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엔 ‘블랙리스트’도 ‘화이트리스트’도 있었다
청와대엔 ‘블랙리스트’도 ‘화이트리스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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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통해 ‘화이트리스트’엔 3년간 68억원 지원
▲ 박영수 특검팀은 6일 수사발표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공모했음을 강조했다. ⓒ YTN
[ 시사포커스 / 고승은 기자 ] 박영수 특검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면서 청와대 주도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단체의 활동비 지원을 요구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존재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을 끊은 ‘블랙리스트’와는 달리 정권을 지지하는 단체들에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특검팀은 6일 최종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청와대가 특정단체명과 단체별 지원금 액수를 지정해 전경련 임직원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2014년에는 청와대 지정 22개 단체에 삼성, LG, 현대차, SK 등 재벌로부터 받은 자금 24억원이 흘러들어갔다. 또한 이듬해인 2015년에는 청와대 지정 31개 단체에 35억원이 흘러들어갔고, 지난해에는 22개 단체가 9억원을 받았다. 이에 따라 3년간 지원된 금액은 68억원에 달한다.
 
다만, 해당 리스트 수사는 시간의 한계로 마무리되지 못했고 관련 내용은 검찰로 넘겼다고 특검팀은 전했다.
 
◆ ‘블랙리스트’ 박근혜-최순실-김기춘 등이 공모
 
박영수 특검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이 사건은 연간 약 2천억원에 이르는 문화예술 분야 보조금을 단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견해를 달리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문화 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해 지원을 배제함으로써 예술의 자유의 본질적 영역인 창작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을 침해하고 비협조적인 공무원에 대해 부당하게 인사조치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특검팀은 이날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공모했음을 강조했다. 해당 사건이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을 넘어 박 대통령 등 청와대 최고위층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진행된 범죄임을 확인한 것이다.
▲ 박근혜 정권하에서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 집단소송 제안 기자회견을 여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습. 사진 / 고승은 기자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로 적시된 인물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비서관,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 등 7명이다. 이 중 김상률 전 교문수석과 김소영 전 비서관을 제외한 5명은 특검팀에 의해 현재 구속된 상태다.
 
특검팀은 이들의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집행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 심의위원 후보 19명이 위원 선정에서 배제됐다고 파악했다. 또 예술위가 진행하는 예술가 공모사업 등 325건,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등과 관련해 8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2개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특검팀은 파악했다.
 
이밖에도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집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로 문체부 실장 3명에 사직을 요구한데에도 박 대통령이 김기춘 전 실장, 김종덕 전 장관 등과 공모한 것으로 판단했다.
 
◆ ‘세월호’ 서적 냈다고 블랙리스트
 
특히 블랙리스트에 오른 출판사 중 문학동네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촉구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출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이 찍혔다. 2014년 25종의 세종도서를 배출했던 문학동네는 2015년에는 5종밖에 선정되지 못했다. 정부가 지원을 해주던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은 아예 폐지되기도 했다.
 
특검은 해당 사건을 예로 틀며 “세월호 참사와 같이 학생들이 포함된 선량한 국민의 희생을 추모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념이 이유가 아님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특검팀은 이같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정부, 청와대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은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했다"며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로 판단된다"고 꼬집었다.
 
◆ ‘기춘대원군’ ‘신데렐라’ 잡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파헤친 것은 박영수 특검팀의 최대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이후 출세의 가도를 달리면서 중앙정보부의 요직,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3선 국회의원 등을 지낸 뒤, 현 정권에서 ‘왕실장’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막강한 위세를 보이던 김기춘 전 실장이 생애 최초로 구속수감됐다는 점이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현 정권의 ‘왕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신데렐라’로 불리던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동시에 구속됐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또 현 정권에서 ‘신데렐라’로 불리며 여가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을 잇달아 지냈던 조윤선 전 장관도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김종덕 전 장관 등 전직 장차관들이 잇달아 쇠고랑을 차는 등,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블랙리스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어마어마한 파장을 낳았다.
 
한편, 박 대통령 측은 특검팀이 박 대통령을 ‘블랙리스트 정책의 공모자’로 결론내린 데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박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입장자료에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어떠한 작성을 지시한 적도 없고, 보고를 받은 사실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박 대통령 측은 문화예술계 지원 문제와 관련, "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누구를 지원·배제하느냐의 문제는 문화정책을 책임진 정부의 합리적 선택의 몫"이라며 "건강한 상식 수준의 비판·비난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대항하고 정권을 공격함으로써 이념화된 세력을 우리 사회에 심으려고 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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