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 방법으로 재단설립이 아닌 직접 보상을 선택하자 시민단체 반올림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권고안을 기반으로 한 보상 자체가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일 반올림은 “지난달 23일 발표된 조정권고안의 요지는 공익법인의 설립을 통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행”이라며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경우 직업병에 책임이 있는 삼성전자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마련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삼성전자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기구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삼성전자와 가족위, 반올림의 의견 조정하던 조정위원회는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을 설립한 후 이를 통해 피해자를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반올림은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행을 삼성전자에게 맡겨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조정위의 제안처럼 재원마련과 사업 수행의 주체가 분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찬성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가족위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자와 당사자가 직접 협상하겠다”며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가족들로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왔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보상받기를 희망한다”며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보상을 신청하라는 것은 아직도 많은 세월을 기다리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건의 당사자인 보상 대상자가 삼성전자와 올해 12월 31일까지 직접 협상해 보상 문제를 매듭짓되 그때까지 타결되지 않은 피해자의 경우에만 건강재단 등에서 보상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공익법인의 발기인 및 이사회 구성에 관해서는 “협상의 주체인 가족위와 반올림, 삼성전자가 추천하는 이사가 모두 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삼성전자 또한 조정위의 제안에 일부 반대했다. 지난 3일 삼성전자는 1000억원 기금 조성에는 찬성하면서도 재단설립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3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피해자 보상 조정안과 관련 “1000억원을 기금으로 조성해 보상금 지급과 예방활동, 연구활동 등에 쓰이도록 하겠다”면서도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사단법인 설립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을 통해 보상을 실시하려면 또다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1000억원의 기금을 ▲반도체산업 안전보건 증진을 위한 연구 조사 ▲반도체 중소기업 산업안전보건컨설팅 ▲반도체 산업안전보건전문가 양성 ▲해외 사례 조사 ▲기타 반도체 산업 안전 보건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업에 쓰겠다고 덧붙였다.
또 협력사 직원들도 보상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회사 퇴직자들과 달리 협력사의 경우에는 근무이력 파악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저희 회사 소속이 아닌 분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와의 충돌 우려가 있어 고심이 많았지만 사회적 부조라는 인도적 관점에서 상시 근무한 상주 협력사 퇴직자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퇴직자와 동일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 보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권고안에서 2011년 이전 입사자 모두를 보상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과 관련해 삼성전자는 “조정위의 안을 받아들일 경우 40년전에 퇴사한 분들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하면서 보상 대상을 2011년 1월 1일 이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와 LCD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시설의 설치 정비 및 수리 업무를 1년 이상 수행하다가 1996년 이후 퇴직한 사람으로 조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질병 범위는 조정위가 권고한 대부분의 질병을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위는 권고안에서 7개 병종과 5개 질병군 등 12개 항목을 보상 대상으로 제안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하루라도 빨리 보상을 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가족대책위원회의 요구에 부응해 최대한 신속히 보상 절차가 진행되도록 하겠다”면서 “보상위원회가 구성되는 대로 창구를 개설해 신청 접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