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 최대주주 등극 ‘꿩먹고 알먹기’
로지스틱스 매각 후 ‘글로벌’ 지분 강화
상선, 과감한 조직개편…증권, 매각 연기
유동성 위기에 신음했던 현대그룹이 활력을 찾는 모양새다. 알짜 계열사와 자산들을 과감히 매각하며 유동성을 확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 해소와 경영권 강화라는 결과까지 얻었다. 아직까지는 현정은 회장이 던진 승부수가, 현대에게나 현 회장에게나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현대글로벌과의 지분교환을 통해서다. 이번 거래로 현 회장은 그룹 지배구조를 효율화하는 동시에, 현대엘리베이터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 ‘현 회장 주축’ 지배구조 다지기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글로벌은 전일 현 회장,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상선 전무 등 특수관계인 5명이 소유한 현대상선 지분 2.04%(372만3040주)와 현대글로벌이 소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6.05%(118만8620주)를 맞교환했다.
거래가는 24일 종가기준으로 산정됐다. 현대상선은 주당 1만2100원, 현대엘리베이터는 주당 3만7900원이다. 거래규모는 약 450억4900만원에 달했다. 이번 거래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는 현대글로벌에서 현 회장으로 바뀌었다. 주식수는 현대글로벌 190만6406주, 현 회장 190만6409주로 단 3주 차이다.
이번 현대글로벌,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맞교환이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일단 현대엘리베이터 내 현 회장의 입지가 커졌다.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거래 전후 5.03%에서 9.71%로 거의 2배 늘어났다. 그룹 전체로도 현 회장을 중심으로 정리된 지배구조가 조금 더 효율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앞서 ‘현대로지스틱스 매각→현대글로벌 지분 매입’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현대는 지난 7월 일본계 금융자본인 오릭스에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전량(88.8%)을 약 6000억원에 매각했다. 현 회장은 이중 12.04%를 보유했다. 이에 따라 현 회장은 매각 후 813만43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지난달 현 회장은 사재를 털어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글로벌 지분 24.8%를 332억원에 사들였다. 현대유엔아이가 보유한 현대글로벌 지분 8.1%도 108억원에 매입했다. 이로써 현 회장 일가의 현대글로벌 지분은 100%가 됐다.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자금으로 현대글로벌 영향력을 늘린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현대에는 새로운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기존 ‘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현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기타 계열사’라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현 회장이 최상위에 놓인 상황에서 주식 맞교환까지 이뤄지며 ‘현정은 체제’는 더욱 공고히 된 셈이다.
◇ 구조조정 진행은?
현대는 현재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해운업황이 침체되면서 실적악화를 겪은 현대상선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번진 탓이다. 이 때문에 현대는 지난해 12월 3조30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자구안을 발표했다. 초기에는 금융당국이 속도를 내달라고 재촉할 정도로 탐탁치 않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지난 1년간 2조8200억원 규모 자구안을 실행하며 빠른 속도로 유동성 위기를 타파해가고 있다. 이 기간 현대는 현대로지스틱스(6000억원), LNG운송사업(9700억원) 등 사업부문과 신한금융지주 지분(960억원), 부산신항 장비(500억원) 등 자산을 매각했다. 또 현대상선 외자유치(1170억원) 등 자기자본도 확충했다.
유동성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현대상선은 고강도 조직개편에 나섰다. 현대상선은 CEO 산하에 있던 기획·지원부문, 컨테이너사업부문, 벌크사업부문 등 3개 부문과 본부를 폐지하고, 기능과 효율성 중심의 7개의 총괄과 2센터가 신설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해외조직도 2개 센터로 통폐합했다.
다만 현대증권 매각은 내년으로 연기했다.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시점을 내년으로 미뤘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현대증권의 주채권단이다. 업계는 현대증권 인수전에 국내 대기업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흥행실패가 우려됐기 때문으로 봤다. 인수전에는 일본 오릭스, 국내 사모펀드 파인스트리트, 중국 푸싱그룹 등 3곳이 참여했다.
어쨌든 현대증권 매각만 이뤄지면 현대의 구조조정은 거의 마무리된다. 현대는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현 회장의 그룹 내 장악력도 커진 상태다. 과연 일련의 상황이 현대에 전화위복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