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도입 앞두고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 놓고 공방

5일 업계에 따르면 황영기 회장은 전날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국내 금융업 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하영구 회장이 은행도 투자일임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황영기 회장은 은행에 자산운용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상품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손실이 나면 고객 민원 등 사안이 복잡해진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은행이 투자일임형 상품에 욕심을 내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일임업이란 증권사의 핵심 업무로 말 그대로 금융사에 자금을 맡기고 해당 자금으로 투자하는 것에 대해 일임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 분야다. 현재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선물회사 등이 투자일임업을 영위할 수 있다. 대표적 상품으로는 증권사의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가 꼽힌다. 은행은 투자일임업이 허용되지 않고 투자자문업만 허용된다.
하지만 최근 ISA 도입이 임박하면서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시름을 앓고 있는 은행권이 투자일임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투자일임업 시장은 2008년 164조원에서 현재 560조원 규모로까지 성장했으며 최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달 27일 하영구 회장은 은행에 투자일임업이 허용될 경우 고객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편의성을 들어 정부가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투자일임업 시장이 확대된 만큼 은행에도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고객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전국적 지점망을 갖춘 은행을 이용할 수 있어 편의성도 강화된다는 점이 주요 근거다.
특히 ISA가 내달부터 본격 도입될 예정이라 양 업계의 눈치싸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ISA는 예금과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을 한꺼번에 넣고 일정 기간 보유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계좌다. 연 소득 5000만원 이하의 근로자가 3년간 계좌를 유지하면 250만원 한도에서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을 면제해 줘 일명 ‘만능통장’ 또는 ‘만능 절세 계좌’ 등으로 불린다.
ISA는 신탁형과 일임형으로 나뉘는데 신탁형은 가입자가 일일이 편입 상품을 지정하는 방식이지만 일임형은 금융사가 투자 권한을 일임받아 포트폴리오를 임의로 짤 수 있다. 관련법상 현재 증권사는 신탁형과 일임형 모두를 취급할 수 있지만 은행은 신탁형만 취급이 가능하고 일임형은 취급할 수 없다. 은행 입장에서는 사실상 판매 대행에 불과한 셈인데 일임형이 편입 상품도 알려줄 수 있어 고객 입장에서 편리한 반면 신탁형은 광고와 홍보까지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증권사로 ISA가 쏠릴 가능성이 높아 은행권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증권가에서는 전문 인력도 없고 고객들이 주로 안정성을 요구하는 은행에는 고위험·고수익 상품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최근 ELS 손실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안정적 성향의 은행 고객들에게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을 불완전판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은행은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와의 차이인 예대마진이 기본이고 증권사는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대한 수수료가 기본이라는 것이 원칙 아닌가”라면서 “은행이 투자일임업까지 다룰 경우 고객과 지점 수의 압도적인 차이까지 감안하면 증권사가 뭐하러 있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펀드를 판매하고 있는데 새삼 불완전 판매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입장에서 보완책을 마련하면 되는 일”이라면서 “또한 이미 시중은행들은 예전부터 자산관리 전문성을 꾸준히 강화해왔기 때문에 전문인력 등에 대한 얘기는 핑계에 불과한 것 같다”고 반박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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