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의 머리칼에서는 빨래비누 내음이 났다
순이의 머리칼에서는 빨래비누 내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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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겟집 끝순이에 대한 아련한 추억

가겟집 끝순이랑 가재 잡으러 갔다 / 마을에서 한 마장 떨어진 산 개울 응달 / 작은 돌을 뒤집으며 머리를 맞대면 / 꽃향기였다 순이의 머리칼 / 빨래비누 냄새

작은 가재 구멍으로 더 작은 / 두 손을 포개어 디밀면 늘 물리는 쪽은 순이 손가락 /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 깨알 만한 생채기에 몰리는 깨알 만한 피 / 이내 둘이는 가재의 알을 떼어먹으며 / 겸연쩍게 웃기도 했지만

미국 레이션 깡통에 가재가 그득하고 / 엉킨 가재들 사이에 어둑살이 비집고 들면 /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여우가 나온다던 / 서낭당도 비탈밭둑 모서리 상여집도 / 몇 해전 난리 통에 마을 사람들이 / 생매장되었다던 개울을 건널 때도

갈림길에서 순이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 몇 걸음 딸려오다 잽싸게 / 도망치던 귓불 발간 끝순이 / 학교 옆 언덕빼기 제멋대로인 / 참옻나무 새순을 막대기로 후려쳐 보지만

아무 약속도 없었다 아버지 따라 / 읍내 학교로 전학했고 오랜 날 /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다 / 그때 너 만한 새끼들도 가졌다

순이야 부질없는 세월 따라 / 중년이 되어버린 나처럼 그 개울가 / 가재 잡던 기억을 떠올릴까 떠올리며 / 더 고단한 세월의 가재를 잡으며.

(시-'가재를 잡으며' 전문)



가겟집 끝순이는 그리움으로 남은 나의 첫사랑이다.

봄은 늘 산개울 응달의 얼음이 풀리기 전에 왔다. 겨우내 얼어붙은 앞산 실개울에서 솔가쟁이를 꺾어 미끄럼 타기를 하던 둘이는 앞뒷산 양달이 참꽃으로 발개지면 입술이 퍼래지도록 꽃을 따먹곤 했다. 한아름씩 꺾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의 순이는 온통 참꽃 밭이었다. 여덟 살 때 전근된 아버지 따라 성주초등학교로 전학한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금수면 봉두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끝순이.

지금쯤 할머니가 되었을까, 박제(剝製)되어버린 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녀는 진득한 고향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그냥 마당에다 오줌을 갈길까 보다 / 발끝으로 댓돌 고무신을 더듬다 난간에 섰다 / 그때 보았다 반쯤 열려진 부엌 뒷문 밖 어슬렁대는 / 늑대를, 황급히 뛰어든 방안에서 문고리를 바투 쥐었지만 / 이내 축축이 젖어 내리던 아랫도리

(시-'달빛 늦은 밤'의 중간 부분)

가천면(伽泉面)은 천창이라고도 하고 창천이라고고 했다. 또한 가천면의 동쪽을 빙 둘러 대가천(大伽川)이 흐르며 서쪽에는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이라고 불리우는 가야산(伽倻山, 흔히 가야산을 경남 합천의 산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성주군 가천면에 소재한 산임) 자락이 해질녘이면 온통 회색 그림자를 좁은 골짝에 길게 드리웠다.

봉두리 사람들은 닷새마다 서는 가천장엘 다녔는데 어쩌다 엄마 따라 장에 가는 길엔 한 많은 세상을 마감하였는지 가천변(家川邊) 바위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한 짝의 흰고무신과 신의 주인이 뛰어들었을 검푸르게 감아 도는 물길을 내려다보고는 무서움에 가슴 저리기도 했다.

어머니 장보기가 늦어지면 아버지는 나보다 세 살 위인 형과 함께 장마중 가고 어린 나는 갓난 동생을 보면서 집을 지켰는데 마당의 닭들이 미친듯 어지럽게 푸드덕이면 늑대들이 내려왔다는 신호였다.

축축하게 아랫도리에 오줌이 배여 나오는 줄도 모르고 뿌연 달빛 아래 으슬렁거리는 횟빛의 그놈들을 부들부들 떨면서 문구멍으로 보는 일이란 정말 미치는 일이었으며 그 후 오래 동안에 걸쳐 야뇨증의 부끄러움이 남은 이유도 바로 그 일 때문이었으리라.

요즈음 나는 이러한 기억들을 되살리는 작업을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다. 그중 금수면 봉두리의 그 가슴 저리는 기억들은 내 시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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