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아쉬움·근심·반감 등 제각각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지난 19일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업체 6개사가 서울 동대문구청과 성동구청 등을 상대로 낸 ‘영업시간제한 등 처분취소 청구소송’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생존권을 우선시한 판단으로, 대형마트가 문을 열어 얻는 이익보다 소상공 자영업자들의 권익이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다.
골목상권 논란이 일던 지난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에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을 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항이 신설됐다. 대형마트의 24시간 영업을 제한하고 매달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은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도록 전국 지자체들이 조례를 개정하자 이에 반발한 대형마트들이 같은해 12월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중소유통업자나 소상인, 전통시장의 매출 증대에는 큰 영향을 미쳐 공익 달성에 효과적”이라며 지자체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지자체의 처분을 받은 매장들이 대형마트로서 실체적인 요건은 갖추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둘러싼 수년간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법원이 지자체의 경제 규제와 관련한 명시적 기준을 제시한 첫 사례인 만큼, 향후 지자체 규제 정책이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 받는다.
현재 대형마트 3사는 대전과 청주 등 지방법원 12곳에 해당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계류 중인데, 이번 판결에 따라 각 지방법원이 내릴 판결도 지자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커졌다는 반응이다.
◆서울시·중기업계 등 환영 물결
서울시는 대법원의 판결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정상택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이날 “대형마트 영향으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이 매우 많다”며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이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환호할 만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가 제출한 ‘서울시 유통업 상생협력 및 소상공인 지원과 유통분쟁에 관한 일부조례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으로 정해진 ‘자정에서 오전 8시까지’를 오전 10시까지 2시간 연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환영의 물결은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에게로 퍼졌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같은날 오후 입장자료를 내고 “이번 대법원 판결이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이라는 법의 취지를 재확인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 유지를 통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이번 판결이 소상공인들에게는 비록 어렵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되는 결과”라며 “비록 대형마트의 매출감소는 적지 않으나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 영향을 끼쳐 공익 달성에 효과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형마트들은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아쉬운 얼굴을 감추지는 못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영업규제가 실효성은 미미하고, 소비자 불편과, 납품업체, 생산자·농민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규제의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중소유통과의 상생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대·중·소유통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마트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이 다르게 나왔다고 하더라도 대형마트들이 월 2회 의무휴업을 하는 것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대형마트가 입점 소상공인 등의 얘기를 종합적으로 듣고 보다 나은 상생방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라서 승소를 한다고 가정해도 헌법 소원 등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규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상생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사회에서 공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입점·납품업체 짙어지는 한숨
대형마트 규제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마트에 입점한 자영업자 및 납품업체들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당장 대형마트에 입점해있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짙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대형마트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영업일수와 시간마저 부족해진 때문이다. 여기에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수시로 진행되는 대규모 세일 탓에 할인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판이다.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소비 위축과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규제로 인해 국내 유통업계의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연간 매출이 1조7000억원 가량 줄었는데, 이로 인한 손실과 일자리 감소 등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국가의 지나친 개입도 비판의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시장이 결정해야 할 자원배분 마저 국가가 통제하는 게 아니냐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취지는 이해하지만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게 전통시장을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익을 얻는 주체도 뚜렷하지 않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일부 소비자들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 신림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32)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재래시장보다는 대형마트를 찾는다”며 “마트 문을 닫는다고 재래시장을 이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문 여는 날을 기다렸다가 방문하는 고객들이 많아져 불편만 늘어날 거 같다”고 말했다. [시사포커스 / 신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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