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 손실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곤두박질 친 정유사들이 울상을 지으면서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잠정 실적을 집계하고 연결기준 매출액 65조8757억원, 영업손실 224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적자는 1977년 이후 37년 만이며, 특히 2241억원의 영업손실은 2013년의 1조4064억원의 영업이익에 비해 무려 1조6000억원 이상 감소한 것이다. 순식간에 1조원대의 영업이익이 수천억원 대의 영업손실로 탈바꿈 한 셈이다.
에쓰오일 역시 지난해 매출 28조 5576억원, 영업손실 2589억원으로 집계돼 원유 정제시설 상업 가동 첫해인 1980년 이후 34년 만에 첫 적자를 냈다. 에쓰오일의 2013년도 영업이익은 3660억원 정도로 1년여 만에 6250억여원 감소했다. 두 정유사의 영업이익 감소분만 합쳐도 2조원을 가뿐히 넘기는 수치가 나온다.
오는 12일 지난해 실적을 공개하는 GS칼텍스는 1~3분기 누적 손실 규모가 40억원대였으나 유가 하락이 본격화된 4분기에만 4천억원 안팎의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산돼 연간 영업손실 규모가 3~5000억원 대로 예측된다.
GS칼텍스의 2013년 영업이익은 9001억원이었던 만큼 시장의 예상대로라면 지난해 GS칼텍스의 영업이익 감소 규모는 SK이노베이션과 유사한 1조4000억원대가 될 전망이다. 따라서 GS칼텍스 역시 다른 정유사들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의 적자 자체는 2008년 이후 7년만이고 추산 규모가 현실화된다고 가정할 경우 1968년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매출 규모가 가장 작은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792억원이고 4분기에도 흑자를 본 것으로 알려져 18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양날의 검’ 재고손실, 반등 포인트 될까
이처럼 정유사들 대부분의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한 것은 주로 재고 손실 탓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정제마진 약화에 지난해 4분기에만 국제 유가가 40달러나 폭락하면서 재고평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금까지는 보통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 부문에서 손해가 발생해도 석유화학 등 다른 사업에서 이를 만회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유가 하락폭이 상상을 초월한 만큼 만회가 힘들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부문 영업손실은 9919억원으로 나타났다. 타 사업에서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정유부문에서 1조원에 가까운 손실에 태양광 전지·배터리 등 신사업 부문의 손실 3000여억원까지 더해지며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에쓰오일 역시 석유화학 등 타 사업에서 439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정유부문의 손실이 7000억원에 가깝게 발생하면서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흑자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현대오일뱅크는 겨울철 수요 증가를 앞두고도 원유 도입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정제시설 가동률을 낮추며 대응한 전략이 먹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정제규모가 작다는 점이 오히려 타사보다 발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던 셈이다.
현재 하루 평균 정제 가능량은 SK이노베이션 약 111만5000배럴, GS칼텍스 77만5000배럴, 에쓰오일 66만9000배럴, 현대오일뱅크 39만배럴 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4분기에도 흑자를 기록할 경우 10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유사들이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조만간 다시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4분기 실적악화에 따른 적자전환은 국제유가가 시장 논리가 아닌 패권 다툼에 기인한 비정상적인 변수 때문에 하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감산 신호에 대한 기대로 국제 유가가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SK이노베이션이나 에쓰오일이 지난해 4분기 바닥을 치고 30% 이상 올랐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유가가 반등할 경우 지난해 천문학적인 규모로 발생했던 재고 손실이 유가 반등분 만큼 이익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비록 석유화학 등 타 사업부문의 영업이익도 함께 줄었지만 이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제품 가격의 전반적인 하락 탓으로 풀이되고 있는 만큼 2분기부터는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날 실적을 발표하는 컨퍼런스콜에서 “당분간은 국제 유가의 약세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산유국들이 생산량 조절에 나서면서 추가 하락은 없을 것”이라며 “유가 하락에 따라 정제마진이 일부 개선된 측면이 있어 반사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