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리더십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당의 분열적 상황 또한 봉합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대표는 그동안 당내 비노-비주류 세력으로부터 ‘친노 패권주의만 강화시키는 불통의 리더십’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받아온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반대파에 대한 포용적 자세를 보이면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당 안팎 신당파의 원심력을 꺾기 위해서는 탕평과 포용이 불가피하지 않았겠냐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표 리더십에 변화 조짐이 보임과 동시에 최근 비주류 핵심 인사들이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또한 거세지는 분열의 불길을 누그러뜨리는 요소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당 및 신당 창당을 압박해오던 비주류 일부 인사들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거나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일단 문 대표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들인 비노 끌어안기
문재인 대표의 통합적 행보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단행된 정무직 당직자 인선에서부터였다. 문 대표는 사무총장직을 폐지하는 대신 총무-조직-전략-디지털-민생 등 5본부장 체제로 전환했고, 정책위의장까지 포함해 계파를 두루 안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정책위의장에 임명된 최재천 의원이나 민생본부장에 임명된 정성호 의원은 천정배-김한길 의원 등과 가까운 인사들이다. 이 때문에 문 대표가 이들을 요직에 발탁한 것을 두고 탕평인사의 의미를 넘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신당 원심력을 꺾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천정배-김한길 등 당 안팎의 신당파 주요 인사들 입장에서는 핵심 측근들이 문 대표 체제에서 요직을 맡게 된 이상, 섣불리 신당 깃발을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표는 이와 동시에 주승용 최고위원에 대한 당무 복귀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주 최고위원이 당무에 복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노 측의 감정이 누그러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주 최고위원은 앞서 지난 5월 최고위원회의에서 4.29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했고, 이를 두고 정청래 최고위원이 공개 석상에서 ‘공갈’ 막말 비판을 가하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최고위원직을 곧바로 사퇴했었다.
이후로 문재인 대표가 주 최고위원 지역구까지 직접 찾아가는 등 거듭 최고위원직 복귀를 설득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당내 원로그룹을 비롯해 비주류 인사들 사이에서도 당무 복귀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면서 주 최고위원의 마음이 돌아서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한 지 108일 만인 지난 24일, 당무에 복귀했다.
주 최고위원은 ‘당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그동안 많은 분들이 저의 최고위원직 복귀를 요구했다”며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이종걸 원내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 등 지도부와 동료 의원들이 당 혁신과 지도부 정상화를 위해 저의 최고위원직 복귀를 수차례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고뇌가 있었지만,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선당후사’하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특히, 주 최고위원은 23일 문재인 대표와 만나 합의한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주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 의원은 계파 패권정치 청산에 따르는 당의 일체화와 통합이 최고의 혁신이며, 총선과 대선 승리로 가는 길이라는데 공감하고, 당대표와 최고위원으로서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합의 내용을 전했다. 문재인 대표가 그동안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강력하게 요구해온 주 최고위원에게 만족할 만한 ‘계파 패권정치 청산’의 의지를 내보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 최고위원은 이어, “더 큰 혁신, 더 큰 통합이 이뤄져야 일대일 구도로 새누리당과 제대로 겨뤄볼 수 있을 것”이라며 “지도부는 혁신위원회의 그림자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당 혁신을 위해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한다. 당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혁신을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각 세워오던 박지원까지
24일, 당무에 복귀해 첫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주 최고위원은 “사퇴를 번복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욕을 먹을 것을 각오하고 최고위원회에 복귀했다.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지만,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동료 의원님들, 그리고 많은 당원,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선당후사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선당후사’, 즉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당의 혁신을 위해 호랑이 등을 타고 달린다는 기호지세의 마음으로 국민과 당원이 부여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이번 혁신에 실패하면 우리 당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당 지도부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혁신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크게 환영했다.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의 복귀를 환영한다”며 “그동안 당의 혁신과 단합을 위해 주승용 최고위원의 복귀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당이 안팎으로 어려운 이때 당을 위해 어려운 결단을 해주신 주승용 최고위원회에 감사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의 뜻을 표했다.
특히, 문 대표는 “계파 패권 논란과 계파 갈등 없는 당의 통합과 단합이야말로 최고의 혁신이고 총선, 대선 승리의 길”이라며 “지금 우리 당은 열심히 혁신하고 있지만 아직 국민과 당원의 기대에 충분하지 못하다. 혁신이 단합으로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의 복귀를 계기로 우리 당은 더 단합하고 더 혁신해서 국민과 당원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주 최고위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대표와 충분한 교감을 나눴다”며 “문 대표도 아직 패권주의가 청산 되지 않은 것을 공감하고 앞으로 공동으로 더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매사를 서로 부정적으로 보고 불신하면 당이 제대로 갈 수가 없다”며 “신뢰회복이 대단히 중요하다. 최고위 간에도 갈등이 없도록 하겠다”고 이전과 확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주 최고위원은 당내 비노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조기 선대위 구성’ 주장에 대해서도 “일단은 혁신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맞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 최고위원은 “혁신에 실패하면 우리 당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며 “당 지도부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혁신을 성공시켜야 한다. 저도 앞장서서 그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사실상 그동안 요구해온 문재인 대표 사퇴 문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의 복귀에 이어, 그동안 문 대표와 각을 세워온 비주류 핵심 박지원 의원도 당 한반도평화안보특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 또한 지난 22일 문재인 대표가 박지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이와 관련, 26일 한반도 평화안전보장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박지원 의원께서 기꺼이 특위원장을 맡아주셨다”며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당 안팎을 통틀어 최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크게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의원은 “문재인 대표로부터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번 문제는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만약 필요하다면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대의적 차원에서 위원장직을 맡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동안 문 대표와 각을 세워온 비주류 핵심 박 의원이 이 같은 제안을 수락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승용 최고위원과 함께 박지원 위원장까지 비노-비주류 인사들이 다시 당 전면에 등장하게 되면서 당 안팎에서 거세게 불던 신당 창당 바람이 한풀 꺾이게 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탈당파 신당 플랜 차질 오나?
새정치민주연합 비노 인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당 외부에서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던 천정배 의원 등 탈당파들의 플랜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내 신당파들의 합류가 더뎌지고 있는 탓이다. 특히, 그동안 신당창당과 탈당을 압박해 오던 인사들 일부가 그대로 당에 주저앉아버리는 분위기가 되면서 신당 동력을 크게 잃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9월 혁신위의 최종 혁신안 발표나 공천 룰이 확정되면 상황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혁신위가 지난 19일 현역 의원 교체지수 평가 결과 하위 20%를 물갈이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비주류 측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조경태 의원은 “친노가 아닌 사람은 당을 나가라는 최후통첩”이라며 맹반발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천정배 의원은 지속적으로 정치권 전반의 재편과 신당 창당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천 의원은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개혁정치의 국가비전 모색을 위한 13주 연속 금요토론회’에서 “한국정치의 무능과 무기력은 양당이 특정 진영과 지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과두지배체제에 기인한다”며 “한국사회를 바꾸고 국민의 삶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진 정치세력이라면 명확한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의원은 그러면서 “새로운 개혁정치세력이 총체적 무능에 빠진 한국정치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천 의원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당이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정당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정치세력의 결집과 야권의 재구성이 시급하다”고 신당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지금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양극화를 청산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풍요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며 “개혁정치세력은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은 앞선 24일 제주를 찾은 자리에서는 “제주를 포함해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신당 문제를 논의해 본적은 없다”면서도 “여권에도 그런(신당) 뜻이 있는 인사가 있지만, 이 자리에서 이름을 거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당이 결코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탈당파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천 의원은 덧붙여 “신당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명한 가치와 비전을 지녀야 한다”며 “신당 인물들은 그 가치와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확고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지닌 전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선 “가치와 비전을 상실하고 나태해져 개혁 의지와 용기를 잃어 일부 기득권화하고 있다”며 “만년 야당으로 국회의원이나 계속 해먹겠다는 자세가 제1야당에 만연해 있는데 구제 불능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이 상태로는 해보나 마나 야권이 대패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퍼부었다.
천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여전히 희망 없는 불임정당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주승용 최고위원 등 당내 비주류 일부가 ‘선당후사’를 내세우며 문재인 대표와 다시 손을 잡았지만, 아직 분열적 상황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당 관계자들은 “당내 분열적 상황이 물 밑으로 가라앉은 듯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비노를 포용하기 시작한 문재인 대표에 끝까지 기대를 걸어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비주류 신당파를 눌러 앉히고 천정배 의원 등 야권의 신당 창당을 막아내는 것 또한 문 대표의 몫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혁신위가 문 대표의 의중과 달리 당 분열의 핵심 복병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