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입찰 10여년 째 국산 일색 반발…이례적인 외산 업체의 소송 눈길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필립모리스는 지난달 말 대한민국을 상대로 ‘납품품목 선정 결정 무효확인’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군납 평가기준을 공개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복지단은 필립모리스가 민사소송을 제기한 날 오는 12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 ‘2016년 국군복지단 마트 일반담배 납품품목 선정 공고’를 냈다. 이후 지난 4일까지 관련 심의 서류 접수를 마감했다. 이에 이번 소송 제기는 지난 선정 결과들 및 올해 선정 결과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읽히고 있다.
국군복지단이 KT&G가 독점하던 충성마트(PX) 담배 판매권 부여 기준을 지난 2007년 공개입찰방식으로 변환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가지만 현재까지 외산 담배가 KT&G를 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에 군납 담배 주 이용층이 청년층인 점을 감안하면 청년층 사이에서 압도적인 선호를 받고 있는 필립모리스를 비롯, 외산 담배가 매번 고배를 마신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국군복지단 측은 일반 장병들부터 장교들까지 계급별 의사를 한 데에 모으는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평가 항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외산 담배 업체들 사이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호도 1~3위도 뚫지 못하는 군납 담배의 벽
국군복지단이 공개한 납품업체 선정 기준은 가격(30점)과 디자인(30점), 맛(40점) 등 총 세 가지다. 이 중 가격 항목은 지난해 담뱃값 인상 이후 사실상 동일해졌기 때문에 차이가 없다.
따라서 관건은 맛과 디자인인데 이는 장교와 부사관, 군무원, 장병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이 평가하고 있다. 심의위원들이 담배 관련 전문가들이라기보다는 담배를 피우는 일반 소비자에 더욱 가깝기 때문에 평가가 전문적이기보다는 단순히 주관적인 설문조사나 다름없다는 빈축이 나온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국군복지단이 심사위원들에게 KT&G 담배를 선정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맛과 디자인 등에서 외산 담배가 10년 가까이 일방적으로 KT&G에 밀릴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복무 대상자가 주로 포진해 있는 19~29세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것은 ‘말보로’ 등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한국필립모리스(40%)였다. KT&G는 32.3%로 2위를 차지했고 ‘던힐’ 등을 판매하는 BAT코리아가 16%, ‘뫼비우스’ 등을 판매하는 JTI코리아가 11%로 뒤를 이었다.
19~25세의 선호도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연령대에서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필립모리스의 선호도는 43.6%로 타 경쟁사들을 크게 앞서 나갔다. KT&G 31.2%, BAT코리아 18.6%, JTI코리아 9.9% 순이었다.
25~29세 장병들의 선호도 역시 한국필립모리스 38.3%, KT&G 33.2%, BAT코리아 18.6%, JTI코리아 9.9% 순이었다. 19~25세 청년 중 76.16%가 외산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9~29세 사이의 선호 제품 1~3위도 말보로·던힐·팔리아멘트인데 단 한 종도 10년 가까이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전체 장병의 일부에 불과한 심의위원들의 선호도를 감안하더라도 외산 담배가 한 번도 선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필립모리스 측의 입장이다. 이 업체들은 공개입찰로 전환된 직후부터 올해까지 빠지지 않고 입찰에 꾸준히 참여했다. 즉, 이번 소송은 사실상 외산 담배 업체들의 대리전 격 성격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외산 담배의 군대 PX 입성 좌절은 과거에도 수 차례 지적받아온 사안이다. 국군복지단은 매년 판매량이 저조한 하위 제품 4~5종의 브랜드를 퇴출시키고 새 브랜드를 공개입찰로 선정하고 있는데 거의 매년 이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PX에서 판매하는 과자나 음료, 화장품 등은 외국산도 있다. 그런데 담배만 유독 PX 입성이 좌절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도입한 공개입찰방식이 ‘무늬만 공개입찰’이라는 빈축이 여기서 나온다. 특히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KT&G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부당 독점영업을 해온 것을 이유로 2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어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물론 군납 담배 시장의 수익성이 어마어마해서 이런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군납 담배의 판매량은 전체 담배 시장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호품인 담배의 선택이 쉽사리 바뀌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2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향후 주 고객층이 될 수 있는 장병들에게 자사 제품이 익숙해질 경우 미래의 수익으로 직결될 수 있는 사인이다.
하지만 과거 국산품 장려 운동의 영향을 받은 상층부에서는 국방을 맡고 있는 군대에서 소위 ‘양담배’로 불리던 외산 담배를 파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담배만큼은 국산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셈으로 국민 자존심의 문제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 2014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백군기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익을 수호하는 군이 순이익의 대부분을 외국으로 가져가는 외산 담배를 부대 내에서 판매하면 이를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면서 “군의 자부심을 위해 부대 내 외산담배 판매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예 공개입찰 자체를 과거로 돌려 없애라는 얘기인데 그만큼 세대간 외산 담배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일반 사병들은 외산 담배에 대해 거부감이 거의 없는 만큼 굳이 이를 국민적 의식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변화는 없을 듯…장기적·상징적 포석
더욱이 필립모리스는 올해부터 국내 담배 농가의 잎담배를 사기 위해 연엽초생산조합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담배 농가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올해 선정 과정에서는 이 점도 감안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산 담배 농가에서 생산되는 잎담배는 전량 KT&G가 수매하고 있다. 하지만 필립모리스는 오는 2017~2019년 연간 30억원, 총 90억원 규모를 수매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립모리스 측은 수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타 외산 담배 업체들이 국산 담배 농가의 잎담배에 대한 구매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계로서는 유일하게 국내에 수출 및 고용 창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일부 한정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품을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다만 한국필립모리스조차도 당장 소송 제기로 인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는 않는 분위기다. 문제 제기 차원에서 낸 상징적 의미의 소송이라는 얘기다.
실제 한국필립모리스 측은 지난 9년 동안 평가기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고속도로 휴게소와 관련해 KT&G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존의 독점 관행이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마저 나온다.
또한 소송이 제기되면서 외산 담배 업체들의 고충이 널리 알려지는 효과가 예상되고 소송 과정에서 외산 담배 업체들의 탈락하게 된 평가 기준들이 공개될 경우 향후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담배업계 사상 초유의 외산 담배 업체의 소송 제기로 오는 12일 발표될 선정 결과에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될지 업계와 군 장병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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