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김영삼 후계’ 정통성 투쟁 속 화합 가능성도

그간 역대 대통령 평가에 대해 여야 간 ‘색채’가 뚜렷한 가운데서도 ‘민주화’란 공통된 연결고리를 가진 김 전 대통령에겐 여야 사이에서도 큰 입장차를 보이지 않아 이번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이 합심하게 될지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갑작스런 비보에 김 전 대통령의 문하에서 성장한 현 정치 거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앞 다퉈 고인을 추모하면서도 현재 풀리지 않은 여러 쟁점 때문인지 생전 그가 남긴 마지막 남긴 친필 서예인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유지로 받드는 데 대해선 각자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좀 더 지켜볼 일이다.
◆ 與 김무성 ‘YS 적통’ 날개 달고 대권 굳히기?
상도동계의 막내로서 김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달려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2일 오전 8시 30분경 빈소에 방문해 절을 하던 도중 끝내 눈물을 숨기지 못해 생전 고인과의 깊은 관계를 짐작케 했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재임 중 누구도 흉내 못 낼 위대한 개혁 업적을 만드신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평하며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다. 우리(상도동계)가 다 상주”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의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고,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 1992년엔 김영삼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을 지낸 데 이어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 민정비서관, 사정1비서관, 내무부 차관 등을 거친 바 있어 ‘YS의 적자’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상주를 자처한 김 대표는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와 함께 빈소를 지킨 데 이어 다음날도 최고위원회의 일정을 마치자마자 재차 빈소를 방문해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이와 더불어 국민적 조문 분위기는 물론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하는 목소리도 잇따르면서 김 대표는 이런 분위기를 통해 ‘YS의 적통’을 자처하는 자신이야말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아우르는 차기 대권주자로 적임이란 부분을 내세우려는지 발인일인 26일까지 대부분의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에 눌러앉았다.
또 친박계 맏형으로서 공천 룰을 둘러싸고 그간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서청원 최고위원 역시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 대부”라며 자신도 상도동계 인사임을 내세웠는데, 서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로 재직하던 시기 비서실장을 지냈고 문민정부에선 정무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를 지낸 바 있다.
당초 이번 주부터 공천 룰 문제와 관련해 여권 내 계파 갈등이 다시금 표면화될 것으로 전망된 바와 달리 갑작스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모든 국회 일정이 잠시 멈춘 가운데 김 대표가 적극 김 전 대통령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데 대해 서 최고위원도 자신 역시 상도동계임을 강조하며 김 대표의 ‘YS 바람’을 잠재우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있어선 김 전 대통령의 개혁정신을 내세워 한 목소리를 내 비록 현재 친·비박 간 ‘휴전’ 상태가 오래가진 못할지언정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화합’의 메시지를 잠시나마 받든 것으로 보였다.
특히 김 대표는 새누리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로 상징되는 데 반해 ‘민주화’ 이미지에 있어 야당에 상대적으로 밀린 인상 때문인지 “우리 당이 배출한 김영삼 대통령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온 정성을 다해서 모시도록 하겠다”고 강조해 ‘민주화’ 측면에 있어서도 야권에 우위를 점하는 한편 김 전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연결고리는 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YS키즈’로 꼽히는 이인제 최고위원도 정부 추진하는 4대 개혁에 제동을 거는 야당을 겨냥해 “(YS가) 금융개혁과 노동개혁을 밀어붙였지만 당시 야당의 격렬한 반대로 표류되는 가운데 IMF 위기를 맞이했다”며 ‘야당책임론’으로 맹공을 퍼부어 YS의 ‘화합’ 메시지와 달리 이날도 정쟁을 이어가는 데 앞장섰다.
◆ 野 “우리 당이 ‘김영삼’ 정통성 잇고 있어”
이런 새누리당의 의도를 간파했는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발굴한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선 ‘민주화의 거목’이라 극찬하면서도 여당 내 상도동계 인사들과 김 전 대통령을 분리해 대응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합’ 메시지를 언급하면서 “그 뜻을 받들어 대결과 분열의 분단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번영의 통일 시대를 열겠다. 불공정과 불평등의 양극화 시대를 마감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며 김 전 대통령의 유지는 야당이 받들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을 위해 노사정 합의조차 무시하고 노사정위원회를 무력화하면서 여당 상임위원 숫자를 마음대로 늘려 노동악법을 강행처리 하려는 오만과 독선을 보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 유언의 저의를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데에 풀어썼다.
그 뿐 아니라 새정치연합은 김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항해 민주투쟁을 이어왔다는 역사를 주로 조명해 박근혜 대통령을 에둘러 압박한 것은 물론 김 전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꼽으며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비판하고 나섰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추진을 해왔다”며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국정교과서로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 굴절시키기에 나서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전 최고위원은 “역사왜곡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현재의 여당 대표가 과연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한번 돌아볼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문 대표 역시 “독재를 찬양하면서도 독재와 맞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는 이율배반의 정치를 보고 있다”고 일침을 가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후계를 자처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유승희 최고위원은 김 대표 뿐 아니라 서청원 최고위원까지 한 데 묶어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서로 경쟁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 그리고 상주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며 여당의 ‘YS 후계’ 주장에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야당 역시 ‘민주화’의 정통성은 자당에 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뜻은 야당이 받든다는 의지를 드러냈는데 전 최고위원은 “우리 (당) 60년사를 정리하는 그런 토의를 하면서 당시 신민당 총재로서 김영삼 총재의 민주화 업적에 대한 평가를 좀 더 상세히 기록하잔 이야기가 있었다”며 김 전 대통령을 현 야당의 역사로 포함시켰다.
아울러 문 대표는 “우리 당이 김영삼 대통령의 신념과 용기, 포용의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정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내겠다”고까지 밝혀 여야 모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자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기 바쁜 모습을 보였다.
◆ 김영삼 서거, 與野 화해의 장 될까

이런 격론 중에도 양측은 마찰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며 피상적이나마 고인의 뜻을 받들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22일 당초 예정된 정기국회 관련 정부·여당 비판 기자회견을 새정치연합은 취소했고 여당 내부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뜻을 곱씹으며 ‘화합’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길 당부한다”고 말했고,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날 국회 원내수석 회동 직전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화합과 통합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새정치연합 전병헌 최고위원도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대사의 두 거물이 결국 민주화와 정권교체라는 결실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존중하고 승복하는 문화에 있었음을 되새겨야 할 때”라며 “지금 우리 당은 승복문화만큼은 그 당시보다도 오히려 후퇴했다는 자책과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또 김 전 대통령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차기 대권주자들 뿐 아니라 새누리당 강용석 전 의원에 이르기까지 여야를 불문하고 계파나 친분을 떠나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한 뜻으로 고인에 조의를 표하는 모습에서 분열과 갈등, 대립으로 점철된 현 정국에 ‘큰 별의 서거’를 계기로 일말의 개선 가능성을 내비쳤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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