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저축은행 사태의 여파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저축은행 업계가 부활을 꿈꾸고 있는 가운데 SBI 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이 저축은행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일 SBI 저축은행은 지난 1일 더케이호텔서울에서 1·2·3·4 계열 저축은행들의 합병 절차를 마무리하고 통합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했다고 밝혔다. SBI 저축은행 통합법인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3조8443억원에 달해 저축은행 업계 1위는 물론이고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의 총자산(3조2889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를 자랑한다.
이어 SBI 저축은행은 이달 인천과 광주지점을 개점하고 40~50명 규모의 직원을 신규채용하는 등 사세 확장에 나선다. 이 경우 SBI 저축은행의 지점수는 20개로 늘어 자산규모 뿐 아니라 영업 점포 수에서도 업계 1위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SBI 저축은행은 “이달 말 인천·광주 지점이 개점되면 시중은행 수준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SBI 저축은행은 이번 통합을 기념해 오는 3일부터 적금 전체 상품의 기본금리를 0.4%p 일괄 인상하고 최저 4.6%의 금리가 적용되는 적금 특판도 계약금액 기준 1000억원 한도로 시행한다.
이 같은 합병 및 대형화의 움직임은 SBI 저축은행 뿐이 아니다. 웰컴저축은행 역시 3일 서일저축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짓고 영업을 개시했다. 웰컴저축은행은 서일저축은행 직원 중 희망하는 직원에 대해 100% 고용을 승계했고, 이번 합병으로 수도권과 부산·경남권에 치우쳐있던 영업망을 충청·대전지역까지 확대해 전국 총 14개의 영업점을 가지게 됐다.
당분간 저축은행의 몸집 불리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정례회의를 열어 웰컴저축은행과 서일저축은행의 합병 인가안을 승인하면서 동시에 OK저축은행과 OK2저축은행의 합병 인가안도 승인했다. 이에 앞서 HK저축은행은 지난 10월초 자회사인 부산HK저축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통합H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한국투자저축은행도 지난 9월 예성저축은행과 합병한 후 경기·인천·호남·제주지역 등 기존 영업망에 서울을 추가로 확보해 총 12개 점포를 보유하게 됐다. 친애저축은행은 SC금융지주 계열인 SC저축은행 인수를 추진 중이다. 친애·SC저축은행의 합병이 이뤄지면 연초 89개였던 저축은행의 수가 80개로 줄어들게 된다.
이 같은 저축은행들의 대형화 움직임은 2011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한지 3년 남짓 밖에 되지 않은 점을 상기해 볼 때 가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금융위가 2011년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7개의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시작됐던 저축은행 사태는 그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며 많은 예금자들을 울렸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그동안 무리하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취급한 저축은행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졌고 이들 저축은행에 돈을 맡겨둔 5천만원 이상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 투자자들이 하루 아침에 피해자로 전락했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원리금 기준으로 1인당 5천만원까지의 예금은 전액 보호받지만 5천만원 한도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PF란 채무자의 신용이나 담보가 아닌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경제성을 보고 이뤄지는 대출로서 주로 사회·경제적 재산성을 가지고 있는 부동산 개발 관련 사업에서 이뤄진다.
또한 예금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한 저축은행에서는 1시간만에 90억원이 인출되는 등 ‘뱅크런’(집중적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연달아 이어졌고 저축은행들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며 그 부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퇴출된 저축은행은 30개에 달했으며 저축은행 업계의 자산규모는 57.6%나 감소했다.
당시의 교훈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는 저축은행 업계는 구조조정과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확보 등을 통해 꾸준히 경영정상화를 위해 힘써왔다. 이에 지난 6월 금융당국은 약 3년간 이어졌던 저축은행 부실사태 종료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지난달 2일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가 87개 저축은행의 2013회계연도 결산 실적을 공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말 저축은행 업계의 당기순손실은 4954억원을 기록, 작년 동기(1조 1252억원) 대비 56%(6298억원)나 감소했다. 적자 저축은행의 수도 34곳으로 1분기 49곳보다 15곳 감소했고 저축은행들의 자기 자본 역시 4조 237억을 기록해 1년 전에 비해 8388억원(26.3%)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또한 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6월말 21.3%에서 1년만에 2.5%p 하락한 18.8%를 기록했다. 고정이하여신은 3개월 이상 연체돼 대출 이자를 받지 못하거나 원금까지 떼일 수 있는 부실대출로, 수치가 낮을수록 그만큼 자산건전성이 좋다는 의미다.
총자산 중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은 9.88%에서 14.33%로 상승해 무려 4.45%p 상승했다. 재무구조가 한층 건전해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2013회계연도 4분기에는 23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2008년 이후 무려 6년 만에 분기 기준으로 흑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축은행들의 실적이 나아진 건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함께 쌓여있던 부실을 대거 정리한 덕분이다.
아직 부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처럼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내실이 탄탄해졌고 당국 역시 지원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금융위는 저축은행 수익성 확보를 위해 ‘저축은행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이 대책을 통해 저축은행의 카드영업 허용, 펀드·보험상품 판매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7개 저축은행이 지난달 31일부터 삼성화재의 주요 보험상품 판매에 나섰다.
또한 지난달 15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저축은행의 지역금융기관 역할 강화를 위해 업계와 공동으로 ‘관계형 금융’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추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저축은행 고객의 금융서비스 접근성 제고를 위해 점포 설치 규제가 완화되고 출장소·여신전문출장소 설치시 증자 의무를 베재하고 점포 설치 인가제가 신고제로 바뀐다. 또한 충당금 적립 기준 완화를 통해 장기거래 고객에 대해 금리 인하를 유도하고 연체 없고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에 대해서는 저축은행이 자율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 역시 저축은행의 선호도 증가에 기폭제가 됐다. 시중은행의 예금·적금 금리가 1%대에서 0%대로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을 고려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경영실태가 개선되자 체력이 단단해진 일부 저축은행들이 대형화 및 몸집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저축은행들이 계열사를 합병하거나 타 저축은행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는 가장 큰 이유는 경영 효율화를 위해서다. SBI 저축은행처럼 4개로 흩어져 있는 계열사들을 합치면 전산 관리, 감사 등에 있어 중복으로 발생했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출 수도 있다.
또한 과거에는 계열사가 분리돼 있으면 동일인에 대한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는 회사당 5천만원이 적용되는 예금보호한도를 의식한 면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의 장기화된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이러한 점이 매력이 없어졌다. 저성장·저금리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그같은 전략이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이다. SBI 저축은행은 “계열 저축은행에 분산 예치한 고객중 5천만원을 넘는 거액 예금주가 많지 않아 합치더라도 자금이탈 우려가 별로 없어 통합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신면에서도 분리에 따른 실익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저축은행의 경우 동일인 여신한도는 현행법상 법인 100억원, 개인 50억원이다. SBI 저축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개인은 물론 법인도 계열 저축은행을 다 합쳐 한도에 다 찰 정도로 쓰는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최근 저축은행들의 계열사 합병은 과거와는 달리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분산돼 있던 영업망 등을 하나로 통합해 효율화하자는 차원인 셈이다.
한편 저축은행의 대형화 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수익다각화와 리스크 관리능력을 키우는 것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실제 SBI 저축은행은 감독당국으로부터 BIS 자기자본비율을 7%로 맞추라고 경영개선요구를 받은 것을 이행하기 위해 이미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SBI 저축은행은 지난해 3월 대주주인 일본계 투자금융사 SBI홀딩스가 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뒤 총 1조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경영을 정상화한 바 있다. 이로써 당국의 기준은 충족시켰지만 대규모의 금액이 들어간 만큼 누적 적자를 해소를 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하다.
각종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규제는 심해지고 금리는 갈수록 떨어지는 등 영업환경도 여전히 좋지만은 않다. 고금리 대출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마땅한 수익원이 없는 상태에서 소액 채권을 매입해 추심업을 하는 등의 영업방식에 집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저축은행의 영업 성격상 이 같은 대형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하며 “시중 은행과 저축은행의 역할분담은 규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업무 영역에서의 분담으로 봐야한다”고 선을 긋고 “대형 저축은행의 경우에는 은행과 저축은행 사이에서 고객 군이 애매해지는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과거 PF 부실로부터 촉발된 저축은행 사태의 교훈을 잊지 말고 감독당국의 엄정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