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일성에 與 ‘복면 시위 금지법’ 등 발의…野 반발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과 11월 10일 국무회의 중 거론했던 ‘국민 심판론’의 연장선상에서 24일 국회를 겨냥해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한층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이에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줄다리기만 계속하던 여야는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은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박 대통령이 확고한 메시지로 사실상 데드라인을 설정한 만큼 김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끝나는 내주부턴 양측이 법안 처리를 두고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국회 향해 일성 날린 朴 대통령
김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조차 고심할 정도로 순방 후 감기몸살에 시달리고 있는 박 대통령이 무리하면서까지 24일 예정에도 없던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국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강조한 부분은 주로 한중FTA 비준안 처리 등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와 불법 시위에 대한 엄단 방침이었는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와중에도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간 것은 그만큼 한시가 급할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국회에서 계류된 법안 처리 이전에 내년 총선이 목전임에도 아직 선거구 획정과 공천 룰 결정 등 선거 관련 쟁점조차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란 점에서 더욱 조바심이 나게 된 것인데 조문 정국으로 11월 마지막 주가 지나가고 결국 12월까지 가게 되면 여야는 급한 대로 선거 관련 쟁점부터 쏠려 국정운영을 위한 주요법안들은 자칫 19대 국회 내에 처리되지 못하고 총선이 끝나는 내년 4월 하순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의식한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서거로 여야 간 현안 논의가 사실상 ‘올스톱’된 현 상황조차 답답하게 여겨 무리를 해서라도 수위 높은 표현을 써가며 국회를 비판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작심한 듯 국회를 향해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자기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며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하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도리”라고 다그쳤다.
그는 이어 한중FTA 비준안 처리가 가장 시급한 사안임을 강조하며 “연내 발효를 위해선 비준이 이번 주까지 이뤄져야 한다”며 “올해 안에 비준되지 않으면 그 피해가 1년간 1조5천억원에 달하는데 어디서 보상받을 것이며 누가 어떻게 이를 책임질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사안의 시급성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일침은 그간 소위 ‘발목 잡아온’ 야당만 지칭한 것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 빈소에 눌러 앉아 ‘한중FTA 연내 발효를 위한 마지막 주’를 흘려보내고 있는 여당 지도부까지 겨냥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참석한 G20·APEC 등 다자회의에서 주요의제로 다뤄진 ‘테러’ 문제에 대해 한국도 국제공조에 나서기로 한 만큼 국회가 이에 발맞춰 대테러법 입법화에 가속을 내주길 그간 기대해왔음에도 여야 간 합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데다 최근 대내적으로도 반정부 시위 등이 겹치며 국내 상황이 혼란스러운 부분에 대해 강한 유감을 느껴 이날 국회를 향한 비판에 있어 ‘테러’와 ‘폭력시위’ 문제를 연계시켜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박 대통령의 질책을 의식했는지 새누리당은 김 전 대통령의 상중인 관계로 가능한 모든 일정을 취소해 왔음에도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와 3+3회동을 갖고 현안 처리에 나섰는데 야당 측에선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줄곧 주장하면서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처리는 야당과 합의한 것으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25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밝혔는데, 이에 더 나아가 여당은 ‘복면 시위 근절’이란 박 대통령의 지침을 이행하기 위해서인지 정갑윤 국회부의장을 위시한 새누리당 의원 32명이 같은 날 이른바 ‘복면 착용 금지’ 등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데 이르렀다.
◆ 與 “복면시위 금지 등 집시법 개정해야”

박 대통령은 앞서 24일 국무회의 발언 도중 지난 14일 있었던 주말 광화문 집회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위원장이 시위현장에 나타나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을 보여주자며 폭력집회를 주도했다”며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진당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반정부 시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테러단체인) IS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국제 테러조직과 시위대를 연계해 치안불안 상황을 테러 사안으로까지 해석했다.
박 대통령은 ‘복면’이란 익명성에 숨어 시위를 과격화하기 쉽게 만들고 집회 중 폭력 행사시에도 얼굴을 가리고 있어 향후 검거될 가능성이 낮아지는 만큼 ‘복면 착용 금지’를 주장한 것인데 실제 이런 우려로 인해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미국의 10여개 주, 스위스 지방자치단체 6곳 등 일부 선진국에선 ‘복면 제한 법규’를 적용·시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방침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 친박계 중진이자 국회부의장을 맡고 있는 정갑윤 의원이 직접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복면 시위 금지법’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 집시법 개정안에는 복면 착용 외에도 주최자의 준수사항을 거듭 위반할 경우 가중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됐으며 총포와 쇠파이프 등 폭력시위에 쓰일 수 있는 물품을 제조 보관 운반하는 것도 처벌하도록 해 기존에 휴대·사용만 처벌하던 수준에서 보다 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대학 입학시험 실시 등이 이뤄지는 날엔 집회나 시위를 제한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았는데 이는 지난 14일 집회로 인해 당일 대학교에 논술시험을 보러 가던 학생 일부가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시험장에 늦게 도착해 응시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입었던 걸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 野 “집시법 개정, 시대착오적”…차벽금지법 맞불
하지만 이런 여당의 법안 발의에 새정치민주연합은 격렬하게 반발했는데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과거에 추진하다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한 법을 재추진하겠단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당을 맹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에 빗대는 대통령과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겠단 여당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며 “농민과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차벽금지법을 발의해 맞불을 놨는데 이날 진선미 의원 등 17명이 발의한 차벽금지법은 차량과 컨테이너를 질서유지선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들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광장 전체를 차벽으로 통제한 조치를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했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들면서 차벽이 국민의 집회·시위 자유 및 일반의 이동권 뿐 아니라 집회 본질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야는 서로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양 법안 모두 실질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데 내달 5일 대규모 집회인 ‘2차 국민총궐기 대회’가 열리기로 예고돼 원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 野 “朴 대통령이야말로 립서비스” 한 목소리 성토

이렇게 박 대통령의 발언 한 마디가 국회를 뒤흔드는 파장을 일으키자 그간 적극 나서지 않던 야당 내 비주류도 야당 지도부와 한 목소리를 내며 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먼저 당내 주류인 문재인 대표가 25일 광주에서 열린 ‘아시아 문화전당 개관식’ 참석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국회를 탓하고 야당 탓을 하는 게 너무 잦고 지나치다”며 “비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지 국민을 적처럼 생각하는 자세로 국정을 이끌어선 안 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를 기점으로 비주류 핵심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의 ‘립서비스’ 발언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되묻고 싶다”고 일침을 가했고, 같은 비주류인 김한길 전 공동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정치인 중 박 대통령만큼 립서비스 잘하는 분을 따를 자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김 전 공동대표는 격앙된 목소리로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 선출직에게 이렇게까지 함부로 말한 예가 있느냐”며 “헌정질서를 따르는 국회 상황을 함부로 재단해 규정하고 폄훼해서 도대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대통령의 인식에 큰 전환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공약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며 “무상보육, 무상교육이 되고 있나. 대학생 반값등록금, 군복무기간 18개월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중 되고 있는 것이 있나. 이런 공약들이 대표적인 립서비스”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처럼 비주류까지 날을 세워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향후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이 19대 회기 내에 처리될 것인지 더 불투명해졌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돌직구’였는지 오히려 더욱 여야 갈등을 부채질해 수렁으로 빠뜨린 ‘촉매’가 된 건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19대 국회’가 내놓는 결과를 통해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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