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랴
가난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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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의 "달랑무우 김치"



"궁색스러움이야 어디 이
단칸방의 이불덩어리 하나뿐이랴
부뚜막에 걸려 있는
백철솥뿐이랴

立冬(입동) 지나고 해가 짧으매
변두리 이곳에 겨울이 빨리 닥쳐오리니
아이들은 일년 동안 키가 자라서
지난해의 바지길이가 짧아져 있고

여름 동안 뛰놀다 다친 복상씨 뼈
그 시커먼 생채기를 가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어디 가난이 그렇게
초조하기만 하랴
굴다리 빈 공터에 어둠 드리우면
단칸방에 어느새 불이 켜지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야트막한 골목으로 피어나는 것을
어디 가난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랴

연탄광 한구석에 묻지도 못한 항아리 하나
달랑무우 한 접 김치도
이 겨울에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그해 겨울, 거의 다 떨어져 나간 문풍지를 푸르르 떨치며 얼어붙은 단칸방으로 비집고 들어오던 그 칼바람, 꼭 하나뿐인 땟국 절은 "이불덩어리"로 온몸을 감싸고 있어도 얄밉게도 그 이불 속을 슬며시 파고들던 그 모진 칼바람.

하긴 그 찌들대로 찌든 가난 속에서는 궁색스럽지 않은 것이 또 어디 있었겠는가. 마치 짐승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파놓은 토굴 같은 부뚜막이 달린 단칸방에 들어서면 궁색한 것이 어디 "부뚜막에 걸려 있는/백철솥" 하나와 "이불덩어리 하나"뿐이었겠는가.

시커먼 선번 위에 먼지를 푹 뒤집어 쓰고 엎어져 있는 양은 밥그릇 하나, 찌그러진 양은 국그릇 하나, 수저 한벌, 부뚜막에 박힌 대못에 걸려있는 국자 하나, 방문을 열면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베개 하나, 땟국물로 도배된 요 하나...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천장에서 밤새 뛰어다니는 쥐새끼 소리들, 오래된 신문지가 여기저기 너덜너덜 붙어 있는 벽과 벽, 그 벽과 벽 사이에 용케 친 거미줄에 붙어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거미 한 마리, 그리고 밤새 갓난 애기 울음소리를 내며 골목을 누비던 도둑고양이들의 그 울음소리...



그랬다. "立冬(입동) 지나고 해가 짧으매" 다른 어느 해보다 먼저 "변두리 이곳에 겨울이 빨리 닥쳐오'고 있고, 올해 내내 못 먹이고 못 입힌 아이들이지만 어느새 "일년 동안 키가 자라서" 이미 "지난해의 바지길이가 짧아져 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로서는 마음만 안쓰러울 뿐, 그놈의 가난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할 수가 없다.

더더욱 가슴을 쓰리게 하는 것은 떨어진 옷을 기워도 기워도 "여름 동안 뛰놀다 다친 복상씨 뼈/그 시커먼 생채기" 하나 "가려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옷만 기워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패인 마음의 상채기까지도 제대로 기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명수 시인은 가난한 그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어디 가난이 그렇게/초조하기만 하랴/굴다리 빈 공터에 어둠 드리우면" 제 아무리 없는 처지라 해도 가진 자들의 집들과 꼭같이 "단칸방에 어느새 불이 켜"지는 것을 바라보며, 가난이 절대 초조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넨다.

그리고 골목길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며 놀다가 그 불빛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가/야트막한 골목으로 피어나는 것"에서 아이들의 그 단칸방 불빛 같은 희망에 미래의 날개를 달아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머니처럼 속삭인다. 가난은 초조한 것만도 아니며 "가난이 그렇게 쓸쓸하기만"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그건 왜냐? 어른들과 아이들의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는 그 가난이라는 괴물이, 그렇게 민초들의 가슴을 초조하게 만들고, 쓸쓸하게 만든 것같이 보여도, 또한 묻을 땅조차 없어 "연탄광 한구석에 묻지도 못한 항아리 하나"뿐일지라도, 올 겨울 끼니 때마다 식탁에 올라가 가족들의 든든한 반찬이 될 "달랑무우 한 접 김치"가 "이 겨울에" 아이들의 미래처럼 "발갛게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비의 고장, 안동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 김명수 선생은 흡사 대나무를 닮은 시인이다. 대나무의 텅 빈 속처럼 김명수 선생의 시 또한 늘 맑은 하늘처럼 깨끗하다. 다시 말하자면 시 속에 잡티 하나조차 가까이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시의 그 맑은 하늘로 기세좋게 쭉쭉 뻗어 올라가는 기상 높은 대나무가 곧 김명수 선생이다. 그러므로 김명수 선생의 시는 언제 꺼내 읽어도 늘 대나무처럼 곧고 사시사철 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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