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고속 인수로 그룹 재건의 꿈에 첫 발을 내딛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남겨두고 있는 가장 큰 ‘퍼즐’ 금호산업 인수전이 판도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7일 금호터미널은 IBK증권-케이스톤사모펀드(IBK펀드)와 금호고속을 415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500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했다. 인수대상은 IBK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금호고속 지분 100%와 금호리조트 지분 48.8%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심사를 마무리하면 인수가 완료된다.
이에 채권단 일각에서는 금호산업 인수전이 호반건설 단독 입찰에 이은 유찰로 일정이 지연되면서 금호고속 인수가 먼저 마무리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쪽에서 이번에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을 인수하는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금호산업 인수가에 금호고속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금호산업은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지니고 있다.
◆박삼구 회장, 금호고속 인수 의지 결국 실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있어서 금호고속은 그룹의 모태라는 점에서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만큼이나 인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온 회사다.
금호고속은 옛 금호그룹의 모태 격의 회사다. 박삼구 회장의 선친인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은 1946년 자본금 17만원을 가지고 중고택시 2대를 구입해 광주택시를 창업했고 점차 버스로 영역을 넓혀가며 지금의 금호고속을 키워냈다. 금호그룹은 금호고속을 필두로 항공과 타이어, 건설, 리조트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해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따라서 박 회장은 항상 선친이 세운 그룹의 기반인 금호고속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또한 호남선KTX 개통 등의 악재가 있기는 하지만 금호고속이 현금창출력에서 알짜 기업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금호고속은 지난해 매출 3962억원, 영업이익 522억원, 당기순이익 318억원의 건실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큰 금액은 아니지만 현금 창출이 가능한 알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박삼구 회장은 IBK펀드 측과 금호고속의 금호리조트의 유상증자 불참과 이에 따른 IBK펀드 측의 대표 해임,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공방에 이어 IBK펀드 측이 선임한 공동 대표의 출근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 인수 주체 자격을 둘러싼 갈등 등 수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 금호고속을 쟁취해 내는 데 성공했다.
금호고속의 인수 성공은 박삼구 회장이 결국 의지를 실현시켰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간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 그룹 재건을 위해 찾아와야 하는 회사들이 많은 박삼구 회장의 자금 동원 능력에 대한 우려를 이번 인수로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금호산업 인수가, 금호고속 영향 받을까
이는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금호산업 인수전에도 영향이 미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금호산업을 뺏기면 그룹 전체를 잃게 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 금호산업은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지분의 30.8%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 점은 금호산업 인수전이 ‘그룹 쟁탈전’으로 비화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룹 재건에 있어서 박삼구 회장에게는 금호산업 인수전이 가장 중요하지만, 채권단이 유일하게 본입찰에 참여한 호반건설의 6000억원대 인수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인수가에 대한 관심이 자꾸만 높아지는 것은 부담스럽다.
채권단은 본입찰을 유찰시키고 난 후 우선매수청구권을 지닌 박삼구 회장과의 수의계약 방침을 확정했지만, 인수가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삼구 회장 측은 호반건설의 6000억원대를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채권단은 최소 7900억원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 주가와 실사를 통한 가치를 합한 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100% 정도 산정한 금액이다.
하지만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워크아웃 돌입 과정에서 들어간 국민 세금이 3조원에 달하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양측 모두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다. 채권단은 금호산업의 평가 가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우선적으로 워크아웃 졸업을 추진하고 기업 가치를 끌어 올려 나중에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가능성은 낮다.

◆경영권 프리미엄 여부가 쟁점
1조원이 거론되던 상황에서도 비난이 집중되던 상황까지 감안해보면 금호산업 인수가는 협상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 측이 원하는 대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금호고속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되면 금호산업 인수가는 1조원을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박삼구 회장에게 근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채권단은 금호산업에 대한 공정가격을 평가하고 있다. 채권단은 삼일·안진회계법인을 통해 금호산업의 적정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최종 매각 가격을 7월까지 정한 후 8월 경부터 박삼구 회장에게 가격을 통지하고 협상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 제시 가격을 받아들이면 오는 11월 중 금호산업 매각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수가 산정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공정가격이 어느 정도로 평가되느냐가 중요하다. 가치 평가의 주요 쟁점은 금호산업이 최대주주로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프리미엄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기에 일정상 고려되지 않았던 금호고속 인수가 호반건설의 본입찰 유찰로 먼저 진행되게 되면서 금호산업의 공정 가치에 금호고속의 경영권 프리미엄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채권단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회계법인 업계에서는 금호산업의 공정가치가 호반건설의 응찰 당시보다 크게 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도로 묵’ 될라…박삼구 회장, 말 아껴
그룹의 모태이자 알짜 기업으로 꼽히는 금호고속을 금호터미널이 인수하기는 했지만, 금호터미널은 박삼구 회장 측이 아닌 금호산업이 지분 100%를 들고 있다. 아직 금호고속이 완전하게 박삼구 회장 품에 들어왔다고 보기에는 남은 절차가 꽤 많다는 얘기다.
결국 금호고속 인수에도 불구하고 그룹 재건의 키가 금호산업으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박삼구 회장 측은 자칫 금호산업 채권단과의 협상이 틀어질 경우 기껏 찾은 금호고속까지 놓치게 될 수도 있다.
한 채권기관 관계자는 “박 회장이 금호산업만 인수해도 금호고속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됐기 때문에 실사 과정에서 이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금호고속 인수로 장부 상의 기업 가치는 변동이 없겠지만, 경영권이라는 변수가 생겼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에 대해 반대 의견도 나오고 있어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비상장사인 금호고속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2월 IBK펀드의 금호고속 매각 가격 제안 당시에도 나왔던 얘기로, IBK펀드 측은 금호고속이 비상장사인 만큼 매각가에 별도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한편 재계의 마당발로 알려진 박삼구 회장은 최근 동문회장으로 있는 연세대 상경대학 동문회, 베트남 호치민시 당서기와의 환담, 위원장으로 있는 전경련 관광위원회 등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보이면서도 금호산업 인수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달 27일 박삼구 회장은 광화문 본사 사옥에서 금호고속 인수에 대해 “다들 도와준 덕분”이라면서 금호산업 인수에 대해서도 “도와준다는 분이 많고,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하는 데 그쳤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