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농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세워진 농협이 본연의 취지에서 벗어난 방만 경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14년 농협중앙회 정기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1~2014년도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부문의 기관운영 분야와 경제사업분야, 농업용 면세유 공급 분야, 대출‧여신관리 분야 등 4개 분야에 대한 감사 실시 결과 농협중앙회와 지역 농‧축협조합 11곳은 대부분의 항목에서 ‘기관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외에도 최근 농협은 택배사업을 올해 주요사업으로 계획하고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택배업체들의 원성을 샀다. 당초 농협 측은 우체국이 주말 업무를 중단하면서 농민들이 농수산물 배송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을 택배사업 진출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택배업체들은 농수산물의 경우 전체 택배 물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또 질 좋은 우리 먹거리를 공급한다는 면에서 신뢰도가 높았던 농협이 최근 불거진 ‘폐기물 계란’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아성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 농‧축협조합, 각종 비리 백태
지난달 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부문과 지역 농‧축협조합 11곳에 대해 벌인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항목은 크게 ▲기관운영 분야 ▲경제사업분야 ▲농업용 면세유 공급 분야 ▲대출‧여신관리 분야로 총 4개 항목이었고, 이에 따른 세부 사항 84개를 점검했다.
감사 결과 특히 기관운영 분야의 문제가 비교적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농협 1곳과 축협 3곳이 기관주의 조치를 받은 ‘법인카드 사용 및 관리 부적정’ 항목 감사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농‧축협조합은 법인카드를 노래방 등에서 사용하면서 사용자 실명을 기재하지 않았으며 지급회의서 작성 시 여러 건의 집행 증명서류를 묶어서 한 건으로 처리했다.
‘업무추진비 및 기타경비 예산편성 집행 부적정’항목의 감사 결과 농업협동조합 회원지원부에서는 연도별 기타경비의 편성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임의로 예산을 편성하여 집행하고 있었다. 또 한 지역 축협에서는 2011년부터 2014년도까지 기타경비 항목에 9049만원을 편성하여 집행하면서 이 중 환대‧경조사비 명목으로 1808만원(181건)을 부적정하게 집행했다.
‘교육지원사업비 예산 편성 및 집행 소홀’부분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농림축산부에 따르면 교육지원사업비의 경우 영농과 직접 관련된 예산의 현금 또는 상품권 형태의 지원을 금지하고 명절 시 선물비 지급 등 선심성 예산집행에 쓰이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한 지역 축협의 경우 2011년부터 2012년 사이 교육지원사업비 에서 조합원에게 주는 명절선물 명목으로 하나로마트 교환권 9억 6570만원을 부정하게 집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분에 대해 지난 2일 <연합뉴스>는 “(교육지원사업비의 경우) 일선 조합에서 조합원들에게 조합 이익을 돌려주는 차원이라 하지만 다음 조합장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현직 조합장 이름으로 선심을 쓸 소지가 다분한 만큼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라고 보도하면서 해당 축협의 조합장이 3·11 조합장동시선거를 앞두고 돈선거를 벌이려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추측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며 “선거가 아니라도 있는 예산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추측인 것 같다. 만약 (돈선거)정황이 포착됐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따로 조치를 내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식품부로부터 내려진 시정조치의 이행에 대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건들이 워낙 많아서 행정조치가 내려진 부분들이 어떻게 시정되고 있는지 다 확인할 수는 없다”면서도 “일반적으로 지적을 받으면 시정조치를 진행하게 돼 있다”고 짧게 답변했다.

◆ “농협 택배진출, 업계 공멸의 길”
지역 농‧축협 뿐만 아니라 중앙회에서도 발견된 이 같은 방만 경영의 잔재들을 뒤로 하고, 최근 농협이 택배사업을 계획하고 나서 업계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농협이 택배사업 진출을 올해 주요 사업으로 계획하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중소업체 인수합병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자 18개 택배업체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월 20일 한국통합물류협회는 “농협은 자회사가 44개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라면서 “농협이 택배업계에 진출하면 업계가 공멸할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거대한 자본을 무기로 영세한 중소 택배업체들을 흡수해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인프라를 아무 대가없이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통합물류협회 배명순 사무국장은 “기존 택배업체들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 구축한 노하우가 있는데, (농협은) 잘 훈련된 택배기사들을 빼가는 형식으로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업계가 황폐해지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농협은 우체국이 주말 택배업무를 중단한 것과 관련해 농민들이 불편해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농수산물 직배송을 위한 택배업에 관심을 보여 왔다. 이와 관련해 한국통합물류협회 배 국장은 “말이 안된다. 농협이 말하는 (농수산물)물량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세한 물량”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농협은 대한통운과 로젠택배 인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었다. 당시 정부가 농협 택배사업 진출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협의 택배 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등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겼고, 지난해 10월 23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국회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농협이 토‧일요일 없이 상시로 하는 택배사업을 검토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농협중앙회 이상욱 농업경제대표는 “농협이 택배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농가이익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재무분석 결과 3년 정도 하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체국이 주5일 근무에 따라 주말배송을 중단해 신선농산물의 유지, 판매가 필요해졌다”며 “마침 정부도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택배사업 진출은 농협의 오랜 꿈이었다. 8년 전부터 택배사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민간 택배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우체국 택배가 주말배송을 중단하면서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은 힘을 얻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택배시장은 포화상태”라며 “농협까지 가세한다면 단가는 현재 마지노선인 2200원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2일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농협은 우체국 주말 배송이 중단됐다는 점을 명분으로 택배사업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사실상 우체국 전체 농수산물 취급 물량 중 주말 취급 물량은 0.057%이며, 모든 택배사들 전체 취급 물량 중 우체국 농수산물 취급 물량은 0.006%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체국은 주말 배송을 안 한다고 하지만, 민간 택배사들의 경우 토요일 배송을 나가고 일요일까지 집하가 된다”면서 “농협의 결정은 민간 택배사는 신경도 안쓴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식품 전문 유통기업, 아성 무너지나
최근 대장균 시리얼과 애벌레 미니쉘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식품업계의 품질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소비자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 업체의 식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농협은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은 곳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양계농협의 한 계란 가공 공장에서 폐기돼야 할 계란을 식품제조에 사용한 것이 드러나 소비자들의 반발을 샀다. 해당 원료가 사용된 제품을 판매하는 식품업체는 황급히 제품을 회수하고 나섰다.
한국양계농협 가공 공장의 비위생적인 운영 및 관리가 드러난 것과 관련해 지난달 16일 롯데제과와 해테제과는 홈페이지에 농협한국양계의 계란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해당 원료가 사용된 제품을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롯데제과는 “원료의 안정성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이라며 “롯데제과는 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납품업체의 검사 성적서와는 별개로 자체 검사 시스템을 갖추고 그것을 통과한 원료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제품에 대해 원료 상태에서부터 제품 출하시점까지 일정 간격으로 세균 검사, 산도 검사, 맛 검사 등 4~5차례의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제과는 ‘소프트칙촉’과 ‘드림케이크’ 2종에 대해 자진 회수를 결정했다. 드림케이크의 경우 현재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있다. 해태제과 역시 지난해 제조된 ‘쉬폰케이크’와 ‘칼로리바란스’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회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13일 KBS는 ‘농협 계란 공장, 폐기물 계란 모아 식품 원료 사용’이라는 제목으로 농협 계란가공공장의 비위생적인 가공 실태에 대해 잇따라 보도했다. 문제의 공장은 정부가 식품 안전을 보증하는 ‘해썹’ 인증을 받은 곳으로 드러나 논란이 가중됐다.
이날 방송분에서는 계란 껍데기를 처리할 때 흘러나오는 폐수를 끌어와 정상 제품에 섞고 포장까지 끝낸 제품을 다시 살균실로 옮겨 재가공하는 장면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해당 시설을 KBS에 알린 제보자는 방송 장면에 대해 “계란을 파쇄하면서 나오는 그 계란 국물을 통에 모아놨다가 수중 펌프로 빨아서 지금 정상 제품 나오는 데에다가 섞는 거예요”라며 “음식물 쓰레기 국물을 예를 들어서 육수처럼 썼다면 저희가 먹을 수 있겠냐고요”라고 설명했다.
‘폐기물 계란’논란이 확산되자 한국양계농협은 지난달 14일 의혹이 제기된 계란가공공장을 잠정 폐쇄하겠다고 결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농협중앙회도 사과문을 내고 “해당 조합에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며 특별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며 “전국 축협의 모든 축산물 가공공장에는 비상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농협은 폐기물 계란으로 인해 기업의 자존심이었던 농‧식품 유통의 명성에 금이 간 사실과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와중에 새로운 분야로의 사업 확장은 어불성설이라 할만하다. 지금은 ‘농업인에게는 풍요로운 미래를, 고객에게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집중해 기본을 다시 다지는 것에 더 공을 들여야 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