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화케미칼 울산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하청업체 직원 6명이 숨진 가운데, 대기업 제조사들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대부분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집중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일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울산 남부경찰서는 수사본부를 꾸리고 사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원청업체인 한화케미칼과 하청업체인 현대환경 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할 예정이다.
사고 직후부터 양사 관계자들을 소환해 1차 조사를 벌인 경찰은 이날부터 4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와 3~5일 사흘간 진행된 현장 감식 결과 등을 토대로 작업 공정상 문제나 안전관리 부실 등을 따져 묻는 조사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역시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근로자 등을 상대로 사고 전후 작업 내용을 묻는 등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다.
◆한화케미칼 사고, 사망자 6명 모두 하청 노동자
앞서 3일 오전 울산시 남구 여천동 한화케미칼 울산 2공장 폐수처리장 저장조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협력업체인 현대환경 소속 근로자 이모(55) 씨 등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장 경비원 최모(52) 씨도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근로자들은 저장조 위에 올라가 배관설비 증축을 위한 용접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사고 원인은 한화케미칼이 하부콘크리트 저장소의 잔류가스를 측정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사본부는 일단 밀폐된 저장조 상부에서 폐수 배출구 추가 설치를 위한 용접작업 도중 저장조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 용접 불꽃이 어떻게 내부 저장조의 잔류가스와 만나 폭발로 이어졌는지가 사고 발생 원인 규명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한화케미칼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한화케미칼은 작업 전 사고가 발생한 폐수조의 상부 가스는 측정했지만, 밀폐된 하부콘크리트 저장조는 안전하다고 판단해 가스 측정을 하지 않고 작업허가서를 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하청업체 직원들이 용접을 하는 과정에서 잔류 가스가 인화물질과 닿으면서 폭발이 발생한 것이라는 얘기다.
통상 작업의 허가는 작업장의 안전성과 위험물질 존재 여부, 작업자 안전수칙 준수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이뤄져야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이 같은 매뉴얼이 정확히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기업들, 작업은 일임하고 책임은 회피?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제조업 현장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의 희생자가 하청업체 직원들이라는 사실은 대기업의 업무 배치 형태와 부실한 안전관리의 실상이라는 민낯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동차, 조선, 건설, 정유화학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제조업 현장에서는 위험한 일들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사고가 나면 책임을 회피하기 일수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하청업체 노동자 7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사태 하청 노동자 대부분(조선업 84.3%, 철강업 92.3%)이 ‘하청 노동자 산재 위험이 원청보다 훨씬 높다’고 응답했다.
특히 하청업체 측에서는 원청업체만큼 정보나 관리 권한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대기업들로부터 모든 작업권을 위임받다보니 제대로 된 사전 대응을 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원청인 한화케미칼은 전문기술인 용접을 하청업체에 맡겼지만, 내부에 무슨 물질이 어떤 상태로 있는지 모르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잔류 가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용접을 진행하다 화를 맞았다.
또한 하청업체는 근로자 안전보다는 원청업체의 요구로 작업을 독려하는 데 주안점을 두기 마련이다. 원청이 정해놓은 공사기간에 맞춰 작업을 빨리 진행하다보면 안전에 대한 규정이나 규칙을 지킬 수 없는 여건이 되기도 한다. 안전교육 또한 인력시장 등에서 인부를 구해 작업을 시키기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울산대 산업안전센터 김석택 교수는 “원청에서 협력업체에 작업을 일임하지 않고 원청이 직접 주도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협력업체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대重·LG디스플레이 등 기업 가리지 않아
이처럼 위험 작업의 외주화가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안전·생명과 직결되는 위험 업무 외주화 비율을 높여 가면서 산재 위험이 높은 일에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몰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중대 재해 발생 건수가 매년 조금씩 줄고 있음에도 하청업체 근로자의 중대재해 발생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지난해 5월 충남 당진 현대제철에서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숨진 노동자 5명과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바다에 추락하거나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6명 모두 사내하청 업체에 속한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특히 세계 최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은 높은 하청업체 근로자 비율로 악명이 높다. 한국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3년 현대중공업 계열 조선·해양 3사의 기능직 사내하청 노동자는 전체 기능직 노동자의 약 80%에 이른다. 사내하청 근로자들은 특성상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게다가 하청업체를 1년마다 바꿀 때 산재 발생 건수를 업체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이를 극구 감추려 한다.
가장 최근 3명의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망한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의 질소 가스 누출 사고에서도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의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SK하이닉스는 2월과 4월,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연속해서 사고가 발생해 사망자를 냈다.
지난 1월에는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에서 질소 가스에 누출돼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협력사 직원 3명은 생산시설 가동 때 공기 중의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질소를 채워두는 장비인 TM설비 챔버 안에서 유지보수 작업 중 사망했다. 지난 4월 초에는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 쇳물을 고체화하는 연주공정 작업 중 직원 1명이 쇳물 분배기로 추락해 사망하기도 했따.
2013년 3월 발생한 여수국가산업단지 대림산업 화학공장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17명중 15명이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당시 사고 역시 용접 불티가 저장고 내 잔류가스에 튀어 일어났다. 1995년 2월 부산 한진중공업 조선소 사고로 19명의 하청업체 직원이 숨졌을 당시도 마찬가지다.

◆중대 재해 하청 노동자 비율 오히려 상승
이러다 보니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고용노동부한테서 제출받아 분석한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국내 중대재해 가운데 하청업체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36.4%에서 지난해 6월엔 39.1%까지 높아졌다. 중대재해란 산업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1명 이상이 숨지거나 석달 이상의 치료·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뜻한다.
특히 은수미 의원은 “안전관리는 원청업체가 직접 나서도 상태가 개선되기 쉽지 않은데, 이를 하청업체가 전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지난 1월 원청 사업자에게도 공동 책임을 지우는 내용의 ‘산업현장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어 미봉책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유해·위험 업무 작업을 하청업체에 도급 위탁할 경우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이 확보되도록 도급 인가 제도를 강화키로 했다. 작업 방법의 위험성, 사용물질의 유해성 등을 따져 도급 인가대상을 확대하고 인가 기간도 3년마다 재인가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밀폐공간 작업과 같은 위험 작업의 경우, 사전 작업 허가제를 도입해 원청과 하청이 상호 간 위험관리 및 의사소통이 강화되도록 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또 건설 현장에서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다 사고가 빈발하는 점을 감안해, 불가항력이나 발주자의 책임 등으로 건설 공사가 중단될 경우 발주자에게 공기를 연장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재 사망에 대한 기업 처벌의 강화 및 위험 업무의 도급 금지 방안은 경영계의 반발로 여전히 포함되지 못해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지난 3월 유해 및 위험작업에 한해 도급을 금지하는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역시 경영계가 비용 증가 부담을 떠안기를 꺼리면서 반발해 법안 자체가 백지화됐다.
◆“해결책은 강력한 처벌” 한 목소리
산재 통계 집계 방식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들은 통상 근로자가 사고를 당하면 산재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하려 한다. 이른바 산재 은폐로 불리는 이러한 관행에도 불구하고 수주에 목 매는 하청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위험을 안은 채 작업 현장에 나서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하청업체를 1년마다 바꿀 때 산재 발생 건수를 업체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이를 극구 감추려 한다. 비록 최근 들어 건설업에 이어 조선·철강 등 고위험 직군의 산재 통계에 대해서 원청의 통계에 하청업체의 통계도 포함되게 됐지만, 실제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지는 미지수다.
가령 지난해 현대중공업 재해율(노동자 100명 중 재해자 수)는 0.66으로 조선업 평균 재해율(0.69)보다 낮았다. 덕분에 현대중은 지난 해 1월~8월 산재보험료를 101억여원 감액 받았다. 그러나 하청업체의 재해율까지 포함하면 현대중의 재해율은 0.95까지 높아진다.
결국 노동계 및 시민단체들과 정치권은 잇따라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위험업무에서 사망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진 처벌이나 대규모 과징금 제재같은 강력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SK하이닉스의 2월과 4월 질소 가스에 따른 사망사고에 대해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하다가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게 됐다”며 “노동자의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경영진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엄중 처벌할 것을 고용부를 향해 촉구한 바 있다.
은수미 의원 역시 “안전에 관한 기업의 불감증은 현행법이 원청의 책임을 완화한 데서 비롯된다”면서 “우리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통해 상시적으로 산재를 일으키거나 중대재해를 낸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