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 노조 제도를 이용해 기존 노조를 무력화하는 자문 활동을 벌여왔다는 일명 ‘노조 파괴’ 의혹을 받았던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부당 노동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5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주식회사 보쉬전장 해고자 정모 씨가 “사측의 해고는 부당 노동행위”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 해고 및 부당 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보쉬전장의 노동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확정했다. 2심은 1심과 다르게 보쉬전장에 자문한 창조컨설팅의 문건이 노조 파괴의 일환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 씨는 1996년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인 보쉬전장에 입사해 2011년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 지회장으로 선출됐지만, 2011년 말 성과급 지금 관련 노사 합의가 난항을 겪자 야근·특근을 거부하고 조합원들을 독려했다는 이유로 2012년 2월 해고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2012년 1월 ‘노조 파괴’ 전문으로 알려져 있는 창조컨설팅은 보쉬전장에 “정 씨 등에 대한 징계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경고하고 강성 집행부와 일부 조합원을 분리하라”는 자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창조컨설팅은 자문내용에서 “또 다른 대안세력을 조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권유했다. 이에 보쉬전장은 정 씨를 해고한 직후 복수 노조를 설립했다. 특히 창조컨설팅은 복수노조 설립을 위해 4단계에 달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기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창조컨설팅은 2011년 8월 29일 보쉬전장에 노사관계 합리화 컨설팅을 사측에 제안했고, 같은 해 11월 2일 노조파괴 전략 컨설팅을 골자로 하는 1년짜리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정 씨는 해고된 후 중앙노동위원회에 “회사의 해고 처분은 노조의 전략적인 와해와 제2의 노조 설립을 위한 것”이라며 부당노동행위를 구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정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문건 내용대로 징계가 이뤄졌고 대안 세력의 권유에 따라 복수노조가 설립된 점을 감안하면 보쉬전장은 정 씨가 노조 지회장이라는 이유로 해고 처분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문건의 징계는 불법행위를 징계하라는 일반적·추상적 취지이며 정당한 노조 활동에 불이익을 가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정 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조합원들에게 야근·특근을 거부토록 지시했고 근무시간에 공청회를 여는 등 정당하지 않은 노조 활동으로 회사에 피해를 줘 해고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해고 자체에 대해서는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연장근무 거부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았고 농성 행위가 회사의 명예·신용에 해악을 초래한 부분은 적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결국 대법원도 이날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이면서 사측과 노무법인이 합작해 기존 노조에 맞선 기업노조를 설립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노조 위원장을 해임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다는 판례가 나오게 됐다.
노동계는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문건 내용은 당시 국회 청문회에서도 상당한 사회적 충격을 줬던 것들이었다”면서 “그런 정도의 노조파괴 사실들이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면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한 법조문이 더 이상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한편 창조컨설팅은 지난 2012년 10월 금속노조에 의해 노동쟁의 중인 회사들에게 ‘노조 파괴’ 컨설팅을 해준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이 고발 건은 그간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오다 법원이 창조컨설팅의 문건을 따른 혐의를 받고 있는 유성기업과 발레오전장을 기소하라고 결정하면서 지난달 25일 검찰이 2년 8개월 만에 창조컨설팅을 기소했다.
다만 이마저도 회사 측의 혐의가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된 것이라는 점에서 노동계는 창조컨설팅의 나머지 혐의에 대한 기소도 요구하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