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자금을 건넸다고 주장한 인사 8명의 이름을 적어놓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되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또한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누가 돈을 받았고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밝히는 게 핵심으로 떠올랐다. 2012년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 것으로 예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리스트 관련 인사들은 금품 수수에 대해서 부정했으며 사면 의혹 등과 같은 다른 쪽으로 불똥이 옮겨 붙었다.
◆갈수록 멀어지는 대선자금 수사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을 마친 뒤 성완종 리스트 관련해 대국민 사과 없이 철저한 수사를 당부를 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성 전 회장의 사면을 언급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된 리스트에 꽂힌 시선들을 특별사면으로 돌려 야당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는 김기춘, 허태열, 이병기 등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과 이완구 총리,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경남지사 등 8인의 여권 실세다.
또한 이완구 총리와 이병기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이름 옆에는 ‘김기춘 10만 달러, 허태열 7억원, 홍문종 2억원, 서병수 2억원, 유정복 3억원, 홍준표 1억원’으로 건넨 금액으로 보이는 액수까지도 나와 있었다.
그러나 거론된 인사들은 금품수수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 전 회장과의 친분관계도 부인했다.
이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드러난 통화기록과 측근의 증언 등을 통해 친분관계는 확인됐다. 그러면서 친분관계를 부정했던 인사들은 하나 둘씩 말을 바꾸며 관계를 인정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이병기 비서실장이 최근 1년 동안 각각 40, 140여 차례 전화 착·발신이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앞서 김 전 실장은 “(성 전 회장을) 만난 적도 없다. 안면 정도는 있다”면서 성 전 회장과의 친분을 극구 부인했다가, 이른바 ‘성완종 다이어리’가 공개되자 “착각했던 것 같다”면서 말을 바꿔 비난을 자초했다.
이와 함께 2006년 박근혜 대통령과 독일 방문 경비로 10만 달러 수수 의혹을 받자 “독일 초청재단이 경비를 전부 댔다”고 했지만, 해당 재단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에도 최근 1년간 217차례 통화가 오고 간 기록과 비타500 박스 속 돈을 넣어 전달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자 결국 자진 사퇴를 했다.
다른 인사들도 언론과의 인터뷰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으며 금품 수수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고 나섰다.
더불어 검찰 수사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 전 회장이 고인이 된 후, 여러 정황들을 하나로 연결하는데 많은 시간적 부담과 어긋난 정황이 나타난다면 다시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험성이 따르고 있다.
또 김기춘, 허태열 전 실장의 경우, 성 전 회장이 금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시점이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인 5년을 넘어 사법적 처리가 불가능하다.
특히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인 올해 1∼3월 일정이 적힌 다이어리를 포함한 관련 증거 상당수가 인멸된 정황이 포착돼 수사가 속도가 더디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증거인멸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경남기업 박준호(49) 전 상무와 수행비서였던 이용기(43) 부장을 대상으로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만약 증거가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에서 핵심 역할로 작용하게 된다면 또다시 정국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수사팀은 지난달 25일 계열사 대여금 인출내역 장부도 경남기업 직원 자택 장롱에서 확보했다. 또 급히 삭제된 경남기업 내 디지털 자료들을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리스트 인사 중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인사는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로 꼽힌다.
이에 검찰은 측근 조사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리스트 8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첫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으며 각각 비서진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새정치 “대선자금 밝혀라”

여야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네 탓 공방이 연일 가열되고 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역대 최대 규모의 특검법을 당론으로 발의하면서 강수를 두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본부장은 특검법 발의 전략기획 기자간담회에서 “리스트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사람들”이라면서 “그 불법자금은 대통령후보 경선과 대선자금으로 쓰여졌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법적, 형사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책임, 그것도 아니면 하다못해 도의적 책임이라도 느껴달라는 것”이라면서 “잦은 해외순방으로 국민정서를 잘 모르시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부정부패를, 적폐를 뿌리뽑자고 하셨던 대통령은 어디로 가셨나?”라면서 “현재 경선, 대선자금으로 사용한 6인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 걸음이고, 개인선거 자금으로 사용한 전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지사만 소환을 저울질하는 수사를 언제까지 지켜보자는 말씀인가?”라며 반문했다.
이어 “정말로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을 밝힐 의지가 있다면, 청와대까지 보고라인이 살아있는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독립해 수사를 하는 특검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박근혜 대통령이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맞다“라면서도 ”이 비리의 밭을 갈아엎기 위해서는 포크레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그런데도 여당은 호미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역대 최대의 불법정치자금 게이트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특검만이 정답”이라면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던 여당도 대통령의 발언으로 충격이 크실 줄로 안다. 그러나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시고 특검법 논의에 진정성 있게 임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은 28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법안(박근혜대통령의 측근 김기춘‧허태열‧유정복‧서병수‧홍문종‧이병기‧이완구‧홍준표 등의 성완종 불법자금 수수의혹사건 및 경남기업 긴급자금지원 불법로비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특별검사제 법안에 따르면 복수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지 않고 여야 합의로 한 명만 추천하도록 했다. 앞서 야당이 만든 상설특검법은 추천위원회가 두 명을 추천해 이중 대통령이 한명을 임명하도록 돼있어 여당 추천 인사가 선택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로 별도의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상설특검법보다 수사 인력을 대폭 확대하고 수사기간을 늘렸다. 특검법의 대상은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8인은 물론, 경남기업 긴급자금 지원 과정에서의 불법로비 의혹이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정홍원 전 국무총리, 최수현 전 금감원장 등도 포함됐다.
특검보의 수는 5명으로 했으며, 특별수사관의 수는 45명으로 정했다. 상설특검법은 특검보 2명, 특별수사관 30명으로 규정돼 있다. 파견검사의 수는 15명, 검사를 제외한 파견 공무원의 수는 50명으로 했다. 상설특검법에서 규정한 파견검사 5명‧파견공무원 30명보다 규모가 크다.
수사기간도 대폭 늘렸다. 상설특검법은 최대 90일(기본 60일+연장 30일)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번 별도특검법은 이를 최대 150일(기본 90일 + 30일씩 두번 연장)까지 확대했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