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
개헌,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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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되면서 꽉 막혀 있던 수도관이 뚫린 것처럼 빠르게 정국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미뤄뒀던 민생법안 처리는 물론이고, 다시 본격적으로 각종 규제철폐와 공공개혁 과제들에 불씨를 되살려야 할 때다. 경제활성화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고, 부동산 등 기타 각종 정부 시행 정책에 대한 후속 대책 마련 등도 지금 시급한 상황이다.

그동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만큼 지금 여야에 주어진 책임은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밀린 숙제부터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또 다른 곳에 신경을 팔고 있는 모습이 보여 우려스럽다. 바로 개헌론이다. 여당 내 비주류 세력과 야당 일각을 중심으로 최근 개헌론이 불붙으면서 그 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개헌론자들의 주장에 필자 또한 깊이 공감하며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지금이 개헌의 최적기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지금 정치권은 수개 월 간 세월호 특별법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 왔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미뤄둔 일부터 처리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개헌이 지금 적기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절대적 시간의 개념은 있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고, 국회파행 사태가 없는, 평온한 정국 상황이었더라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개헌을 추진하기 좋을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국민에게 죄송한 만큼, 적어도 미뤄뒀던 일부터 처리해놓고 개헌 얘기를 하자는 게 순리이자 도리일 것이다. 아울러, 지금 개헌론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개헌이 사실상 권력구조 개편의 원 포인트에 맞춰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에 10차 개헌이 이뤄진다면 낡은 87년 체제에서 벗어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계는 물론이고, 관계 전문가 및 범국민적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충분히 공론화 되고,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 개헌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외치고 있는 만큼 통일시대를 대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과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통일조항이 상충한다는 점이다. 영토조항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는 모순된 상황이 된다. 이미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국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 헌법에서는 북한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까지로 규정하고 있으면서 그 범위에 포함돼 있는 북한과 통일을 하겠다는 것 또한 논리적 모순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이 조항들부터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1995년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여년 넘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지방분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인권과 생명 및 환경 등 시대에 맞게 보다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 등도 10차 개헌을 통해 손봐야 할 부분들이다.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조금 더 차분히, 해야 할 일들을 해놓고 난 이후 꼼꼼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박강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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