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도 끊긴 길을 간다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밤마다 가슴 속에서 다시 떠나는 길
떠나가 희미해지다가
그믐 달빛이나
흐린 별빛에 묻어 있는 그리움처럼
언제나 그 길가의 풀잎
젖은 이슬에 묻어 있으므로
가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움을 꿈꾸며
아주 잊혀지지는 않고 희미하게
누군가에게 가슴 짠하게 남는
그리움을 꿈꾸며
길을 가도 끊긴 길을 간다
오래오래 썩지 않은 비닐 봉지나
사이다 병 속에
몇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미 끊긴 사랑은
이곳 저곳 길도 허물어
가도 가도 이어지는 이야기 하나 없이
그냥 꽃 몇 송이 피어 있고
그냥 꽃 몇 송이 지고 있는 길
먼 길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만
아름다움으로 남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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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대면 다들 알만한 후배 시인이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형, 사랑이 뭐지?"
그때 우리들은 무슨 행사가 있어서 만났고 밤샘 술판이 된 뒤풀이 끝에 해장을 한다는 핑계로 다시 술판을 벌여 점심때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별로 서울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나는 서울길이 뜸한 편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서울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후배들과 벗들이 밤새도록 나를 놓아주지 않고 술판을 벌이다가 아침이 되어 헤어졌는데, 이 시인은 한잔만 더, 한잔만 더, 이렇게 나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데, 사랑에 대한 글도 많이 쓰고, 또 사랑에 대한 생각도 나보다 훨씬 많았을 유명한 시인에게 내가 사랑에 대해 할 말이 있어야지요? 하는 수 없이 바보같은 대답을 하는 수 밖에요.
"같이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손을 잡고 간다면 좋겠지만 손을 잡지 않아도 괜찮고 나란히 가면 좋겠지만 나란히 가지 않아도 괜찮고 앞서 가도 괜찮고 뒤에 가도 괜찮고 그냥 같이 길을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을 묻는 자네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시인은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형은 길 위에 서 있네요."
그래요.
나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걸어오다가 끊긴 길이 있으면 이어주고 걸어오다가 패여져나간 길이 있으면 메워주고 걸어오다가 시냇물을 만나면 노두를 놓으면서 먼 길을 걸어온 노동자입니다. 내가 길을 걸어가는 이 나날들이 누군가에게 작으나마 사랑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