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셈법에 전망 엇갈려…“매입 카드 효과 없을 수도”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전 상장 계열사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삼성 계열사들의 실적 발표는 오는 27일 삼성화재, 28일 삼성물산, 29일 삼성전자·삼성SDS, 30일 호텔신라 등으로 예정돼 있으며 업계에서는 실적발표와 함께 각 계열사들의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22일 삼성증권은 1200억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자기주식 245만주(3.21%)를 매입하겠다고 밝혀 주가 급등 효과를 톡톡히 본 상태다. 이는 삼성증권의 자사주 매입 규모 중 역대 최대로 삼성그룹이 전 계열사에 걸쳐 강도 높은 주가 부양 카드를 꺼내는 신호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예상이다.
이번 ‘주가 부양 릴레이’에서 특히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삼상전자는 전 계열사를 통틀어 배당 확대 보다는 대량의 자사주 매입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분류되며 외신들도 최근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인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해 왔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만으로는 주당 가치가 높아지지 않아 투자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일각에서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매입 후 소각 카드는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된다.
◆자사주 매입 가능성 어느 때보다 높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가능성이 비교적 높게 점쳐지는 것은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특별배당을 실시하지 않을 계획인 데다가 최근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는 약세를 거듭해 왔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150만원대를 유지하던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3분기 어닝쇼크에 이어 완만한 회복세를 기록했던 1분기와 2분기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달 초 110만원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삼성전자 주가는 3분기 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후 연일 상승 랠리를 타고 26일 현재 130만원대 고지를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이는 자사주 매입에 대한 기대감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다시 하락세로 반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가뜩이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 이전보다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 삼성그룹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주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굳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자사주 매입과 관련된 조회공시에 대해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탄이 충분한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속속들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현금과 현금성 자산 17조8653억원과 단기금융상품 38조8584억원 등 총 56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50조원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익잉여금은 176조원에 달해 실탄이 충분한 상태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업계에서는 과연 삼성전자가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할 것인가로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삼성전자가 놓인 복잡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자사주 매입이 주가 부양 카드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가가 올라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면 남은 주식들의 의결권 가치가 올라간다. 또한 회사가 자사주 매입에 나서면 주가 부양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카드로 읽혀지기도 하고 주가의 하방 경직성을 강화해주기 때문에 주가가 올라갈 확률이 높다.
실제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2조2000억원에 가까운 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하고 지난 2월 매입을 완료했다. 이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비교적 부진했던 실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11월 120만원대를 오가던 삼성전자 주가는 2월 130만원대 중후반을 사수했고, 3월에는 150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자사주 매입 카드를 다시 꺼내드는 것만으로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달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다.
◆자사주 매입, 지배구조 개편 위한 것?
우선 외국 투자자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자사주 5.76%를 KCC에 넘겨 의결권을 부활시킨 사태가 다시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주를 매입하더라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다시 ‘백기사’에게 자사주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경우 주주가치 재하락이 명약관화하다는 점에서 자사주 매입으로 끝날 경우 투자자들이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뜩이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완수한 이재용 부회장이 다음 카드로 삼성전자를 활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는 상황이라 단순한 자사주 매입만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다음 시나리오로는 삼성전자가 지주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한 후 지주 부문을 삼성물산이나 삼성SDS와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삼성전자 사업 부문의 자사주를 보유하게 될 삼성전자 지주 부문은 합병 후 삼성전자 사업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복안이 나온다.
한 회사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될 때 지주사에는 기존의 자사주 비율만큼의 사업회사 신주가 주어지게 된다. 이 신주에는 의결권도 부여된다. 현재 삼성전자의 자사주 비율은 12%대다. 여기에 오너 일가가 2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나 지배력을 한껏 높인 삼성물산이 지주사의 합병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합병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중요한 것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 삼성전자 주가다. 가뜩이나 거론되는 합병 대상과 주가 차이가 심각한 상황이라 조금이라도 주가를 억눌러야 합병할 때 의미 있는 수준의 지주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그간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분석해 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의 자사주 매입 당시에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소각 없이는 약발 안 먹혀”…귀추 주목

자사주 소각은 자사주 매입보다 더욱 확실한 주가 부양 카드로 꼽힌다.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총 주식의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1주당 가치가 증가하게 된다. 유통되는 주식수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에서다.
가뜩이나 특별 배당금도 없다고 밝힌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해도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것뿐이라는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자사주 소각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자사주 소각이 수반돼야 투자자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자사주의 백기사 매각 건으로 홍역을 치른 삼성물산은 주주가치 제고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이번에 11.2%에 달하는 자사주 상당량을 소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도 동참해달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7% 이상 보유한 국민연금도 최근 “주주들은 대체로 매입 후 소각을 원한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밝힌 바도 있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비난에 직면했던 국민연금이 이번에는 삼성 측의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한다면 주주 환원 정책으로, 자사주를 매입만 할 경우에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외국계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맥쿼리의 한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비정규적으로 매입하거나 매입만 하고 장부에서 소각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그 진의를 의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자사주 매입은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매입한 자사주에 대한 소각이 이뤄질지, 어느 정도나 소각될지가 주가 부양을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상세실적 발표일인 오는 29일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에 대해 “자사주 소각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자사주 소각이 경영권과 관련된 만큼 대규모 소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입 후 일부 소각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삼성전자가 장기간의 주주 친화 정책과 관련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자사주 매입안을 내놓는 방안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향후 시장의 반응이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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