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개월째 단일 조선사로서 세계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결국 사실상 사장 공백 사태를 맞게 돼 만만치 않은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16일 대우조선해양은 임시 이사회를 열었으나 사장 인선 안건을 상정하지 않고 후임 사장이 결정될 때까지 고재호 현 사장을 유임하는 안건을 확정했다.
이날 오전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오늘 이사회에 차기 사장 인선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다”며 “추후 일정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임시 주주총회를 포함한 차기 주주총회까지 고재호 사장이 상법상 대표이사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변동 없이 행사한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또 대표이사 선임 건으로 침체된 사내 분위기를 쇄신하고 해외 선주들의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 조만간 비상경영조치를 발표하고 자회사를 포함한 정기 임원인사, 조직 개편, 사업계획 확정 등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유임 조치에 따라에 이달 31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주총회에서 차기 사장에 대한 정식 인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비록 대내외적인 우려처럼 공백 사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사실상의 ‘대행’ 꼬리표가 붙은 것이나 다름없어 대내외적 불안감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기가 보장된 것이 아니라 산업은행 측이 언제든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교체할 수 있다는 결정인 만큼 사실상 경영 공백 상태에 빠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 1위 발돋움 하는 시점에 하필...
사장 인선 작업이 지연에 지연을 거듭한 끝에 결국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잘 나가던’ 대우조선해양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끼게 됐다.
17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는 수주잔량 795만7000CGT(가중치를 부여한 수정환산톤수), 125척으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502만6000CGT·100척)를 제치고 4개월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486만6000CGT·83척), 현대미포조선 울산조선소(343만9000CGT·153척), 현대삼호중공업 삼호조선소(341만8000CGT·78척)이 나란히 뒤를 이었다. 6~8위는 중국 조선소가 이름을 올렸고 성동해양조선 통영조선소가 198만7000CGT·75척으로 9위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그룹에 속한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합친 그룹 전체의 글로벌 1위는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단일 조선소를 기준으로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4개월 연속 글로벌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창사 이래 두 번째로 높은 149억달러를 수주하며 수주 목표였던 145억 달러를 초과달성했고, 특히 지난해 12월 한 달에만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을 35척을 수주, 46억 달러를 수주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조선업계 업황 악화에 경쟁사들이 울상을 짓던 것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711억원에 달했다.

◆고재호 사장, 실적·신뢰·노사관계 다 잡아
이처럼 대우조선해양이 홀로 웃은 배경에는 고재호 현 사장의 공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2012년 취임한 고재호 사장은 취임 후 ‘3연임 로비 의혹’ 등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퇴임한 남상태 전 사장의 뒤처리를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고재호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이어진 불황속에서도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바탕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취임 첫 해 수주 목표를 대부분 달성해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고재호 사장 취임 이후 수천억 원대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지난해에도 수주 목표를 초과달성해 연임은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노조와의 관계에서도 큰 잡음 없이 잘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낙하산 인사를 전면 반대하고 나선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 9일 서울 을지로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고재호 사장의 연임에 대한 찬성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통상임금을 놓고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 비춰 볼 때 타사와 달리 이러한 노조의 지지 의사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지난 1월에는 현시한 대우조선해양 노조 위원장이 고재호 사장에게 축하난을 보내며 “지난해 어려운 시장환경 속에서도 수주목표를 달성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8월 가장 먼저 임단협을 타결하며 24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어갔다.
이밖에 해외 선주들 역시 고재호 사장에게 큰 신뢰를 보내는 등 잇따라 수주 계약을 체결하는 데에 있어 고재호 사장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한척당 3억2000만달러에 달하는 쇄빙 LNG선 15척을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인 ‘야말 프로젝트’ 역시 고재호 사장이 직접 뛰어다니면서 일일이 친분을 쌓아 따낸 수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야말 지역에서 생산되는 액화천연가스를 북극항로를 통해 운송하는 사업으로서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정상과 러시아 노바텍, 프랑스 토탈, 중국 CNPC 등 글로벌 오일메이저, 각국 국영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야말 프로젝트에서 수주한 쇄빙LNG선의 금액은 총47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퍼지는 불안…수주 감소, 신뢰도 하락 우려
후임 사장 문제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우선적으로 조선업계 특성상 거액이 들어가는 장기 프로젝트가 대부분인 만큼 사업의 지속성과 회사 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해외 선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본사를 방문한 러시아 국영 선박회사 소브콤플로트의 세르게이 프랭크 회장이 꼽힌다. 프랭크 회장은 이날 고재호 사장을 만나 차기 사장 선임을 둘러싼 회사 측의 내홍과 생산 차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소브콤플로트는 야말 프로젝트에서 쇄빙LNG선 5척을 발주한 주요 고객사다. 전날인 10일에는 그리스 최대 선사에 속하는 안젤리코시스에서 대우조선해양 측에 차기 사장 인선을 둘러싼 혼선에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 쇄빙LNG선 15척을 수주한 야말 프로젝트 역시 전반적으로 혼선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주 과정에서 고재호 사장의 역할이 컸던 만큼 향후 협의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브콤플로트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LNG선을 발주했다.
사장 인선이 혼선에 빠지면서 지난해 대박을 냈음에도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수주 목표를 130억달러로 오히려 낮췄다. 지난해 목표 달성에 큰 역할을 했던 야말 프로젝트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올해는 수주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해양플랜트 부문의 수주 부진도 이어질 것으로 봤다.
이미 수주 부진은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까지 12~14억 달러를 수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2월 중순 이후부터 수주 소식은 끊겼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선주사들이 최소한 임기가 1년 이상 보장된 CEO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주사들이 사실상 ‘대행’ 꼬리표를 달고 있는 CEO와 프로젝트 관련 협의를 진행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계약 논의를 누구와 진행해야할지 혼란스러워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프로젝트 지속성 측면에서만 우려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일반적인 민간기업과 다르다는 점이 해외에 부각되면서 세계적인 조선사가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 국가적인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임직원들과 지역 상권에 종사하는 거제시민이 입을 피해 역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사장이 교체될 경우 낙하산 인사 논쟁으로 인한 차기 사장의 경영 동력 상실도 문제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대우조선해양에서는 1~2개월 전에 차기 사장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전속결로 처리됐다면 적어도 현재보다는 덜 화제가 되면서 큰 동력 상실 없이 적응할 기회도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왔다는 평가다. 이미 차기 후보군에 대한 장단점이 명확해진 상태에서 업계의 우려처럼 낙하산 인사가 이뤄질 경우 사실상 ‘바지 사장’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신뢰도는 크게 떨어지게 될 위험이 있다.

◆윗선 논란 감수하며 교체 검토하는 이유는?
산업은행은 왜 고재호 사장의 연임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윗선’이 있다는 의혹까지 받으며 차일피일 인선 문제를 미루고 있을까.
업계에서는 고재호 사장의 교체 방침을 정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도 공식적·비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이 함구령에 가깝게 말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는 실적 호조에도 회사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조선업계전반적인 업황 부진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크긴 하지만 등급하향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상승은 불가피 하다.
실제로 지난 11일 대우조선해양은 3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 발행 조건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하면서 파격적인 고금리를 내세워야 했다.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차환 때문에 회사채 발행이 성공해야 했지만, 가뜩이나 업황도 좋지 않아 투자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신용등급마저 낮아 일반적인 민평금리(민간 채권평가사들이 평가한 회사채 금리의 평균) 수준으로는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민평금리 수준에 0.45%p를 더한 고금리를 내세워 3290억원의 수요를 끌어모아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확정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당초 내세웠던 5000억원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잇따라 회사채 흥행에 성공했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 A+보다 높은 AA를 마크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2013년 휘말린 납품 비리 논란에 주목했다는 점도 교체설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임원급 4명, 차장·부장급 6명, 대리 1명 등 전·현직 직원 11명이 구속 기소되고 임원급 2명과 부장급 1명 등 3명이 불구속 기소, 나머지 임직원 12명이 징계 통보되는 사건을 겪었다. 여기에 거액의 금품을 바친 협력업체 관계자 6명도 구속 기소됐고 10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징계자를 제외하고도 기소된 관련자만 30여명에 달하는 초대형 사건이었다.
이들은 주택 구입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한 업체로부터 받아 주택을 매수하고 해당 업체에 임대해 통상 임대료보다 2배가 넘는 돈을 받은 혐의를 받거나, 순금 열쇠·해외여행 경비 일체 제공, 신용카드와 휴대폰 제공, 1억원이 넘는 현금 수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시 임직원들은 1인당 평균 2억원 이상을 챙긴 혐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 사장은 재발방지를 위해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임원 60명 전원의 사표를 받아 이 가운데 10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정년퇴임자와 자회사 재취업을 제외하면 실제로 물러난 것은 비리 장본인인 두 명과 책임지고 물러난 조달부문장 한 명 뿐이었다.
산업은행의 ‘윗선’이 이처럼 대규모 비리가 자행되는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고재호 사장의 교체를 결정했다는 얘기다. 그후 고재호 사장은 윤리 경영을 선포하며 불명예를 씻기 위해 힘을 기울였지만 최근 한 협력사 회장이 지난해 말 발표된 수석위원 이하 승진자 명부를 입수해 205명에게 최고가 축전과 선물을 보낸 사실이 감사실에 적발돼 다시 비리 은폐 의혹이 불붙은 상태다.
감사실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임원 일부는 해당 협력사 회장이 축전과 선물을 보낸 것이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조치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인물을 감싸는 위선적인 형태”라는 여론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산업은행을 비롯한 ‘윗선’이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해이해진 내부 기강과 비리 행태에 주목했다는 분석이 사실일 경우 고재호 사장의 교체는 기정사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포스코를 비롯해 SK건설, 신세계, 동부, 금호아시아나 등 전방위적으로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전반적인 흐름상 대우조선해양에도 ‘부패’라는 잣대가 들이대질 경우 고재호 사장의 교체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남상태 전 사장이 3연임에 실패한 이유도 이번에 적용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고재호 사장이 취임하기 전 남상태 사장은 2006년부터 글로벌 경영위기에도 회사를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연임에 성공했지만 2012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주가가 오르지 않고 시가총액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이유로 남상태 사장의 3연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시총은 2006년 5조2천억원에서 2012년 5조5천억원으로 제자리걸음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고재호 사장 역시 교체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시총은 현재 3조원 대 초반까지 떨어져 있다. 다만 실적이 워낙 두드러지고 시총 감소는 국제 유가 폭락과 조선업 불황의 영향이 큰 만큼 전처럼 시총 감소만을 이유로 교체하기는 힘들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