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로 인하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가 1%대로 진입했다. 이에 보험산업이 역마진 확대 등 수익성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아울러 악화되는 수익성으로 인한 보험료 상승과 고객혜택이 줄어듬으로 인한 시장 축소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업계의 앞길에 먹구름이 낀 가운데, 오는 2018년 도입이 예정된 국제회계기준 2단계(IFRS4 2단계)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보험산업 전체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보험산업이 세 가지 악재를 맞았다. 첫째로, 사상 처음 연 1%대 초저금리 시대의 돌입으로 자산운용수익률 하락과 이차역마진 확대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둘째로, 보험사의 자산운용 수익률 감소로 인해 보험요율이 보험 가입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될 수 있다.
또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궁극적으로 보험료 인상요인이 될 수 있다. 즉,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수익률은 떨어지게 돼 보험 상품을 찾는 고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년 앞으로 다가온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도 불안 요소다.
◆1%대 저금리…수익성 악화 ‘나비효과’
이에 더해 보험사들은 기준금리 인하와 지급여력비율 규제 강화까지 부담이 커져 수익성 악화가 가중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보험사들의 역마진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초저금리는 곧 보험사들의 수익성 위기로 이어진다. 저금리로 기존에 팔았던 고금리 상품의 역마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보험료적립금 평균이율은 4.9% 안팎인 데 반해 보험료 운용자산 수익률은 4.5%선에 그치고 있다. 생보사들의 과거에 팔았던 5% 이상 확정이율 보험상품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40조6,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보험사들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2000년 사이에 연 6.5% 이상의 확정금리 상품을 팔았다. 외환위기 때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공격적으로 상품 판매에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금리연동형 상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저금리가 지속될 경우 보험사 자산운용수익률 하락과 이차역마진 확대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표준이율이 시장금리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경우에는 보험사의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차역마진이란 고객에게 약속했던 이자보다 보험사의 운용이익률이 낮아 보험사가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유승창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보험사의 순투자수익률도 금리하락에 따라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보험사의 운용자산 중 채권이나 대출 등 이자부자산 비중이 60%를 상회하고 있어 저금리에 따른 순투자수익률 하락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력 떨어지는 보험…시장 축소 우려
업계는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보험사의 공시이율(시중금리와 연동되는 일종의 보험 예정금리)이 하락하면서 고객에게 돌려줄 혜택이 줄어들고, 자산운용수익률 하락이 보험상품 가격에 반영되면서 보험료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험료 상승에 대한 부담으로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전체 고객이 줄면서 시장 축소의 우려가 있는 것이다. 즉,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수익률은 떨어지게 돼 보험 상품을 찾는 고객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
보험연구원 황인창 연구위원은 16일 ‘금리인하가 보험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인하로 보험 상품 구매 선호도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교보·한화생명과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 등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업계 각각 상위 3개사가 취급하는 보장성·저축·연금 등 보험상품의 평균 공시이율은 지난해 1월 약 3.7∼4.0%에서 1년여가 지난 이달 들어 모두 3%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황 위원은 “기준금리가 내려가면서 보험료 산출 기준이 되는 예정이율도 하락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번에 거듭 금리가 인하되면서 앞으로 예정이율 하락과 함께 보험료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가 나중에 고객에게 보험금·환급금을 지급할 때 적용하는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고객이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는 비싸져 구매력이 떨어진다. 또 금리연동형 보험상품의 경우 이율이 낮아지면서 나중에 고객에게 돌아가는 환급금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다. 특히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입하는 생보사의 연금·장기보험 등이 금리인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황 위원은 “최근 보험사들이 역마진으로 인한 리스크를 피하려고 금리연동형 상품 판매를 확대해 왔다”며 “이런 상품들의 환급금이 줄면서 고객이 느끼는 보험 매력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IFRS 도입 눈앞…발등 불 떨어진 보험업계
이런 가운데 보험사들이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은 2018년 도입이 예정된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이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보험회사 재무건전성 규제’ 보고서를 통해 2018년 시행되는 보험회계기준 개정안(IFRS 2단계)이 적용되면 생보사들의 가용자본이 60.3%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약 68조원인 가용자본이 23조원으로 35조원가량 급감한다는 분석이다. 가용자본이란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기타 포괄손익누계액 등을 합친 금액으로 사고 시 보험금 지급에 사용되는 돈이다.
보고서는 23개 생보사 평균 286%(2013년 말 기준)인 RBC 비율이 IFRS 2단계 적용 시 115%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예전의 RBC 수준을 유지하는 데만 약 35조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성준 생명보험협회 팀장은 “부채가 늘어나면 이에 대비해 책임준비금을 많이 쌓아야 한다”며 “이 경우 자본이 줄어들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삼성생명의 경우 IFRS4 2단계 시행 시 추가 적립해야 할 준비금은 약 8조~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IFRS4 2단계의 시행으로 퇴출되는 곳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IFRS4 2단계가 시행될 경우 왠만한 보험사들은 책임준비금의 추가 적립에 대한 부담이 커 도산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과거계약에 대한 회계처리 변경, 부채공정가치 평가모델 마련 및 제도변화를 반영한 회사별 시스템 개발 등에 많은 인력, 비용 및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제도 시행이 연착륙 될 수 있도록 기준서 확정 이후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RBC 비율 150%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00% 미만으로 내려가면 경영개선 조치가 취해지고, 일정 기간 내에 회복하지 못하면 퇴출시킨다. 보험연구원은 IFRS 2로 RBC 비율이 100%를 밑도는 생보사가 전체 23곳 중 8곳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다 95%인 RBC 비율 신뢰 수준을 99%로 높이는 안도 추진되고 있다. 이 경우 요구자본이 30%가량 올라간다. 보고서는 IFRS 2와 신뢰도 강화가 함께 시행되면 생보사의 평균 RBC가 89%로 추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절반이 넘는 보험사가 퇴출 기준인 100%를 충족하지 못한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상태로 IFRS가 도입되면 보험사 건전성은 재앙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은 “회사의 실체는 변함이 없는데 회계제도가 바뀌어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재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자본 확충에 매달려도 RBC 비율을 맞추기 힘든 상황”이라며 “장기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 경영이 외부 요인으로 급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장부는 IFRS를 따르되, RBC 비율 산정 등 재무건전성 평가는 현행 기준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적용해 자본확충 시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험업계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생·손보 양 보험협회장들이 조만간 국제회계위원장을 만나 IFRS4 2단계 시행 연기를 요청하고 나설 예정이어서 시행연기 여부를 두고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탈출구는 ‘과감한 방향전환’
17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오는 30일 한스 후거보스트 국제회계위원회(IASB) 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한다. 한스 위원장은 4월 1일까지 2박 3일간 국네 체류하면서 31일 한국회계기준원과 생손보 양협회가 주관해 개최하는 회계학 국제심포지움의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아 참석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스 위원장이 1일 열릴 회계학 심포지움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설 예정”이라며 “특히 IFRS4 2단계 도입 관련 보험업계 의견 전달을 위해 국내 생·손보업계 및 이해관계자 참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수창 생보협회장과 장남식 손보협회장은 한스 위원장과 오찬을 하며 IFRS4 2단계 도입과 관련된 이슈와 국내 보험업계의 제안 및 입장을 IASB측에 공식 전달하는 한편 한스 위원장의 견해를 청취하는 등 IFRS4 2단계 기준서 제정과 관련 상호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보험산업에 대한 제도와 환경은 각국마다 특수성이 존재한다”며 “한국을 포함한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유럽 및 미국의 보험제도는 상품의 구성, 회계처리 방식, 건전성 규제 등이 각 국가별로 차이가 있어 통일화된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업의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으로 ‘질적 성장’으로 과감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사업영역 진출뿐 아니라 해외에서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보험사와 감독당국이 성장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실장은 “보험사들이 핵심 역량을 키워 국제경쟁력을 갖춘 강한 보험사로 발돋움하지 않으면 거시경제 성장률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며 “종합적인 시각에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