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이후 큰 타격을 받은 LG전자가 결국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해달라며 정부에 SOS를 쳤다.
3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정부에 단통법으로 정해진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해달라고 건의했다. 현재 보조금 상한액은 33만원으로 초기의 30만원에서 3만원 가량밖에 오르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단통법 논의 과정에서 LG전자가 삼성전자와 달리 적극 찬성했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LG전자는 당시 G 시리즈만의 브랜드 가치에 자신감을 드러내며 오히려 호기롭게 적극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LG전자는 결국 9개월여 만에 ‘백기’를 드는 굴욕을 겪게 됐다. LG전자는 “지원금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브랜드 가치에서 밀리는 LG전자의 스마트폰이 위험해졌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다. 단통법 이전 20%를 유지하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0%대로 추락했다 겨우 회복됐고, 가죽 케이스를 도입하며 야심차게 출시한 G4는 판매량 공개도 꺼려할 정도로 흥행에 실패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제품들간의 가격 차별화는 거의 사라졌고 갤럭시와 아이폰 시리즈 등 일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만 소비자 수요가 몰리면서 LG전자는 큰 타격을 입었다. 기존에는 지원금으로 부족한 브랜드 파워를 보완해 왔지만 단통법 이후 지원금 규모가 강력하게 규제되면서 삼성전자에 비해 LG전자의 위축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프리미엄시장 점유율이 1%? 충격
LG전자 측은 건의서에서 단통법 시행 이후 국내 스마트폰의 실구매가격이 높아져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된 데다 애플 아이폰 등 해외 제조사의 점유율만 올라가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단통법 시행 전만 해도 5.3%에 불과했던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0~12월 27.3%로 수직 상승했다. 반면 LG전자는 당초 26%였던 시장 점유율이 단통법 후 13.4%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G4 등 신규 스마트폰 출시에 힘입어 20%선을 회복했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삼성전자 점유율은 63.4%, LG전자는 20.9%, 애플은 13.1%다. 하지만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정부의 이같은 분석은 전체 휴대폰 시장을 분석한 것일뿐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만 놓고보면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는 5월 기준으로 판매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 56%, LG전자 1%, 애플 43%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LG전자 측은 “단통법의 기본 취지에는 여전히 공감한다”면서도 “단통법 시행 이후 스마트폰 수요가 20~30%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 보니 과거 세계 이동통신 시장을 선도하며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왔던 한국 시장의 지위가 위태로울 지경”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LG전자 측은 또 “통신사 입장에서는 비록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애플을 제외한 모든 시장 참여자가 패배자가 됐다”고 덧붙였다.

◆주가 하락에 전망도 어두워…총체적 난국
LG전자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주식시장에서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25일 11년 만에 5만원 대가 붕괴된 이후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LG전자의 주가 5만원대는 지난 2011년 말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 신규발행가액이 5만1600원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다.
5만원대 붕괴 이후 지난달 30일부터 소폭 반등이 이어졌지만 LG전자는 3일 전일보다 450원(0.94%) 떨어진 4만76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근본적으로는 스마트폰 시장 부진에서 비롯된 2분기 실적 악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들은 LG전자에 대한 목표주가와 실적 전망치마저 줄줄이 내리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LG전자의 2분기 매출액을 전년 동기보다 3.5% 감소한 14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47.2% 급감한 3199억원으로 추정했다. 지목현 연구원은 “LG전자는 2분기 TV부문에서 적자가 지속되고 스마트폰 판매도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G4의 후속 모델이 3분기 말에 출시될 예정이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환율 여건도 좋지 않다.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들 것으로 예측되는 것은 LG전자의 시장 지배력이 높은 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국에서도 통화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TV와 가전 등의 판매가 신통치 않았기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나마 G4가 선방은 하고 있지만, 애플과 삼성전자를 따라 잡기 위한 막대한 마케팅 비용 때문에 2분기 이익률이 1~2%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본원적 경쟁력 높일 생각을 하라” 쓴 소리도
LG전자는 부진 만회를 위해 하반기 실적 반등의 모멘텀을 고수익 확보가 보장되는 프리미엄 시장 확대를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해외 경쟁사들의 가세로 관련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LG전자는 대표적인 프리미엄 TV인 올레드 TV의 B2B 시장 공급을 늘려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리조트 전문 기업인 미국 인스피라토에 관련 제품을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처럼 규모와 지속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B2B 고객을 늘려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13년 신설된 VC(자동차 전장부품)사업본부가 글로벌 완성차 회사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LG전자가 기대볼 수 있는 점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무인차에 탑재되는 카메라 시스템을 공동개발하기로 한 LG전자는 인도 1위 자동차 회사인 타타자동차에도 잇따라 부품을 공급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LG전자가 요청한 보조금 상한제 지원 폐지는 당장 가능성도 높지 않은 실정이다.
우선 정부가 긍정적인 입장이 아니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단순히 단통법 때문에 상황이 안좋아진 게 아니라 경영방식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며 “보조금만 이용하려는 것보다 출고가를 더 낮추는 등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보조금 제한을 풀 게 아니라 단통법 취지를 따라 출고가를 더욱 낮추라는 얘기다.
미래부 역시 “단통법이 국내 휴대폰 산업에 타격을 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국내 이통시장은 2010년부터 포화돼 2011년을 기점으로 휴대폰 판매량과 가입추이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점유율 변동은 다양한 요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동통신업계 역시 법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으로 과도했던 마케팅 비용이 줄어든 덕분에 최근 유·무선 음성통화를 무제한 제공하는 데이터 요금제를 새로 내놓는 등 통신요금을 낮출 수 있었다”며 “시행된 지 고작 1년도 안된 법안을 뜯어고치는 것은 통신 시장의 선진화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 관계자는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G4가 갑자기 잘 팔릴까는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삼성과 애플에 끼어 있고 샤오미와도 경쟁하는 LG전자가 본원적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출고가를 낮추고 프리미엄폰 전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결국 단통법 논의 과정에서도 오판을 저지른 LG전자가 위기 탈출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서도 오판을 한 것이라는 쓴 소리로 읽히는 대목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