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먼 산 어디메 바람은 부는가
오늘도 먼 산 어디메 바람은 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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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선명하게 삶의 문제를

여태까지 너무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지금부터 나의 문단데뷔작인 연작시(連作詩) '까마귀'를 텍스트로 '나의 시'에 대하여 밝힌 후, 본인에 대하여 언급한 두 분의 글을 인용하면서 본고(本稿)를 끝낼까 한다.



1

그믐 등짐 지고 속 산 머물다 / 속이 밖이 타서 밤바람 몇 됫박 훔친 죄에 / 바람 그리메에 쫓긴다 삶이 된소리로 / 아픈 가슴 토하며 운다 이승에서 못다 울 울음 / 그대 귓밥으로 秊?떨어진다

2

민둥산을 검게 칠하는 아침 해 / 민둥산을 검게 칠하는 저녁 해 / 산그늘에서 설움의 올이나 짜며 사느냐 까마귀 한 마리는 / 이승 한 자락 집어들지 못하고, 저승 한 모퉁 / 걷어올리지 못하고 이승 저승에다 양다리 놓고 멀리서 / 애잔히 스미는 암까막새 울음에 / 오늘도 먼 산 어디메 옹달샘은 술렁이는가 / 황량한 민둥산의 잡풀이나 흔들며 / 오늘도 먼 산 어디메 바람은 부는가

3

오랜 가뭄에 반죽음한 이 들판에서는 / 살아 있음의 다행과 살아 있으므로 더욱 / 속 깊은 가뭄, 달겨드는 바람 쪽으로 술을 / 부었다 들판 나이테를 벗어나 어디로 나는가 / 우리들 허한 영혼의 까막새는 / 부러진 호미 조각 물고, 이 겨울을 앞지르며 /

4

애장터 넝쿨 깊은 골짜기 / 비나리는 가을은 무서워 죽은 손바닥으로 / 새벽녘은 울음으로 서걱이는 이파리 / 차라리 세상 살면 뭐하노 작은 솔가쟁에다 / 멱서리 뒤집어 쓰고 매달려 / 댕강댕강 한 철을 노래하다 / 까마귀 구천(九天) 나는 밤에 소리 없이 / 살점이나 떼어 내며 흰 뼈로 누울까 / 삿갓무덤 서러이 두들기며 흰 뼈로나 누울까

5

허구한 날 / 둥우리 곁에다 도토리 껍질 걸어 놓고 / 암까막새 눈물로 그득 채운 정화수 / 이 물 마르기 전 돌아 올려나 생의 환한 웃음은 / 명부(冥府) 머나먼 갈림길에서 어디로 / 갈까갈까 망설이는 줄 모르고 / 아아, 정화수 그 참한 정성을 말리며 솟는 / 아침 해.

(시-'까마귀' 전문)

신경림 시인은 나의 시집 '북소리'의 발문에서「이 시가 주는 인상은 인화되기 이전의 네거필름을 보는 것처럼 어둡고 음산하면서도 강렬하다. 나아가서 이 시들은 현실상황을 한 개의 틀 속에 완전히 포착했다는 느낌마저 준다. 저주받은 새 까마귀를 주제로 그는 삶보다 죽음의 문제에 깊이 어프로치 하면서, 삶의 문제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 시를 쓴 1978년을 전후한 세상살이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 때 나는 대전의 사립 농아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세상은 온통 벙어리들로 가득 차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바른 말, 옳은 글 한 줄로 긴급조치라는 군사정권의 올가미에 걸린 문인들은 '동빙고'니 '서빙고'니 하는 안기부 밀실로 끌려가서 반죽엄이 되어야 했던 암울한 시대에서 내가 할 일은 대전의 변두리 주탁(酒卓)에서 병아리가 되다만 썩은 달걀을 안주하여 막걸리나 퍼마시면서 깊은 마음속의 분노를 삭여야 했으니.

시는 무기였고, 몇몇 우리들은 미친 듯 시를 써댔다. '더럽고 너절하고 따분하지만 경험 이외는 어느 한 부분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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