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새, 대한민국 성인 남자 대부분의 가슴에 기생하여 사는 동물, 뇌와 눈이 없어 숙주의 것을 빌려쓴다.’ 홍일록(洪日綠)이라는 평범한 한 골초 회사원을 금연소설가로 만든 자전적 소설 ‘악마새’는 섬뜩한 경구를 담배 연기 가득한 이 세상에 던지고 있다.
사실 필자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다. 그러나 굳이 한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연초에 ‘이주열 신드롬’이니 ‘하일성 신드롬’이니 하면서 활활 불붙던 금연열풍이 한풀 꺾인 데 대한 안타까움에 던지는 가장 적절한 경구가 바로 ‘담배는 인간에 기생하는 악마새'라는 강렬한 인터넷 목록이었기 때문이다.
폐쇄성 폐질환 등 흡연자 이웃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직접적인 이유와 마약 성분의 기호품으로 애연가들이 쉬 끊을 수 없음을 담보로 하여 나라가 행하는 철면피 음모가 더욱 얄미울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건강부담금을 매기겠다고? 애연가는 외계인인가, 여태까지 말 않고 묵묵히 낸 세금이 얼마인데 뭐? 기분 나쁘면 담배를 끊으면 될 게 아니냐고.’ 아무리 온갖 욕설을 동원해서 씨부렁거려봤자 더욱 기분 나쁜 건 분명 이 나라가 지난해에만 3조 4000억원의 세금을 낸 흡연자들을 봉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2천원 짜리 담배 한 갑의 약77%인 1,540원이 세금 및 건강부담금이다. 하루에 한 갑씩 피는 애연가에게 한 달에 부가되는 세액이 4만 6천 원, 일 년에 무려 55만원의 세금을 비흡연자 보다 더 내게 되며. 하루에 2갑 정도 피는 골초들은 일 년에 무려 110만원의 웃돈을 나라에 갖다 바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애연가들이 꼽게 생각하는 건 갑당 200원이 추가 부과되는 준조세적 성격을 띈 건강부담금인데, 비흡연자는 건강보험료만 부담하는 반면 흡연자는 건강보험료에다 건강부담금까지 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의료보험 적자는 저들이 만들어놓고 건강보험재정 건전화라는 미명 아래 자신을 내동댕이쳐가면서 세금 증대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애연가들에게 흡연으로 인한 무료 폐암 치료 등의 혜택은커녕 적자 땜질의 바가지를 씌워 모은 5천500억원을 직장 의료보험에 55%, 지역의료보험에 45%를 보탠다니, 빌어먹을 잘먹고 잘살아라는 악담과 발동된 오기로 외제담배를 뻑뻑 빨아대니 그 판매량이 급증할 수밖에.
사실 담배는 ‘악마새’라는 저주스런 명칭에 걸맞게 열거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많은 건강상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운 겨울날 회사 바깥 양지쪽에서 담배를 빼어 문 처량한 셀러리맨들의 모습,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비밀스레 꺼내 핀 담배 연기를 없애기 위하여 창문을 여는 둥 부산을 떨어보지만 들어온 여직원들의 미간이 어느새 찡그러지면 죄진 사람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골초 상사들, 처진 어깨로 퇴근해봤자 그거 한 개피 편하게 필 수 있는 장소 하나 없는 가장들, 남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내면서도 그에 걸맞은 대접은커녕 멸시의 손가락질에 몸을 사려야하는 처량한 몰골의 애연가 여러분.
그러기에 필자는 담배를 끊어 버렸다. 건강부담금이 부과된다는 2002년 2월 1일이 채 못된 1월 31일 22시 50분, 그것도 원망스런 건강부담금 부과의 부당성을 넋두리하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어느 주점에서 그놈을 쓰레기통에 냅다 집어 쳐 넣어 버렸다.
그 아깝고 아까운 15개피를, 밤 12시가 되어도 그 놈이 없으면 온통 재떨이를 뒤지던, 새벽이면 화장실에 동행하던 애인 같은 그 놈을, 수업하다 쉬는 시간은 바깥에서 두 개피씩이나 해치우던 꿀맛 같던 그 놈을, 우와! 술을 마시거나 원고를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어떨 땐 두 갑도 모자라던 그 놈을 쓰레기통이 집어넣다니. 그리고 벌써 2개월이나 되었다.
애연가들이여, 추잡한 악마새의 음모에서 벗어나자. 금연보조제니 패치니 은단이니 용기 없는 군소리 집어치고 그저 피지 않으면 된다. 내가 담배끊어 지방세가 줄었다고 울산의 목줄에 거미줄 칠 리 없을 것이며 바로 오랫동안 나를 기분 나쁘게 하던 나라의 봉에서 벗어나는, 나와 가족, 이웃의 건강을 도모하는 길이다.
쉽다. 담배 끊은 사람하고는 말도 안 한다는 기분 좋은 농담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금연, 내일이면 늦다. 그 시작이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