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2일 공식 출간될 예정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담긴 주요 내용들이 28일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최근 뜨거운 관심사인 부실 자원외교 논란을 비롯해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 일관된 대북정책을 강조하며 남북정상회담까지 포기했던 일화 등을 비교적 상세히 밝혔다.
◆자원외교-4대강 “야당 비판 사실과 달라”
우선,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는 자원외교 논란과 관련해서는 “2014년 12월 현재 야당은 우리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실적에 대해 공세를 펴고 있다”며 “자원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다.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유감스런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야당의 비판이 사실과 대부분 다르다는 점에 큰 문제가 있다”며 “과장된 정치적 공세는 공직자들이 자원 전쟁에서 손을 놓고 복지부동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위험-고수익 구조라는 자원개발의 특성상 해외 자원 투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어지는 것”이라며 “오랫동안 유전 개발을 해온 서구 선진국들도 많은 검토 끝에 시추해서 기름이 나올 확률은 20에 불과하다. 실패한 사업만을 꼬집어 단기적인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해외 자원 개발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엄벌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침소봉대해 자원외교나 해외 자원개발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에너지와 자원 확보는 미래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 정부 시절 공기업이 해외 자원에 투자한 26조원 중 4조원은 이미 회수됐다”며 “2014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의하면 미래의 이자비용까지 감안한 현재 가치로 환산된 향후 회수 예상액은 26조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덧붙여 “총회수 전망액은 30조원으로 투자 대비 총회수율은 114.8%에 이른다”며 “전임 정부 시절 투자된 해외 자원 사업의 총회수율 102.7%보다도 12.1%포인트 더 높은 수준”이라고 야당의 부실 자원외교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아울러, “국제 자원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격변하고 있다”며 “유가가 언제까지 이 상태로 지속되리라고 낙관할 순 없다. 오히려 이런 시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원외교의 성과를 성급히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선진국이 하천을 통한 경제발전과 국민 복지를 위해 수백 년 동안 해왔던 일들을 우리가 최신 기술로 최단시간에 완수한 것”이라며 “현존하는 자연재해와 다가오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 없이 선동성 주장을 일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야당을 비롯한 4대강 사업 비판론자들에 대해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그린 뉴딜’이라 불리면서 국제사회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비공식 만찬 중) 오바마는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한국이 즉각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정 투자에 나설 수 있었는지 물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질문에 이 전 대통령은 “우리는 다행히 사업 계획의 4대강 정비 내용이 이미 선거 공약에 들어 있었고, 한국은 미국에 비해 국토가 작아 그만큼 빨리 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일화 외에도 당시 타이 잉락 총리가 기술 공유를 요청했던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모로코, 파라과이, 페루, 알제리 등 많은 국가들이 4대강 현장을 방문해 깊은 감명을 받고 우리 정부와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며 “내가 독일의 RMD 운하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우리의 4대강이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대상이 된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특히, 4대강 사업 예산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22조2000억원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6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15조3000억원의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확정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별도로 농림수산식품부와 환경부가 계속 사업으로 진행해온 6조9000억원의 예산이 포함된 금액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건설을 위한 사업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내 임기가 5년 단임이고 여야 유력한 대권 후보들이 대운하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상황에서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 4대강 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었다”고 반박했다.
4대강 사업에 따라 녹조 발생이 심화됐다는 논란에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시행한 남한강은 녹조가 없었던 반면, 공사를 안 한 북한강과 서울 한강 본류에 극심한 녹조가 나타났다”며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4대강 공사로 인해 녹조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국익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국제사회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선공약을 내세웠다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폐기된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관련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추진했었다”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수해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자 24조원에서 87조원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하천 정비 계획을 세 차례나 발표한 적이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하천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격적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정치적 반대 세력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반대론자들은 막무가내로 대운하 사업을 물고 늘어졌다”며 “이어서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했지만 선거 후유증 때문인지 대운하 사업은 경제나 환경문제를 넘어 정치문제로 변질돼갔다”고 지적했다.
◆“김정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또, 회고록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포기했었던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온 김기남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는 “저희 장군님께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이전 정권이 해놓은 일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거나 하지 않는다. 남북 간에는 많은 합의가 있다”며 “김일성 주석과 노태우 대통령이 합의한 문서도 있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은 거듭 조문단에게 남북대화에서 핵 문제 등이 논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김기식 비서는 “예, 알겠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정확하게 모두 전달하여 올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원자바오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는데 정상회담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던 것을 전하며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은 그동안 남측이 자신들을 만나려 안달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거절의 뜻을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만 정상회담의 대가나 조건 없이 만나 핵 문제를 비롯해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2007년 대선 당선 직후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준데 대해 감사하는 내용’의 친필 서한을 북측에 보내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제안도 받았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다”며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밖에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그해 7월 국가정보원 고위급 이사가 방북했었던 사실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우리가 제시한 원칙 이외에도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며 “그러자 북측은 쌀 50만t의 지원을 요구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북한에서 수차례 접촉이 이뤄지면서 천안함 폭침 사과 문제가 논의되는 동안 2010년 11월, 북한은 또 다시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다”며 “도발을 통해 물적 지원을 받아내곤 했던 행태를 되풀이하려 했다”고 북측의 요구를 거절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2009년에도 김양건 통일선전부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전해왔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때도 북한은 쌀과 비료 등 경제 지원을 조건으로 제시했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7일 개성에서 통일부와 북한의 통일전선부 실무 접촉이 있었는데 북한은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서명한 내용이라며 합의서를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합의서에는 정상회담 조건으로 옥수수 10만t, 쌀 40만t, 비료 30만t,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1억 달러), 국가개발은행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제공 등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 “문서에 지원 내역과 일정을 정리해놓은 것이 마치 무슨 정형화한 정상회담 계산서 같은 느낌이었다”며 회고했다.
◆광우병 사태…盧정부 약속해놨던 상태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터진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큰 딜레마를 안고 취임해야 했다”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뼛조각 사건’ 이후 일련의 사태로 우리 국민은 ‘미국산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만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면서 “그러나 전임 정부가 미국에 국제수역사무국(OIE) 권고를 존중해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겠다고 한 약속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미국과의 약속을 깨야했고, 약속을 지키자니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형국이었다”면서 “전임 대통령이 여러 차례 약속한 상황이라 협상의 여지도 크지 않았고 미국은 OIE 기준 준수를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전 당선인 시절이었던 2008년 2월 18일 청와대 관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났던 사실을 전했다. 당시 일화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과 약속했다는 점은 시인하면서도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다고 해서 미국 의회가 FTA를 처리해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며 “취임한 뒤 미국과 FTA 문제를 논의할 때 쇠고기 협상을 조건으로 내세워 자동차 재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라는 조언을 했다”고 밝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와 관련해서는 “일부 정치 세력이 괴담을 퍼뜨리고 공포를 조장하는 상황에서 일단 국민을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동시에 국민의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국민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러나 “집회가 정권 퇴진 주장 양상으로 변하자 일각에서는 17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대선 불복 세력이 집회를 주도한다는 분석도 나왔다”며 “정치 세력들이 집회에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는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사퇴 이외에도 국정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이후 국정 운영에서 국민과의 소통이 주요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광우병 사태의 교훈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한미FTA 체결에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청와대 정무분야 참모들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FTA 체결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넘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면에서 정치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국익 차원에서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반대를 무릅쓰고 FTA 체결에 나섰던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