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3차 남북정상회담이 9월 중순경 개최될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대북 특사단의 방북을 계기로 4·27 판문점 선언 비준 처리 문제를 놓고 정치권에서 다시 파열음이 일고 있다.
◆ 한국당, 靑·與 압박에도 ‘비준 거부’ 고수…北 인권까지 꺼내 역공
먼저 자유한국당은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판문점 선언’을 국회에서 비준하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일 문희상 국회의장은 9월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정기국회에서 4·27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를 다뤄주시길 바란다. 국민의 72%가 국회의 비준동의에 대해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찬성하고 있다”며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한반도의 평화에 힘을 보태는 데 여야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주시길 당부드린다”라고 당부한 바 있다.
심지어 문 대통령도 같은 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금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로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국회가 초당적으로 판문점 선언을 뒷받침해 주신다면 한반도 평화를 진척시키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여기에 발맞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해찬 신임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야당도 3차 남북정상회담 전에 판문점 선언의 국회비준 동의안을 처리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협조를 요청했으며 하루 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그는 “국회 비준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막을 역진 방지책이자 국민적 합의와 지지에 기반해 대북 협상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시기상조라면서 사실상 거부 입장을 고수했는데, 김성태 원내대표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서서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는 지금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지금 흐름은 지난 6월 미북정상회담 당시 분위기와 사뭇 달라졌다”며 “환상에 들뜬 감성적 접근보다 이제 냉철한 이성으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즉각 맞받아쳤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원내대표는 3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상황까지 꼬집어 “회담의 본래 목적은 북핵 폐기와 비핵화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길 바란다. 지금 서둘러야 할 것은 종전선언이 아니라 확고한 국제공조를 통한 확실한 북핵 폐기”라며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북핵 폐기 철벽 공조에 보다 집중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지난 7월 1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전통적인 안보관보다는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 협력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 비준안 처리에 협조 가능성을 내비쳤던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마저 4일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비핵화에 대한 진전이 아직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비준한다면 우리는 경제협력과 관련된 의무만 지게 된다. 야당 입장에선 찬성할 수 없다”고 기존 방침서 선회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당은 북한 인권 문제로까지 전선을 확대하며 정부여당의 압박에 맞불을 놨는데, 김 위원장은 4일 같은 당 김영우 의원이 주최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거버넌스 구축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평화담론을 놓쳐선 안 되나 인권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며 “대북관계를 원만히 하는 평화교섭을 위해 북한 인권문제는 유보하거나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뿐 아니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강석호 한국당 의원까지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평화와 교류란 수사에 또 다시 현혹돼선 안 된다”며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 의제 조율 과정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반드시 거론돼야 한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포괄적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수위를 한층 높였다.
◆ 바른미래, 판문점 선언 비준 문제로 내홍까지 비화

이처럼 한국당이 분명히 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원내교섭단체인 바른미래당 역시 정부여당이 요청한 판문점 선언 비준 처리에 협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 손학규 신임 대표의 경우 지난 4일 국회 기자간담회를 통해 “기본적으로 남북평화문제에 대해 당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고 4·27 판문점 선언 비준 문제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으나 당내에선 당장 반발 기류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분위기는 구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는데, 앞서 손 대표가 당선된 9·2 전당대회에도 불참했던 지상욱 의원은 4일 즉각 성명서를 통해 “그간 비준논의에 대해 바른미래당이 견지해 온 신중한 대처 방향에도 맞지 않고 대표 취임 후 하루 만에 아무 상의도 없이 나온 발언”라며 이라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국민들에게 얼마나 경제적 부담이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에 백지 수표를 써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아울러 지 의원은 “완전한 비핵화 없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은 UN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 원칙에 위배된다”며 “신임 당 지도부는 손 대표의 돌출발언에 대해 입장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사실 당 내홍으로 비쳐질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이렇게 반발하고 나온 데에는 지난 7월 초만 해도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은 국회에서 논의하고 보완하더라도 처리해야 한다”던 구 국민의당 출신 김관영 원내대표조차 지난 8월 17일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선 “당초 생각했던 만큼 비핵화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있고 북미 대화도 교착상태에 있다. 많은 상황 변화를 고려했을 때 국회 비준동의를 지금 하기는 쉽지 않다”며 입장을 번복한 만큼 손 대표가 돌연 이 같은 입장을 내놓을지 전혀 예상치 못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에서 판문점 선언 비준 처리를 놓고 손 대표에 적극 러브콜을 보내왔다는 점도 당내서 손 대표를 의심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는데,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손 대표의 해당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인 3일 CPBC라디오에 나와 “이해찬 대표와는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 하셨기 때문에 두 분 간의 개인적 관계를 감안하면 대화가 원만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누구보다 햇볕정책 같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적극성을 가졌던 분”이라며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라고 손 대표에 기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래선지 손 대표는 5일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판문점 선언, 비핵화와 평화 정착 그 길이 기본 방향이 맞고 지지한다”면서도 “대통령이 욕심만 갖고 ‘(비준동의를) 빨리 해야 된다’ 이렇게 가선 북한이 그렇게 (요구를) 들어주겠나. 어차피 시간을 두고 할 일”이라고 전날보다 수위를 낮췄다.
다만 그는 자신의 ‘판문점 선언 협조’ 발언에 대한 지 의원의 비난과 관련해선 “그 사람은 내용을 모르고 얘기했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뒤 “판문점 선언에 나는 적극 지지하고 (비준동의) 해야 된다는 입장인데, 일방적으로 빨리 간다는 조급증에 걸려선 안 된다. 한미관계도 있는 것이고 해 그런 것을 봐 가면서 당내 의견도 종합해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평화당은 환영하나 상임위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

한편 민주평화당에선 판문점 선언 비준안 처리와 관련, 지난 3일 김정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지금 국회가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는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이라며 “문 대통령과 문 국회의장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을 촉구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초당적 국회처리를 촉구한다”고 여당 측과 한 목소리를 냈다.
아예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한국당이 찬성을 하지 않더라도 문 의장이 표결 처리하면 평화당에서는 찬성을 하게 될 거고 많은 의원들이 찬성하리라고 본다”며 “합의 처리가 제일 좋은 방법이고 그렇지 않으면 표결 처리라도 해야 된다”고 강행 처리 의사까지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과 달리 평화당이 협조한다고 한들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는 실정인데, 법률이 아니어서 법사위를 거치진 않지만 관련 상임위인 외통위를 통과해야 본회의에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외통위는 회의 개의와 같은 권한을 가진 외통위원장을 한국당이 맡고 있는데다 구성원 수도 범여권이 11명(민주당 10명, 평화당 1명), 야권이 11명(한국당 8명, 바른미래당 2명, 무소속 이정현 1명)으로 동률이라 바른미래당의 행보에 모든 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일단 평화당에서도 5일 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판문점 선언 비준을 처리해야할 외교통일위에서는 바른미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형국”이라며 “손 대표는 당내 문제 때문에 국가대사를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손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북한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지난달 30일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놓고 보수야당들이 시기상조를 떠들며, 북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반대하고 있다”며 “평화와 통일이 아닌 동족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는 반통일분자”라고 보수야당을 비난했다.
이렇듯 ‘뜨거운 감자’가 된 판문점 선언은 문 의장과 여야 5당 대표가 함께 가진 첫 ‘협치 오찬’ 회동에서도 당연히 의제로 다뤄졌는데, 여기서도 각 당 대표들 간 의견이 상이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또 기약 없이 뒤로 미뤄졌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데드라인으로 잡은 9월 남북정상회담 시점이 점차 다가오면서 의장이 비준안 직권상정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데, 민주당에서 현재 여야가 함께 남북회담에 가자고 손을 내밀던 상황이다 보니 정치적 부담이 큰 직권상정에 힘을 실어주기는 어려울 거란 지적도 있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