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끓는 숨가쁨 입맞춤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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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 5



누운 채 유월 가고 칠월 가고 팔월 가네
엉겅퀴 타래난초 물봉선
때맞춰 꽃피고 꽃져갔겠네
가슴 끓는 숨가쁨 입맞춤 없이도
여름 가고
그늘에 숨어 꽃 핀 쑥부쟁이
구절초 꿩의 다리
길 가상으로 걸어나오겠네
즈그 이름 열어 보이겠네

아까워라
아는 길도 못 가는 식은 가슴에
이름 가리고 핀 꽃 몇 송이

이렇게 누운 채 가을 오네

우체국에 가서 세 번째 시집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의 마지막 교정원고를 부쳤습니다. 1986년에 첫 시집 "인부수첩"을 펴내고 1991년에 두 번째 시집 "우리들의 사랑가"를 펴내고 9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책 뒤에 이렇게 써서 부칩니다.

달리면서, 또는 미쳐 날뛰면서 너무 먼 길을 와버렸습니다. 많은 들판을, 강을 건너고 높 낮은 언덕을, 산을 넘다가 남들보다 앞서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앞질러버린 적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높아지려고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버린 적도 있습니다. 너그럽지 못해서 자주 끓어 넘치고 차분하게 기다리지 못한 탓입니다.

3년이 다 되도록 병원을 드나들다가 이제 다시 세상을 향하여 걸음을 내딛습니다.

더는 날뛸 수도 달음박질 칠 수도 없지만 천천히 걸을수록 덜 흔들리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벌써 많이 너그러워졌습니다.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아픔에도 익숙해져서 더 큰 아픔으로 이 아픔을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있습니다.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옷을, 연장을 챙깁니다. 언제나 모자라서 부끄러웠던 시들은 부끄럽지 않게 일하는 삶으로 채워 넣겠습니다.

천천히 흔들리지 않게 낮은 곳으로 걸으면서 물매화 같은 조그만 사랑도 놓치지 않고 눈짓 한 번이라도 던져주면서 앞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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