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들이 차지한 직업 투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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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투우 그리고 플라멩코 3



플라멩코는 보통 고대 의식 중의 하나인 그리스 비극에 자주 비유된다. 에피다우루스에 현재 남아있는 그리스 극장은 그러한? 공연 공간의 물리적 속성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그 실제의 공연장은 관객들이 가파른 테라스에 앉았던 원형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플라멩코가 공연되는- 처음에 카페나 터븐에서- 공간이 그리스의 공연장보다 협소하기는 하지만 무대위의 공연이 괜객들과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관객과 공연이 서로 밀착적 교감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유사하다.

플라멩코 공연이 그리스극의 내용은 지극히 어둡다.

아이스큘러스 저자의 아가멤논이나 소포클레스가 저자인 엘렉트라와 안티고네와 같은 비극작품들은 한결 같이 인간들이 무서운 고통을 겪고 가장 무서운hideous 운명의 그물에 걸려있으며, 그리고 대개 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희생물이 되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플라멩코 노래가 비록 이런 류의 특정의 이야기나 벗어날 길 없는 운명의 테마, 인간의 고통 절망 사랑의 불행감이나 죽음 등을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 내면에는 특히 칸테 혼도에는 이런 테마가 그 주제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의 비극작품들은 청중들에게 공연 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듯, 플라멩코 노래의 내용 가사 주제 등도 괜객들의 마음에 담긴 과거의 박해나 고통을 표현해주고 있어 현재 사랑의 고통이나 불행을 느끼는 어느 누구와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우리 판소리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런데 플라멩코의 경우 소리꾼은 그가 괜객의 목소리라는 의미아래 그들의 정서들 구체적으로 담아서 표출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의 모임에서 많은 관객들이 울며 옷을 찢고 기물을 부수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 점 역시 고대 그리스극애서 관객들의 카다르시스적 반응이 그대로 쏟아지게 되는 점과 유사하다.

한편 플라멩코와 투우와의 관계는 얼핏 보면 소원한 듯 하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놀랄 만큼 밀접하다

카를로스 사우라가 감독한 영화 카르멘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안토니오(비제의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일 때 그 칼은 투우사의 칼을 연상케 하고, 카르멘이 죽어 누운 모래 빛의 무대 바닥은 투우장을 연상케 한다.

영화 후반부 전편 사우라는 플라멩코와 투우를 교묘하게 얽어매 그 둘이 사실상 어떤 연결고리에 얽혀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실제로 많은 플라멩코 공연자들은 이런 저런 사연으로 투우와 연관을 맺어왔었다. 두 경우 다 집시들이 주로 차지한 직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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