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 농협에 모뉴엘 보험금 피소…‘줄줄이 소송’ 예고
무보, 농협에 모뉴엘 보험금 피소…‘줄줄이 소송’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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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보험금 두고 분쟁 장기화…타 은행들도 소송 준비중
▲ 지난 3일 NH농협은행이 모뉴엘 사태와 관련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매출 1조 클럽에까지 이름을 올렸다가 지난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드러난 중견가전업체 모뉴엘의 사기 대출 행각과 관련, 무역보험공사가 500억원대의 보험금 미지급을 이유로 NH농협은행으로부터 피소당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지난 3일 모뉴엘의 부실채권으로부터 입은 피해와 관련해 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587억원에 달하는 단기수출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NH농협은행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모뉴엘이 파산함에 따라 무역보험공사가 보증한 부분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무역보험공사가 이를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무역보험공사는 보증서를 써 준 기업이 대출을 갚지 못하면 대출 원금에 이자까지 더한 금액을 은행에 물어준다.

은행권이 모뉴엘에 빌려준 금액은 총 6768억원이었고, 이중 담보대출 금액은 기업은행 1055억원, 외환은행 863억원, 산업은행 754억원, 농협은행 568억원, 국민은행 466억원 등 총 3860억원이었다. 이중 무역보험공사가 보증한 금액은 3265억이었다. 담보대출을 제외한 신용대출 금액 2900억원 가량은 모뉴엘의 파산에도 불구하고 회수 가능한 자산이 거의 없어 대부분 손실처리됐다.

하지만 무역보험공사는 지난 1월 보증을 선 3265억원에 대해서도 한 푼도 지급할 수 없다는 예비판정을 내려 은행권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결국 이의신청을 거쳤음에도 지난 5월 최종 심의 결과는 ‘전부 기각’이었다.

당시 무역보험공사 보상심사팀은 모뉴엘 대출 건에서 핵심적인 대출 서류들이 누락됐거나 비정상적으로 처리돼 있어 약정상 보험금 지급 의무가 있는 정상적인 대출거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같이 예비판정했다. 무보는 기본적인 거래 증빙 서류도 없는 상황에서 보험금을 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장 수 천억원의 대출금을 떼이게 된 은행들은 “수출거래는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확인이 힘든 만큼 무역보험공사가 내 준 보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무역보험공사가 모뉴엘 대출과 관련해 일곱 차례나 해외 수입업자 현장방문을 했다는데 그렇다면 무역보험공사는 왜 사기대출인지 못 밝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역보험공사 측은 은행들의 잘못이 큰 만큼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만큼 소송이 장기화될 조짐이 감지되는 가운데, 불똥은 엉뚱하게 수출 중소기업들로 튀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다른 은행들도 줄소송 예고
이처럼 대부분의 은행들이 무역보험공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됐음을 감안하면 지난해 말부터 연초까지 금융권을 뒤흔들었던 모뉴엘 사태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미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한 기업은행, 산업은행, 외환은행 등도 이달 내로 각자 소송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무역보험공사는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무역보험을 교육하는 자료에 “수출자 귀책시에도 매입은행에 보험금을 지급하고 공사는 수출자에게 대위권을 행사한다”고 기재한 것으로 나타나 말 바꾸기 논란에 휘말릴 태세다. 위조 서류에 대해서도 “서류가 정상적인 외견을 갖추고 있더라면 위조가 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면책 처분을 하기는 곤란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송을 제기했거나 제기할 예정인 은행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며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개인에게 대출을 해줄 때도 철저한 심사 과정은 기본인데, 간단히 수입업자와 이메일만 주고받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 확인조차도 하지 않은 채 “무역보험공사의 보증 하나만을 믿고 대출했으니 보험금 전액을 달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얘기다. 적어도 책임 비율을 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역시 앞서 “무역보험공사도 나름의 도덕적 해이가 있었고 은행들도 약간의 하자가 있더라도 (무역보험공사 보증을) 무조건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은행들이 이의신청으로 (어느 한쪽이 뒤집어쓰는 것보다) 각 기관의 하자 정도에 따라 (책임을) 정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소송은 액수가 크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입장이 명확히 엇갈리는 만큼 3심까지 최소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역보험공사와 은행들간의 분쟁이 이처럼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불똥은 엉뚱하게 수출기업들로 튀고 있다. 은행권이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를 담보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확 줄면서다.

지난 7일 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단기수출보험(수출채권유동화) 실적은 1조86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2조700억원보다 10.1% 감소했지만, 모뉴엘 채권을 제외하면 소폭의 증가세를 기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모뉴엘 사태로 피해를 입은 은행들로 범위를 좁힐 경우 외환은행(-54.5%)·국민은행(-54.2%)·농협은행(-81.8%)·기업은행(-54.5%) 등으로 수출채권유동화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4개 은행만 따져도 지난해 같은 기간의 9억5100만달러보다 41.3%나 급감한 5억5860만달러다. 분쟁의 여파가 수출 중소기업들한테 튄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1조원대 매출에 1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자랑하던 중견가전업체 모뉴엘은 지난해 10월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해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그간 재무여건이 튼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모뉴엘이 해외 법인을 통한 3조원 대의 가공 매출로 금융권으로부터 수천억원 대의 사기 대출을 받아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돼 왔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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