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숴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소장이 알면…."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흙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산마루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의 겨울은 마냥 춥기만 합니다. 칼바람이 금세라도 초라한 집을 통째로 날려버릴 것만 같습니다. 산마루 달동네 옆 말라 비틀어진 잡초가 우거진 비탈에는 빠알간 까치밥이 마치 달동네 사람들의 희망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그 곁에는 달동네 노인들의 허연 수염과 허연 머리칼 같은 억새가 눈처럼 허연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허어! 이 동네에서 겨울울 쇠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로구먼."
"그나저나 이 동네가 뜯기고 나모 우리들은 인자 오데 가서 살것노? 평생 흙만 파먹고 살아온 우리들이 도회지에 나가봤자 막노동을 하것나? 그렇다꼬 고물장사로 하것나?"
"그래도 배운 기 도둑질이라꼬, 내는 김해에 가서 농사라도 지어볼라꼬 땅값을 알아봤더마는 장난이 아니더라꼬. 아(아이) 배꼽보다 땅값이 더 큰 거로 우짜것노."
그랬습니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경남 창원의 동산마을도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불도저와 포클레인에 의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때, 그러니까 우리 마을의 철거를 마악 앞둔 그 해, 1980년대 허리춤의 겨울,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흙담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겨울햇살을 쬐면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서러움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걱정에 한숨만 폭폭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정부에서는 철거민들에게 창원 도심 한복판에 앞으로 살 집과 터를 내준다고는 했지만 철거비용만으로는 그 집과 터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철거민들에게 무이자 융자를 내준다고도 했지만 그게 모두 빚이었습니다. 또한 갑자기 조상 대대로 살던 집과 땅을 잃어버린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융자를 내서 도심으로 이사를 간다 하더라도 아무런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랬으니, 정부에서 내주는 무이자 융자를 받아도 갚을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창원공단 조성으로 인한 강제철거로 애꿎은 빚만 떠안게 된 셈이지요. 하지만 그 당시 외지 사람들은 그런 철거민을 아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집에 살던 무지랭이 촌사람들이 각중에 도심에 번듯한 집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또한 그들은 철거민들에 은근슬쩍 들러붙어 온갖 아양을 떨었지요. 그들이 노린 것은 철거민들이 가지고 있는 땅, 공단에 들어가지 않고 도시개발구역 안에 들어 있는 그 땅을 사기 위해 눈알을 부라렸지요. 그 때문에 철거민들은 이중적인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멋모르고 그들에게 싼값에 땅을 팔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땅값이 10배 이상으로 올랐기 때문이었지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그때 철거를 마악 앞둔 고향마을이 떠오릅니다. 그때 우리 마을 어르신들도 철거를 앞둔 달동네 사람들처럼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웠을 것입니다. 달동네 사람들 또한 이미 철거예고장을 받아 놓았지만 마땅히 이사를 갈 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주비는 달동네 곳곳에 쌓인 쓰레기를 헤집는 바싹 마른 쥐꼬리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또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달동네 사람들도 그때 내 고향마을 어르신들처럼 가진 게 없는 만큼 소원 또한 아주 소박하기만 합니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겠지, 하는 것이 그들의 가난한 소원입니다. 공사장에 투입된 인부들의 마음도 철거를 당하는 사람만큼 아프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 철거민들처럼 다른 달동네에 살면서 초라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망설입니다. 하지만 철거를 책임진 현장소장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댄 젖먹이 엄마가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불빛"처럼 따스하게 덮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일어나 앉아" 곧 쫓겨나야 할, "칠흙처럼 캄캄한" 앞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줍니다. 그들도 우리와 얼굴 생김새도, 일상생활도, 마음도 꼭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늘상 그렇게 쫓겨다니며 살아가야만 합니까.
그들이 죄를 지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꼭 같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그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이용해 더 많은 돈벌이를 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들도 이 나라의 당당한 국민입니다. 그들도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가는 곳마다 인간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을까요.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물질이 쓰레기로 변하고 있고, 그 귀퉁이에서는 그 넘쳐나는 물질문명에 짓밟혀 사람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노? 어차피 쫓겨나야 할 우리들인데 그리 걱정을 한다꼬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다카더나."
"하여튼 쥑일 넘들인기라. 아, 우리들이 비록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하게는 살고 있지만 저거들한테 머슨 해코지를 했나? 밥을 달라캤나? 뭣땜에 멀쩡한 우리들로 저거들 멋대로 쫓아낸다 말이고? 그라고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쪼개지고 나모 인자 오데서 만날끼고?"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것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