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처음 철근 일을 시작한 아파트가 20층이 되면서 골조공사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노임도 제대로 주지 못해 두 달 석 달씩 미루는 것을 밥 먹듯 한 회사가 다음 일을 이어 줄 것 같지도 않고, 여기저기 다음 일자리를 찾아 전화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현장으로 돌아다녀 보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그저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혼자라면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만 지금까지 한솥밥을 먹어온 동료들을 나 몰라라 버리고 갈 수 없어서 함께 일할 자리를 찾으려니 더 힘이 들그만요.
엊그저께는 전주까지 다녀왔습니다만, 그 쪽도 마찬가지고, 부산 쪽에는 연락이 되지 않고, 4월 중순쯤, 대전에 일이 하나 터진다는데 어디 믿을 수 있어야지요.
세 팀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팀은 다행히 전주에 일자리를 찾아서 떠났습니다. 마무리가 덜 되었는데 일을 남기고 가서 어쩌느냐며 미안스러워 하는 동료들을 일자리 있을 때 어서 가라고 등을 떠밀었습니다.
남은 일이야, 남은 사람들이 하루에 못 끝내면 이틀에 끝내지요 뭐. 하지만 우리도 일자리가 나서면 내일이라도 당장 떠나야지요.
언제나 일을 시작하면 일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일을 해왔습니다. 당장 눈앞에 좋은 일자리가 나서도 차마 남은 일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보면 일자리라는 것이 내가 일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니, 언제나 일을 끝내고 나면 한 두달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깨끗이 일을 끝냈다고 퇴직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고맙다고 상여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일한 날짜 따져서 정확하게 일당 계산해주고 돌아서면 남이 되는 오야지며, 하청회사들에게 왜 나 혼자서 의리를 지킨다고 애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캄캄하게 이어지던 실업의 나날들은 직접 당하는 나보다도 아내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일당노동자의 아내에게 언제 일자리가 나설지 모르는 실업상태로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가장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는 일인지 왜 모르겠어요. 이제는 나도 좀 독해지려고 합니다.
어차피 다음 일을 이어주지 못하는 회사라면 어느 때든 일자리가 나오면 미련없이 옮겨야겠어요. 내가 의리 지킨다고 즈그들도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자꾸 마음이 약해지려고 하네요. 이렇게 다 떠나고 나면 누가 일을 끝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다시 한번 이를 악물어보는 중입니다.
돈 있으니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요 뭐. 눈 딱 감고, 나도 좀 독살스럽게 살아야겄그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