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그 누가 도깨비 잡아 두었네
저그 누가 도깨비 잡아 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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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화의 새벽편지



허허벌판, 말 그대로 허허벌판 입니다. 큰 도시 한 가운데 어떻게 이렇게 넓은 공터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는지 믿기지 않는 이 공사장은 앞으로 7차에 거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랍니다.

이미 1차는 골조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우리는 지금 새로 시작하는 2차공사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공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방을 하나 얻어 살면서 우리들은 아침 저녁으로 공사장과 집을 걸어서 오고 갑니다.

미나리깡과 채소를 키우는 비닐온상들이 늘어선 마을 한 쪽에서는 아파트 부지를 다듬기 위한 매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 수확되지 않은 파아란 미나리들이 그냥 퍼붓는 흙에 파묻히고 있는 바로 그 옆에 크지는 않지만 오래 묵었음직한 방솔나무 한 그루가 잘 생긴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습니다.

줄기에 큼지막하게 대나무빗자루를 만들어 묶어놓았는데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밤에 집에 돌아오다가 도개비를 만나 씨름을 해서 이긴 사람이 대님을 풀어 도깨비를 나무에 묶어놓고 다음날 아침 가서 보니 닳은 빗자루더라는-

"저그 누가 도깨비 잡아 두었네."

내 말을 듣고 같이 오던 동료가 그 옆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벽돌집을 들여다보고 오더니 제단도 있고 하는 것이 당집이라고 합니다.

"수박도 있고 참외도 있네. 아마 도깨비 신을 모시고 있는갑그만."

소나무 밑둥에는 정말 수박이랑 참외가 놓여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자리가 파묻혀버릴 것이 뻔한데, 소나무의 운명이 그 소나무에 깃들어 살던 도깨비의 운명이 어찌될지 안타깝습니다.

소나무의 생김새가 너무 크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또 영험해보이기까지 하니 함부로 톱질을 할 것 같지는 않고 다행히 다른 곳으로라도 옮겨 가 그 곳에 새로 뿌리를 잘 내려서 저 푸르고 아름다운 모습이 두고두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해봅니다.

장난끼 많은 도깨비도 소나무와 함께 옮겨가서 휘파람 휘휘 불면서 멋들어진 불꽃놀이도 좀 벌이고 한다면 더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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