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은 공천제도 및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두고 연일 시끌시끌하다. 국회 정개특위 활동 마감 시한이 다가오고, 내년 총선 또한 불과 8개월여 앞으로 다가와 있는 탓인지 이슈가 갑자기 확 불타오르는 느낌이다. 미리미리 충분히 논의하고 협상하면 좋았을 것을, 꼭 이렇게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자체가 국민들은 불만스럽기만 하다.‘빅딜’ 제안이 나오는 것만 해도 그렇다. 무슨 공천제도와 선거제도가 빅딜을 이뤄야 할 사안인가? 여야가 논의하고 협상해 국민 눈높이에 맞게 공천제도를 개혁하고,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될 일을 마치 서로의 밥그릇을 보존해주기 위해 주고받기하듯 빅딜을 제안한다는 자체가 마땅치 않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를 두고는 정치권 안팎에서 뒷말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제도 자체는 의미 있지만, 새정치연합이 이 제도를 목적이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는 꼼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래 100년을 내다보며 진정성 있게 만들어져야 할 선거제도가 꼼수 의혹을 받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여당 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의 이런 권역별 비례대표제 주장에 대해 ‘최근 당 분열 상황을 막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탈당파가 신당을 만드는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당내 신당파의 추가 이탈을 막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이 같은 선거제도 개혁안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함으로써 다당제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이를 통해 규모가 커진 군소야당들과 新야권연대를 만들겠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게 야권연대를 통해 원내 다수당을 만들어 새누리당을 압도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새누리당에서 이처럼 의심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정치 전문가들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도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사표를 줄이고 지역 편중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석패율 제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혁신위 임미애 대변인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사람이 권역별 비례대표 후보로도 동시에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석패율제만 따로 논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임 대변인이 밝혔듯,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는 지역구에 출마하는 사람이 비례대표 후보로도 등록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제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하면 오히려 비례대표제도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이렇게 지역구에 출마하는 사람을 동시에 비례대표 후보로도 올린다는 자체가 비례대표가 가진 직능대표성을 퇴색시켜버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이렇게 되면 비례대표 공천권을 가진 당 대표의 권력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즉, 새정치민주연합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주장은 문재인 대표가 부산/영남(PK)의 자신 측근 인사들을 원내에 진출시키기 위한 전략적 꼼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가정한 각종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영남권에서 의석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의석수가 더 크게 줄어 들 것이라는 결과도 동시에 나왔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함으로써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PK 원외 인사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 되겠지만, 그 외 수도권 등 비영남권 인사들에게는 환영할 수 없는 일이 된다는 얘기다. 결국, 새정치연합이 지금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는 문재인 대표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결과만 가져오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진정성이 있었다면,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무턱대고 국민 여론과 정반대로 가는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확대하자는 제안부터 내놓을 것이 아니었다. 또,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하기에 앞서 스스로 비례대표 공천 시스템을 어떻게 투명하게 할 것이며, 어떤 인사들을 등용하겠다는 입장부터 명확하게 밝혔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확실한 기득권 포기 선언이 전제됐어야 했다. 그런 중요한 조건과 장치들은 쏙 빼놓은 채 말만 그럴듯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니, 국민도 여당도 혼란스럽기만 할 뿐인 것이다. 꼼수가 아니라면, 이제라도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완전한 기득권 포기 선언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