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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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로 비행하면서.1



여행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이동이다. 마음이 누리는 시공간적 자유로움이다. 낯 선 여행지의 낮과 밤을 약간의 두려움으로, 때로는 달콤한 자유로움으로 맞이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몸은 대개 긴 이동중에 무력해지고 두 눈과 귀는 총기를 잃는다. 그 때 시각적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은 마음의 눈이지 육신의 눈이 아니다. 긴 비행중에는 특히 그렇다.

구름 위로 나르는 몸은 좁은 공간속에 갇혀있을 뿐 갈망하는 자유의 미풍은 맛 볼 수 없다. 그 때 육신은 우리속에 갇힌 무력한 동물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더우기 새벽 이슬을 맞으며 광야를 내닫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 속에서 맛보는 차체 흔들림의 율동감이나 부드러운 엔진음을 비행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구름 위로 뜬 채로 그저 한 대륙에서 먼 다른 땅으로 운반되고 있는 우리의 몸뚱이는, 비유컨대 활어차 속의 살아있는 물고기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런 갇힌 공간 속에서 불현듯 낯 선 땅의 올리브 나무의 끝가지를 흔드는 지중해의 바람이 구름위에서 문득 심안에 포착되고, 과거의 빛과 그림자가 되살아나 심이에 고통스런 마찰음을 일으키는 게 비행이 주는 드문 선물이리라. 자유로운 마음은 닫힌 공간의 어두움에 묻힌 육신과 드물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꿈꾸는 대상이 존재하는 곳에 마음이 가 머무는 것- 그것이 여행인 것 같다. 마음은 시공간의 벽 너머 해조음 가득한 유년기 바다의 꽃게들과 눈맞춤 하는 가슴 설레임을 맛보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육신이 아직 이르지 못한 미래의 별빛 반짝임에 시각적 충만감을 맛보는 그런 상상의 무한이동인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다.

지금 나의 심안은 나르는 기체 속에서 검은 자갈과 야생 선인장의 척박한 야트막한 산악을 넘어 벌써 안달루시아의 고도, 그라나다에 가 있다. 산 크리스토발에 올라 하얀 집들과 가파른 황토빛 알람브라 성벽과 마주하고 있다.

사크로몬테 집시마을의 동굴 따불로가 심안에 들어오고, 집시 여인의 가슴 찌르는 노래 솔레아가 심야에 들려온다. 플라멩코 댄서 사샤와 함께 헤레스의지는 4월에 펼쳐지는 사에타 축제의 긴 행열 속에 끼어있다. 그리고 다시 마드리로 돌아와 솔 광장의 한 카페에 앉아 스페인을 사랑한 헤밍웨이의 글을 읽는다.

그라나다에서
큰 달이 오르는
밤이면
알바이신 언덕에 올라
아라비아 산 진한 허브향과
가르시아 로리카의 시와
플라멩코 콤파스에
취한 눈으로
황토빛 전설의
알람브라와 마주하자
집시들의 마을
나귀 노새들이 터놓는 골목길 마다
세리주 향이
나그네의 마음을 붙든다는
헤레스에서는
칸테의 그 깊은 맛은
세리주 잔에 담아 마시고
그리고
빛의 도시
카디스에 이르러
이 침침한 육신의 눈을
순수한 바다 빛으로 씻어리라.
마드리드는 팔라도 미술관의 그림보다
발라스케스의 동상 아래 앉은 거리의 악사로 인해
당신에게 더 오래 기억되리라?
그 기타리스트가 어떤 곡을 키기에?
바로셀로나는 단념하자.
이태리 여행에서
모네는 폴로렌스도 나포리도 가지 않았었다.
시각적 상상과 하나의 열망 그리고 회상의 정서가
지리적 장소보다 더 중요하다는 모네를 따르자.
플라멩코만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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