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나뭇잎 지고 술상 위에 더 이상 술 주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막차를 타기 위해 취하지 않은 사람들 총총히 떠나가고 바깥 어둠까지 껴입고 겨울을 견디면서 흔들리는 노래로 남아 있던 사람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비틀거리며 또는 고개를 숙이고 몇 사람은 택시를 타고 몇 사람은 어두운 거리를 걸어서
흩
어 졌
습 니 다
이제 버스도 서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는 길 따뜻하게 백열등 켜고 추운 세상 사람들 맞이하던 달맞이집 문 닫고 고장난 가로등 아래 채곡채곡 쌓인 어둠만 험상궂은 얼굴로 길 막는다고 합니다 라이터불 하나에도 쉽게 불붙어 어둠 한가운데서 등불처럼 환해지던 당신 높새바람 불고 간 뒤 가물거리는 가슴 부여안고 떠나가더니 그 뒤에도 자주 큰 바람 불었습니다 가물거리는 삶 아직 무사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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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사람이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대전까지만 함께 오겠다면서 표를 샀습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목포까지 가는 호남선 비둘기호였습니다.
대전까지만 같이 오겠다던 그 사람은 끝내 내 손을 놓지 못하고 광주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른 아침 광주역에 내린 우리들은 서로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헤어졌습니다. 계속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가기에는 서로에게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청계천의 자랑스러운 노동자이기도 했던 그 사람이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고향에는 닷새마다 장이 섭니다. 장날이면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가까운 벗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소식들도 들으려고 장에 가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지요.
깨끗하게 빨아 다린 하얀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장에 나가서, 농사일에 쫓겨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벗을 만나 술국 한 그릇에 막걸리 몇 잔 나누어 마시고 얼근하게 달아오른 기분으로 해름판 황토길을 터벅터벅 돌아오시는 우리 아버지들, 생일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도록 가난하고 일에 쪼들리던 아버지들은 그래서 장날을 촌놈 생일날이라고 했답니다.
이 두 노인도 그렇게 장에 나왔다가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 안부도 묻고 그동안 이런 저런 소식들도 주고받다가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잘 아는 막걸리 집이나 국밥집으로 찾아들었겠지요.
그러다가 해름판이 되고 파장이 되어 얼근하게 취해 서로 부축해주며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일어섰을 것입니다. 시장통을 벗어나 개울을 건너는 작은다리 쯤이었을까요.
잠시 쉬어가자고 길가에 앉아서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세상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산몬당에 달이 떠오를 때까지 그렇게 앉아있던 두 사람은 집에서 식구들이 기다리겠다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신작로를 벗어나 공동묘지 아래를 지나서 커다란 방솔나무가 있는 갈림길에서 이제 두 사람은 헤어져야 합니다. 서로 아쉬운 인사들을 나누고 저만큼 가다가 돌아서서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는 벗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그 벗을 따라 나섰습니다.
"날도 늦었는디 내가 자네 집까지 바래다줌세"
"그럴란가? 나도 어찌케 혼자 가끄나 허던 참이었네."
어두운 고갯길을 넘어 나락들이 누릇누릇 익어가는 들 가운데를 지나 동네 앞 당산나무 아래까지 왔습니다.
"얼른 들어가소. 나는 그만 갈라네."
"이, 그래. 딜다줘서 고맙네."
하얗게 달빛이 깔린 길을 돌아서 가는 벗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저만큼 가는 벗을 따라 나섰습니다.
"자네를 어찌케 혼자 보내겄능가. 내가 바래다 줘야겄네."
"그러소. 나도 심심해서 어찌케 갈끄나 허고 깝갑했네."
바로 전에 벗을 바래주러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까마득이 잊어버리고 바래다주겠다는 벗의 손까지 잡고 다시 밤길을 걷는 두 사람 그렇게 서로 바래다주겠다고 따라나서서 밤이 깊도록 고갯길을 몇 번이나 오갔답니다.
대전까지, 광주까지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따라나섰던 그 사람을 나는 혼자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었고, 나는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름다운 그 사람은 지금 어디까지 가 있는지 다시 보고 싶은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