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되살아난 악몽 ‘국정원 대선개입’
朴, 되살아난 악몽 ‘국정원 대선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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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노무현 전 대통령 망신주고-대선개입하고 ‘경악’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사실상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개입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는 것으로, 집권 3년차 다시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 / 유용준 기자,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발목을 잡혔던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집권 3년차가 막 시작되자마자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집권 1년차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집권 2년차 ‘세월호 파동’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또 다시 거센 풍파에 휩쓸릴 조짐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결국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은 끈질기게 따라다닐 것이며, 이로 인해 제대로 된 국정수행을 하기란 힘들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부터였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이 정치개입을 지시해 국정원법을 위반한 혐의와 선거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선거개입으로 보고, 원 전 원장이 이를 지시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은 사실상 국정원이 박근혜 후보 선거를 도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피고인들은 국정원의 소중한 기능과 조직을 특정 정당 반대활동에 활용했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동으로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항소심에서조차 이 같이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고 판결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야당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짓말 대통령이다” 등 강도 높은 비난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목소리 커진다
원세훈 전 원장 징역형 선고에 여당은 “국정원은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심기일전하고 재발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며 유감의 뜻을 밝히는데 그쳤지만, 야당은 달랐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다시 전면적 문제제기에 나섰다.

참여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이해찬 의원은 25일 국회 본회의 정치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선고 문제를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가 (박근혜 정부)2년 동안 참 많은 혼란을 겪었다”면서 “저는 가장 인상적인 것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얼마 전 징역 3년을 받고 2심에서 구속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의 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것”이라며 “제가 정치하면서 이런 것은 처음 봤다. 이 사건 하나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거듭 비난했다.

이 의원은 또, “전두환 대통령 때, 그때도 국정원이 이렇게 선거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었다”면서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런 꼴이 됐나? 대통령께서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 적도 없고 이용한 적도 없다는 것 저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쯤 되면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대통령 직속기관의 전 원장이 구속됐기 때문에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특히, 이 의원은 “저는 원세훈 원장하고 서울시에서 같이 일을 해봤기 때문에 잘 안다”며 “그분이 혼자서 이런 짓을 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배후가 따로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이 의원은 사실상 이명박 정권 자체를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해찬 의원이 ‘정통성이 무너졌다’고 표현했다면, 정청래 최고위원은 보다 직설적으로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표현했다. 정 최고위원은 앞선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여기에 조그만 잡티라도 부정선거가 개입됐다면 그 부분에 대해 한 표라도 도움을 받은 세력은 그 부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은 최소한 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선거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고 말한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10년 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셨다가 이것을 시비삼아 탄핵까지 갔다”며 “새누리당 정권이, 박근혜 대통령이 그 부분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된다. 입장을 밝혀야 된다고 요구하는 우리에게 대선 불복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일갈했다.

◆누가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노 전 대통령 수사내용에 대해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정원이었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 실형선고가 박근혜 정부 정통성을 심각하게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 듯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검 중수부로 소환하는 등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현 변호사)이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가정보원”이라고 밝혀 거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시계 등 금품을 받은 혐의로 2009년 4월 30일 대검 중수부 소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도덕성을 강조해온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대검 중수부 소환조사를 받는 불명예스런 일을 당하면서 심적 괴로움이 커졌고, 이 때문에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이인규 전 수사부장이 이 같이 국정원 탓을 제기하면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경향신문>이 25일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일부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마치고 돌아간 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권 여사가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 전 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 여사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국정원이) 그런 식으로 말을 만들어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특히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두고 ‘검찰의 망신주기식 수사’ 비난이 들끓으며, 노 전 대통령 죽음의 배경이 됐다는 책임론이 자신에게 집중됐었던데 대해서도 괴로웠던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은 “그 사건을 맡은 것 자체가 내겐 불행이었다”면서 “이후 내 진로도 틀어지고 가족들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이 전 부장은 사표를 냈던 바 있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오히려 검사장으로 승진해 논란이 일기도 있었다.

한편,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국정원의 ‘언론플레이’ 장본인으로 지목한 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아울러, 국정원은 검찰에 ‘시계 언론플레이’를 제안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옛 대검 중수부 출신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을 앞둔 시점에 국정원 측이 시계 얘기를 (언론에) 강조하자는 의견을 전해왔고, 검찰은 수사기법상 소환 전 오픈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소환 직전 시계 수수 의혹이 집중적으로 보도됐고, 소환 이후엔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野 격분, “진실 규명하라”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이 같은 폭로에 야당은 격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25일 관련 브리핑에서 “국가정보원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검찰 수사 책임자의 고백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공작정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정보위, 법사위 등 관련 상임위를 긴급 소집해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어, “검찰 수사 결과가 허위로 언론에 제공되어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면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더욱이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국정원이 퇴임한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 이러한 공작을 벌였다는데 섬뜩한 충격을 느낀다”고 맹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수사 당시 근거 없는 피의사실이 무차별적으로 흘러나와 의문을 자아냈는데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다니 침통하다”고 덧붙여 말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언론플레이의 장본인으로 국정원을 지목한 만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개입 여부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수석대변인은 “공작정치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왜 국가정보원이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 공작정치를 벌였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며 “국정원의 누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 어떠한 식으로 언론에 이런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제공했는지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날 우윤근 원내대표 역시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침조간에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내용을 과장, 왜곡해서 언론에 제공한 사실을 이인규 전 대검중수부장이 폭로했다”며 “국정원이 전직 대통령 수사내용을 과장, 왜곡해서 언론에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들에 잘못된 내용을 전하게 한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반드시 관련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할 것”이라며 “관련 상임위를 긴급소집해서 이 문제를 철저히 가리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덧붙여 밝히기도 했다.

한편,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인규 중수부장의 노 대통령 수사관련, 국정원이 언론플레이하고 빨대를 넘어 공작 수준이었다는 폭로는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 이 전 부장의 폭로 배경으로 “당시 수사주역은 이인규, 우병우 부장인데, 노 대통령 서거에 책임이 있던 당사자로서 억울하다는 형식을 띠고는 있으나, 우병우 민정수석 취임 직후라는 점과 MB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점, 공무상비밀누설 공소시효 5년 경과 뒤 작심발언이라는 점,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 고공행진 국면에서 나온 점 등을 종합하면, 다목적 다용도 의도적 발언으로 보여진다”고 내다봤다.

또한 검찰의 문제점에 대해선 “그나저나 수사내용은 아무리 국정원이라도 검사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라며 “대검 중수부가 도청에 뚫리지는 않았을 테고”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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