가족복지지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아동복지예산은 2012년 기준 전체 사회복지예산의 0.25%, 보건복지부 예산의 0.6%를 차지한다. 2009년 기준 OECD 국가 34개국으로 조사한 결과 GDP 대비 아동복지예산 지출은 32위로 꼴지 수준이었다. [시사포커스 / 최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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