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잠시 수그러든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안함에 따라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늦어도 12일에는 법 개정안을 정부에 넘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여야가 이에 대해 해결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요청’, ‘검토’…국회법 새 대안 부상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9일 처리된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 요구권을 국회가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한다며 사실상 거부권을 시사했다.
이에 논란이 계속되고 법안 송부 시기가 늦춰지자 정 의장은 개정안의 위헌 소지를 축소시킨 중재안을 내놓았다.
정 의장은 지난 5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만나 이 같은 안을 제안했으며,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새정치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정 의장 중재안을 토대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재안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에서 ‘요청’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또한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처리하고’ 라는 문구 앞에 ‘검토하여’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청와대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또한 여야 협상 과정에서 정부 시행령 수정·변경권의 강제성이 얼마나 해소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아직 이를 두고 협상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야당 내에서도 입장이 나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청와대는 여야 협상을 지켜본 뒤, 법안이 넘어오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정 의장의 중재안이 여야 합의를 거친 최종 법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면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이 경우 청와대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與野, 긍정적 검토
정 의장 중재안에 대해 여야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이뤄진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동 결과를 보고하며 “정 의장의 자체 중재안을 갖고 여야 원내지도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도 의장의 중재안을 중심으로 놓고 그 밖에 다양한 안을 갖고 협의를 하고 있다”며 “각 당 내부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회법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으로 정부와 여야가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여야 간 공감대가 있었다”며 “의장은 물론이고 여야가 같이 노력해 조속히 이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데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 국회와 각 당이 노력하고 있다. 성과가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장 중재안에 대해 야당이 어떤 입장을 정할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의장 중재안에 대해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한 번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정의화 국회의장의 내놓은 중재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조만간 의원총회를 열 계획이다.
다만 새정치연합 내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재검토 불가’ 입장을 내놓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미 국회에서 통과한 안이다. (수정을 검토한다면) 211명의 투표가 다 뭐가 되나”라면서 “원내에서 일부가 찬성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내지도부가 검토하겠다는 것도 의장 중재안 중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 중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자는 제안에 한정된 것”이라면서 “(정 의장의 중재안 중 ‘검토하여 처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은) 10년 후에나 나올 얘기”라며 반발했다.
강 정책위의장은 그러면서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하라. 그러면 여기서 또 표결(재의결)을 하는 등 원칙대로 가면된다”면서 “(강제성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한편 여야가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만큼 당내 강경파들을 설득해 여야가 재협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여야가 합의를 이뤄낼 경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최악의 충돌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