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대한다
보수가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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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올해도 반쪽 행사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 주관 행사임에도 박근혜 대통령 참석이 불투명한 상황이고, 총리마저 공석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념식의 주인공인 5월 단체들마저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정부가 그동안 기념식에서 주제곡처럼 불러온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못하게 하자, 이에 반발해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5월 단체들은 벌써 3년째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박근혜 대통령 면담까지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 실무진이 민원서류를 제출하고 가라며 대통령과의 면담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5월 단체들은 5.18 기념식장 불참은 물론이고 국가보훈처가 지원하는 지원금마저 전액 반납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5.18 기념식에 대통령마저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맥 빠진 행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정부 주관 행사마저 이렇게 유야무야 될 상황에 처해 있다니 가슴에 두 번 비수를 꽂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35주년이 되는 5.18 기념식이 이처럼 불편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 한 곡 때문이다. 그동안 기념식에서 공식 식순에 포함돼 기념 노래로 불려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보훈처가 지난 2013년부터 갑자기 제창하지 못하도록 한 것. 표면적으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 기념 노래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보훈처는 돈을 들여 새롭게 5.18기념노래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종북적이며 반체제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 있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그동안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곡 작사자가 월북한 반체제 인사라는 주장을 펼치며 강한 거부감을 보여 왔던 바 있다. 그런데 2012년, 前 통합진보당 종북 논란이 터져 나오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보수 정권에 용납될 수 없는 노래로 확실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통합진보당은 정당 내부 행사를 할 때 애국가 대신 이 노래를 부르면서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안 그래도 반체제 인사가 작사한 노래를 종북 세력들이 애국가 대신 부르기까지 한다니, 보수 정권 입장에서는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 공식 행사로 진행되는 5.18기념식에서 이런 반체제 종북적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총대를 멘 것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었고, 박 처장은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압박에 꿈쩍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에서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노래에 색깔론을 입힌 보수 일각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너무도 과하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비단 광주와 야당 정치권에서만 이런 지적을 내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무성 대표도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저 자신도 하루에 몇 번씩 불렀던 민주화투쟁의 주제가였다”며 “그 노래 가사 어디에도 반국가적, 친북적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5.18추념식에 오랫동안 불려왔던 노래를 왜 중단시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지 전혀 이해 가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바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회는 여야 의원들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박승춘 보훈처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에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국가보훈처장에게 국회의 뜻을 분명히 전해 국회 결의가 존중되도록 할 것”이라며 “이 문제로 더 이상의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보다 더 강경하게 “국회의 결의를 무시하는 것은 여야 의원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의장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5.18기념식에서 모두 다 같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결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35년 전 피 흘린 광주의 한을 풀어내는 노래이자, 민주열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의미의 노래인 것이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 이름을 불렀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종북 반체제 인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광주가 목 놓아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과한 이념을 덧씌워 5.18기념식마저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 더 적극적인 사회 통합을 위해 이제는 보수가 먼저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대해본다. [박강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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