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인 가운데,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0일 새누리당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이날 여당은 국회에서 국민연금으로부터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날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이날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으로부터 롯데그룹에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기업에 끼치는 영향과 해외 사례 등에 대한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이는 지난 7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지킬 수 있도록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힌 지 3일 만이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 역시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롯데그룹의 계열사 주주나 투자자의 관점에서 임시주주총회 소집이나 이사후보 추천 등의 주주제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2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현황 공시 대상인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그룹 계열사는 롯데푸드·롯데칠성·롯데하이마트·롯데케미칼 등 4곳이다.
구체적으로 롯데푸드에서는 13.31%를 보유해 단일 최대주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고, 롯데칠성 12.18%(단일 2대 주주), 롯데하이마트 11.06%(단일 2대 주주), 롯데케미칼 7.38%(단일 4대 주주)의 순이다.
여기에 4% 안팎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롯데쇼핑 등 일부 계열사에서도 국민연금은 주요 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지분을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지분 가치는 1조5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롯데그룹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고 난 후 롯데그룹 계열사들 주가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 가치도 하락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6일까지 롯데 관련 종목의 주가 하락으로 770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케미칼 329억원, 롯데칠성 263억6800만원, 롯데하이마트 99억9800만원, 롯데푸드 77억5900만원 순이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신동빈 체제’가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한 2분기 들어 롯데칠성 2.26%, 롯데하이마트 1.71%, 롯데케미칼 1.02%, 롯데푸드 0.29% 등의 지분을 더 사들여 지분율을 늘린 바 있어 평가손실이 더욱 커졌다. 롯데제과, 롯데손해보험, 현대정보기술, 롯데쇼핑 등을 포함한 롯데그룹 계열사 8곳의 시가총액은 지난 27일부터 지난 7일 사이에 1조원 이상 쪼그라들었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요구 목소리는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이 롯데그룹 사태로 손실을 입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으로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고 있다. 이미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후 주가 하락으로 6000억원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 없고 현실성 떨어져” 반론도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주주 제안이나 주주총회 소집, 이사 추천 및 해임 등의 요구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현실적으로는 국민연금이 롯데그룹에 주주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을 상대로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나 배당 요구가 아닌 주주권을 행사한 전례가 전무하다. ‘경영 간섭’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존 관행을 깨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경우 향후 기금운용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국민연금은 롯데 계열사들의 지분 보유 목적을 그간 단순 투자로 공시해 왔는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지면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위반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주주권을 행사해도 별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국민연금이 사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거나 완화시킬 만한 지위에 있지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개입할 수 있는 기업들이 제한적이고 롯데그룹 전체의 지배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가 전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재원 의원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침 강화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히면서도 이마저도 경영권 간섭에 대한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